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제갈윤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97
한자 諸葛允信
영어공식명칭 Jegal Yunsin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7년 8월 - 제갈윤신 의병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08년 1월연표보기 - 제갈윤신 사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08년 1월 -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진공작전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거주|이주지 강화진위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연기우 부대 아장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제갈윤신(諸葛允信)[?~1908]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이다.

[활동 사항]

제갈윤신은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강화진위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강화도를 빠져나온 강화진위대 부교(副校) 연기우(延基羽)와 함께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연기우는 장단군(長湍郡) 덕물포(德物浦)에서 ‘창의존양군수부(倡義尊攘軍帥府)’, ‘동한창의존양대장(東韓倡義尊攘大將)’ 혹은 ‘창의한북대장(倡義漢北大將)’을 표방하며 의병을 일으켰다. 제갈윤신은 연기우 부대의 아장(亞將)을 맡으며, 중군장 김중련(金仲運), 좌익장 임학도, 우익장 송병태(宋秉泰), 선봉장 연성칠(延成七), 보호장(保護將) 홍원유(洪元裕), 사령장(司令長)·향관(餉官)·중대장 이우석(李愚錫), 별무관(別武官) 홍천희(洪天喜), 서기장 김극수, 참모부 백군보 등과 함께 지도부를 형성하였다.

1907년 9월 경기도 연천에서 창의한 허위(許蔿)가 임진강 유역의 경기도 북부에서 활동하고 있던 김수민(金秀敏)·박종한(朴宗漢)·왕회종(王會鍾)·김진묵(金溱黙)·김원묵(金元黙) 등을 규합하자, 제갈윤신도 연기우와 함께 참여하였다. 1907년 12월 결성된 13도창의대진소에서 제갈윤신은 선봉대를 맡았다. 서울진공작전 이후 연기우와 함께 임진강을 넘나들며 포천(抱川)·삭녕(朔寧)·철원(鐵原)·연천(漣川)·마전(麻田)·장단(長湍)·적성(赤城) 등지를 무대로 용명(勇名)을 날렸다.

1910년 1월경 연기우 휘하에 있으며 향도관(響導官) 김공선(金公先) 등과 함께 삭녕군 세금 수송 일자를 탐지하였다. 이에 의병 30여 명을 거느리고 수욱진(水郁津) 부근 송림 사이에 매복하였다가 세무 관리와 일제 기마헌병대를 기습하여 2명을 사살하였다. 이어서 1월 강원도 철원 평강(平康) 등지에서 34회의 유격전을 감행하였다. 유격전 후 방현전투(方峴戰鬪)에서 대퇴부(大腿部)에 총상을 입고 각처를 전전하며 치료하였다. 강원도 평강군 목전면(木田面) 산성곡(山城谷)에서 적의 야습을 받아 최후까지 응전하다가 모든 부대원과 함께 순국하였다. 제갈윤신은 석벽(石壁) 위에서 최후까지 분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