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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88
한자 集姓村
이칭/별칭 동족 마을,동성 마을,동족 촌락,동족 부락,동성 촌락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집필자 이은정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같은 성(姓)과 본관(本貫)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개설]

집성촌은 한 성씨가 주도하는 동족 마을을 포함해 나타나는 여러 성씨들이 모인 이성 잡거(異姓雜居) 형태의 촌락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동족 촌락, 동족 부락, 동성 촌락, 동성 마을, 동족 마을이라고도 한다.

[영암 집성촌 기록]

영암 지역의 집성촌에 대한 기록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식민지 지배를 목적으로 조사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실려 있다. 『조선의 성』에 실려 있는 1920년대 영암 지역 집성촌은 다음과 같다. 100세대 이상인 곳만 살펴보면 영암면 망호리경주 이씨[135세대], 장암리 남평 문씨[155세대], 덕진면 노송리 거창 신씨[130세대], 영보리 전주 최씨[150세대], 장선리 창녕 조씨[100세대], 신북면 모산리 문화 유씨[124세대], 서호면 엄길리 천안 전씨[107세대] 등이다. 현재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황]

영암군의 대표적인 집성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암읍 장암리: 영암 입향조인 문맹화(文孟和)의 후손 문익현(文益顯)이 장암으로 옮겨 현재 남평 문씨들이 동족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2012년 현재 장암 마을에는 남평 문씨 약 7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영암읍 망호리: 1547년경 이반기(李磻琦)가 경기도 고양군에서 살다가 이곳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경주 이씨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2012년 현재 70여 가구의 경주 이씨가 살고 있다.

덕진면 영보리: 입향조인 연촌 최덕지(崔德之)가 후학을 가르치면서 정착하여 전주 최씨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2012년 현재 전주 최씨 45가구가 살고 있다.

덕진면 노송리: 최덕지와 교의가 깊었던 신기(愼幾)의 막내아들 신후경(愼後庚)이 최덕지의 사위가 되어 영보촌에 살면서 거창 신씨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영암에 살고 있는 거창 신씨는 2010년 조사 때 80여 가구에 200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2012년 현재 노송리에 60가구, 영보리에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금정면 쌍효리: 1570년 정권렬(鄭權烈), 정양렬(鄭亮烈) 형제가 이곳에 터를 잡고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시묘살이를 정성껏 하여 마을의 이름까지 쌍효리가 되었다. 이후 하동 정씨 후손들이 정착하여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2012년 현재 쌍효리하동 정씨 2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하동 정씨쌍효리 외에 군서면 해창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신북면 모산리: 1405년(태종 5)에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하정(夏亭) 유관(柳寬)이 모산 마을의 수려한 산세와 광활한 평야를 보고 한양에 있는 맏이 유맹문(柳孟聞)을 시켜 영팔정(詠八亭)을 지었다. 그 후 현감 유용공(柳用恭)이 하동 정씨와 혼인하여 다섯 명의 아들을 두었고, 이들이 성장하면서 유씨 문중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2012년 현재 모산리에는 문화 유씨 12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도포면 봉호리: 고려 말 공민왕 대의 문하시랑 양석재(梁碩材)의 3손 양흥효(梁興孝)가 나주군 다시면에서 1450년경 봉호정에 이거하여 정착하였고, 이후에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2012년 현재 제주 양씨 40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도포면 원항리: 1555년 해남에서 발생한 을묘왜변(乙卯倭變) 때 전주 강씨와 함께 영암에 정착한 곽호인을 입향조로 현풍 곽씨들이 집성촌을 형성하였고, 2012년 현재 2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군서면 동구림리: 박성건(朴成乾)을 입향조로 하는 함양 박씨가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함양 박씨는 2012년 현재 군서면 서구림리에 20가구, 동구림리에 32가구가 살고 있다. 또한 최석증(崔碩曾) 입향조로 하는 해주 최씨동구림리에 정착하면서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해주 최씨는 2012년 현재 동구림리에 8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군서면 서구림리: 고려 초 영암군 출신의 관료인 최지몽(崔知夢)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고, 2012년 현재 낭주 최씨는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군서면 서구림리동구림리: 조세풍을 입향조로 하는 창녕 조씨가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2012년 현재 동구림리에 32가구, 서구림리에 24가구가 살고 있다. 창녕 조씨영암군 영암읍을 비롯하여, 군서면, 시종면, 미암면 등지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군서면 동호리: 입향조 최대천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탐진 최씨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2012년 현재 동호리에는 탐진 최씨 74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금정면 용흥리, 시종면 일대에도 탐진 최씨 집성촌이 있다.

서호면 화송리: 1550년 김사종을 입향조로 하는 김해 김씨 후손들이 정착하여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2013년 현재도 마을의 대다수를 이루는 성씨는 김해 김씨이고, 약 5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서호면 장천리: 고려 말 강진으로 유배당했던 전사민의 6세손인 전승문이 입향 후 천안 전씨 후손들이 정착하여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고, 2012년 현재 장천리에 25가구, 엄길리에 70가구가 살고 있다.

서호면 금강리: 김시연을 입향조로 하는 광산 김씨가 집성촌을 형성하였고, 2012년 현재 45가구가 살고 있다.

서호면 청용리 노동 마을: 김홍발(金弘發)을 입향조로 하는 밀양 김씨가 집성촌을 형성하였고, 1980년대까지 30가구가 거주했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학산면 금계리: 1687년 오찬주를 입향조로 하는 해주 오씨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2012년 현재 15가구가 살고 있다.

학산면 학계리: 현윤명의 9대손인 현진택이 학계에 정착하여 연주 현씨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2012년 현재 학계리의 56가구 중 절반가량인 25가구가 연주 현씨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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