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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030
한자 盈德雲山書院講堂
영어공식명칭 Woonsan Seowon’s Lecture hall in Yeongdeok
이칭/별칭 운산서원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길 110-14[원황리 94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12년연표보기 - 영덕운산서원강당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8년 - 운산서원 훼철되면서 영덕운산서원강당도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899년 - 영덕운산서원강당 복설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6월 20일연표보기 - 영덕운산서원강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85호로 지정
현 소재지 영덕운산서원강당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길 110-14[원황리 944]지도보기
성격 강당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관리자 대흥백씨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85호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의 부속 건물.

[개설]

영덕운산서원강당(盈德雲山書院講堂)은 1812년(순조 12) 백문보(白文寶)[1303~1374]와 백현룡(白見龍)[1543~1622]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한 운산서원(雲山書院)의 강당이다. 현재 강당 건물은 1899년(광무 3)에 새로 복설한 것이다. 백문보의 본관은 대흥(大興), 호는 담암(淡庵),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고려 말 밀직제학(密直提學)·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지냈다. 백현룡은 백문보의 8대손으로 호는 성헌(惺軒)이다. 이황(李滉)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 원황마을 서북쪽 등운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등운산(騰雲山) 자락에 자리하여 서원 이름을 ‘운산(雲山)’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남쪽과 동쪽으로 너른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변천]

운산서원은 1812년(순조 12) 남승정(攬勝亭) 터에 건립되었다. 남승정은 백현룡이 1567년(선조 즉위) 무렵 건립한 누정으로 건립 당시 이름은 집승정(集勝亭)이었다. 이후 소실되었다가 1804년 영해도호부사(寧海都護府使) 김희주(金熙周)가 녹봉을 내어 강당·주사(廚舍)·대문을 지었다. 1810년에는 묘우(廟宇) 6칸을 마련하고, 1812년 백문보·백현룡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영덕운산서원강당 건물도 이 과정에서 처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1868년(고종 3) 흥선대원군 서원훼철령으로 운산서원이 철폐되었다. 그러다 1899년 후손 백순지(白淳志) 등에 의해 강당 건물만 복설하고 운산서당(雲山書堂)이라고 하였는데, 이 건물이 현재 남아 있는 ‘영덕운산서원강당’이다. 당시 상량문은 김도화(金道和)가 지었다.

[형태]

운산서원이 존립할 당시 묘우는 3칸의 경덕사(景德祠), 묘문(廟門)은 3칸의 입도문(入道文), 동재와 서재는 각 3칸의 직방재(直方齋)와 박약재(博約齋)였으며, 강당은 8칸 규모로 편액은 ‘운산서원’이었다. 그 외에도 문루(門樓) 6칸, 경각(經閣) 2칸, 주사 12칸을 갖춘 비교적 큰 규모였다.

1899년 복설된 영덕운산서원강당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평면은 어칸[御間]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이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退間]을 두었다. 툇간 전면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梁架)의 홑처마이다.

[현황]

건물 안에는 ‘운산서원’과 ‘보인당(輔仁堂)’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 주위에는 방형의 블록담장을 두르고, 전면에는 철대문을 설치해 놓았다. 2005년 6월 2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옛 영해 지역 대흥백씨 가문의 향촌사회 활동과 서원 문화의 전승 양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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