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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269
한자 小石-
영어의미역 Soseok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석리 소석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형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총인구(남, 여) 237명[남 147명, 여 90명]
가구수 106가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석리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전설에 의하면 장재편마을에 신라시대 한 장자 모씨가 살았는데 원효대사원효암을 창건할 때 천 명의 수도승 식량을 시주하였으나, 마음이 좋지 못한 장자의 부인이 과객을 못 오게 하려고 한 술사에게 과객이 오지 못할 방법을 물으니 장자집 맞은쪽 천에 자라바위가 있는데 목에 해당하는 부위를 잘라 버리라고 하였다. 자라 목 부위를 잘라 버렸더니 결국 살림은 기울고 집안에 우환이 가득하여 패망하므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후일에 인륜에 어긋나는 과욕을 삼가하라는 교훈으로 전해오고 있다.

[명칭유래]

소석마을은 작은 ‘소(小)’ 자에 돌 ‘석(石)’ 자를 쓰고 있다. ‘장(張)’ 자 성씨를 가진 장자(長者)가 살았다 하여 장재편, 말발굽 자리에 있다 하여 늑동, 말의 몸통이 놓인 자리를 제리당이라 하였다. 현재는 제리골을 적입골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1862년(철종 13)의 문헌을 통해 보면,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을 상북방이라 하였는데, 소토리, 대석리, 남양리(구소석, 소석), 구창리(반회, 위천) 등 네 개 마을을 상북방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경상남도 양산군 상북면이 중북면과 병합하여 9개 리 18개 마을을 이루었다. 남양리의 일부는 석계리가 되고 남은 일부(계리, 적입곡)를 소석리라 하였다. 1991년에는 제리당과 늑동을 소석마을로, 장재편과 제리골을 장제마을로 각각 분동하였다.

[자연환경]

마을 뒤 서쪽으로는 인근 천마산에서 발원된 산자락과 접해 있고, 마을 북쪽은 홍거랑이라고 불리는 작은 내와 인근 천마산에서 발원된 산자락과 접해 있다. 그리고 홍거랑의 끝부분에는 늑동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앞 동쪽으로는 양산천이 흐르고 있기도 하다. 마을은 전반적으로 인근에 위치한 산과 강으로 인해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다. 국도 35호선을 타고 양산시청에서 언양방면으로 진행하다가 보면 공단사거리와 양산IC를 차례대로 지나게 되는데, 양산IC를 지난 후에 공암삼거리에서 약 2㎞정도 직진하다가 보면 소석사거리가 나오고, 소석교를 향해 좌회전하면 마을이 나온다.

[현황]

2008년 6월 현재 총 106가구에 237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소석마을상북면사무소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1.6㎞의 거리에 있으며, 소석마을 뒤쪽에는 천마산이 있다. 늑동, 제리당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소석마을에는 약 70년 전까지만 해도 나병환자가 완치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오는 약수터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고 하며, 현재도 그 원형이 살아있다. 쇠가 많이 났다고 하여 쇠꼬지라는 지명이 있고, 범의골, 제리골, 부채골, 갱글골, 절골, 뿔당골, 새나무징이, 탑골, 건들방웃골, 기차방웃골, 말방웃골, 신선방웃골, 은점(銀店), 철점(鐵店), 석필대, 내맹들, 칼돌배기, 자래방우, 장군발바닥, 장재버들, 안장매기 등의 지명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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