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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049
한자 報平驛
영어의미역 Bopyeong Stat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윤용출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개설]

조선시대의 역참은 고려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편하면서 재정비되어, 『경국대전』의 전국 역로망 체제로 확립되었다. 역의 수는 고려 때 520여 개 소였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540여 개 소로 기록되어 있고, 『경국대전』에는 540여 개 소로 시대에 따라 다소 변천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한 도별 역수는 경기도 69개 소, 충청도 61개 소, 경상도 151개 소, 전라도 50개 소, 황해도 34개 소, 강원도 57개 소, 평안도 13개 소, 함길도 45개 소였다. 조선시대의 주요 도로에는 대략 30리(12㎞) 간격으로 역이 분포해 있었는데, 이것은 마필(馬匹)이 아닌 도보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고 본다.

[제정경위 및 목적]

역의 기능은 지방 통치를 위한 공문서의 전달, 관물(官物)과 세공(稅貢)의 수송 및 관원사행(官員使行)에 대한 마필의 공급과 숙식 제공, 변방군정(邊方軍情)의 보고 등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종6품인 찰방과 종9품인 역승을 파견하여, 도내의 역정(驛政)을 관할하게 하였다.

[내용]

역의 운영을 위하여 마필과 역전 12결(結), 그리고 역마 사육을 위한 마전(馬田)과 공수전(公須田) 등을 지급하였다. 역사(驛舍)는 주로 공사방(公事房)·통인방(通引房)·객방(客房)·책실(冊室)로 구성되어 있었다.

[변천]

조선 후기 양산에는 황산역(黃山驛)·위천역(渭川驛)·윤산역(輪山驛) 등이 있었다. 조선 초기인 1457년(세조 3)에 경상도관찰사의 계청에 따라 창원(昌原)의 안민역(安民驛)을 웅천(熊川)의 보평역(報平驛)에 합치게 한 바 있었다. 보평역은 1462년(세조 8)에 자여역(自如驛) 등 13역과 더불어 자여도(自如道)에 속해서 자여도 역승(驛丞)의 관할을 받았다.

1509년(중종 4) 보평역이 제포 북쪽 3리 밖에 위치해서 이곳에 거주한 왜인과 교류가 많아서 기밀이 누설되는 등 폐단이 있다는 점을 조정에서 논의한 바 있다. 특히 왜인들이 물품 무역을 보평역의 역인(驛人)에 의존하는 바가 많아서 특히 결탁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결국 보평역을 없애고, 그 소관 업무를 인근 적항역(赤項驛)과 안민역(安民驛)에 분속시키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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