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134
한자 興基里
영어공식명칭 Heunggi-ri
이칭/별칭 광산동,오봉동,궁기동,궁터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흥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95년 5월 26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덕군 서면 광산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 - 경상북도 영덕군 서면 광산동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흥기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흥기동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흥기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6.83㎢
가구수 112가구
인구[남/여] 184명[남 79명|여 105명]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흥기리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행정리는 흥기1리, 흥기2리, 흥기3리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광산마을, 오봉마을, 궁터마을 등이 있다.

[명칭 유래]

흥기리(興基里)의 지명 유래는 광산(光山)의 '광(光)' 자가 빛이 나서 일어난다고 하여 '흥(興)' 자와 궁기(宮基)의 '기(基)' 자를 따서 흥기동이라 하였다. 흥기1리 광산마을오봉마을 북쪽에 있는 마을로, 1541년경(중종 36)에 악계예씨(岳溪芮氏)가 들어와 마을 앞과 뒷산이 광활하여 광산(廣山)이라 불러 오다가 1647년(인조 25) 영천이씨(永川李氏)가 들어와 양지 쪽에 살면서 양지광산이라고 하였다. 그 뒤 1796년경(정조 20) 경주최씨(慶州崔氏)가 들어와 음지에 정착하여 음지광산이라 하였다. 흥기2리오봉(五峰)마을은 궁터마을 북쪽 오봉산 밑에 있는 마을로, 1550년경(명종 5)에 안동권씨(安東權氏)가 마을을 개척하고 마을 뒷산이 다섯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어 오봉동(五峰洞)이라고 하였다. 흥기3리궁터(宮基)마을흥기리의 으뜸가는 마을로, 최씨(崔氏)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또 신라 중엽 중국인 주도(周鍍)가 망한 주(周)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하여 모의하다가 탄로 나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도주하던 중 이곳에 머물러 궁(宮)도 짓고 진(陣)을 치고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형성 및 변천]

흥기리는 조선시대에 영덕현(盈德縣)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 5월 26일 칙령(勅令) 제98호로 종전의 현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영덕군에 속하였다. 이후 1914년 3월 1일 총독부령(總督府令)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광산동·오봉동·궁기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흥기동이라 하고 달산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흥기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흥기리는 서쪽의 대서천(大西川) 범람원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에 자리 잡은 윗산[271m], 봉오산[219m]을 포함하여 높이 약 300m 전후의 산지들이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고, 서쪽에는 곡류하는 대서천이 범람하면서 흥기1리 앞 어수평(箊藪坪), 흥기2리 흥기새들, 흥기3리 큰들인 흥기대평(興基大坪)의 충적평야가 형성되었다.

[현황]

흥기리의 2020년 말 면적은 6.83㎢이며, 인구는 2021년 5월 기준 총 112가구에 184명[남 79명, 여 105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흥기리는 동쪽으로 강구면 상직리, 남정면 중화리와 면계(面界)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용평리·매일리·옥산리가 있다. 남쪽은 애목재를 넘어 남정면 사암리·중화리가 있으며, 북쪽은 대서천 건너 대지리가 있다. 마을 서쪽 대서천 변과 북쪽으로는 국가지원지방도 제69호선이 지나며, 북쪽 산지 사이로 하남곡지가 축조되어 있다. 대서천 변 넓은 평야에는 논농사가 주를 이루고 일부 밭농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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