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182
한자 大里
영어공식명칭 Dae-ri
이칭/별칭 한골,대동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대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95년 5월 26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해군 묘곡면 소속으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북도 영해군 묘곡면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대동으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대동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대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28.14㎢
가구수 54가구
인구[남/여] 80명[남 40명|여 40명]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대리영덕군 영해면 가장 서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대1리·대2리로 분리되어 있다. 1600년(선조 33) 연간에 신학익(申學益)이라는 인물이 대리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며, 그 뒤 1780년(정조 4)경 해주최씨(海州崔氏)가 입주하고, 이어 진주강씨(晉州姜氏)가 입주하였다고 한다.

[명칭 유래]

대리(大里)의 지명 유래는 큰 골짜기 안에 있다고 해서 한골 또는 대동(大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대리는 조선 전기에는 영해부 남면(南面)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영해군 묘곡면(畝谷面) 지역이 되었다. 그 뒤 1914년 4월 1일 일제가 총독부령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대동과 묘곡동 일부를 병합하여 대동(大洞)이라 하고 영덕군 영해면에 편입되었으며, 1949년 8월에 지방자치제가 공포되어 대동1구·대동2구라 하였으며, 1961년에 대1동·대2동이 되었다. 그 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로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대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대리의 마을 형상은 'L' 자 형태이고,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 형제봉[702.7m], 서쪽 명동산(鳴動山)[813.1m], 남쪽 포대산[444.9m], 동쪽으로 높이 약 200m 봉우리 등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진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대산골·딱밭골·방통골·봉골·상자리골·선바우골·굴골·배나뭇골·삽직골·솔전지골·유지바웃골·자뭇골·지리솟골·지통골·팥밭골 등의 크고 작은 골짜기를 형성하였다. 남천의 상류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대리의 가운데 지역으로 모여 남천을 이루며 남쪽으로 흐르다가 포대산 북쪽 지점에서 동쪽으로 흘러간다. 골짜기에는 곡저평야의 발달이 미약한 편이다.

[현황]

대리의 2020년 말 면적은 28.14㎢이며, 2021년 5월 기준 총 54가구[대1리 24가구, 대2리 30가구]에 80명[남 40명, 여 40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묘곡리, 서쪽으로는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지품면 속곡리·도계리·축산면 조항리, 북쪽으로는 창수면 창수리·신기리와 면계(面界)를 이룬다. 대1리묘곡1리에서 서쪽 골짜기를 따라 약 4㎞ 정도 지점에 자리하고, 대1리에서 서쪽 골짜기를 따라 약 4㎞ 더 들어가면 대2리가 있다. 동쪽 묘곡리에서 대리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약 3㎞ 지점까지 국가지원지방도 제69호선이 개설되어 있고, 대2리까지 차량 1대가 운행할 수 있는 소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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