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람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312
한자 助攬縣
영어공식명칭 Joramhynu
이칭/별칭 진안현,영덕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방용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삼국 시대 - 조람현 설치
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조람현을 진안현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940년 - 진안현을 영덕군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1018년 - 영덕군을 예주로 영속
관할 지역 조람현 -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지도보기|지품면지도보기

[정의]

삼국 시대부터 757년까지 영덕군 달산면지품면 및 청송군 진보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개설]

조람현(助攬縣)은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보인다. 5세기 후엽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삼국 통일 이후 경덕왕이 진안현(眞安縣)으로 개칭하였다. 조람현야시홀군(也尸忽郡)의 영현으로 모두 고구려 때의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지품면, 청송군 진보면 지역을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람현은 고구려가 동해안 일대로 진출하면서 내륙 지역과의 교통을 원활하게 하고, 남쪽으로 신라를 공략하기 위해 설치한 지방행정구역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5 지리지 명주(溟州)조에는 조람현야시홀군의 영현으로 기록하면서 "야성군은 본래 고구려의 야시홀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 시대]의 영덕군(盈德郡)으로 영현(領縣)은 2개이다. 진안현(眞安縣)은 본래 고구려의 조람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보성부(甫城府)[청송군 진보면]이다. 적선현(積善縣)은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靑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청부현(靑鳧縣)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삼국사기』 권37 지리지 하슬라주(何瑟羅州)조에는 고구려의 지명으로 야시홀군과 함께 조람군(助攬郡)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이때 조람군은 조람현의 오기(誤記)로 추정된다.

[내용]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조람현야시홀군의 영현으로,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으나 신라가 빼앗았다고 한다. 통일신라 시대의 경덕왕 대에 조람현진안현으로 개칭되었는데, 지금의 영덕군 달산면지품면 및 청송군 진보면 지역을 관할하였다. 주왕산(周王山)의 북쪽과 동쪽 지역을 포괄하는 조람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 동해안과 지금의 안동·영양 등 내륙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로상의 요충지로 중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조람현은 757년(경덕왕 16)에 야성군의 영현 진안현으로 개칭되었으며, 940년(고려 태조23)에 영덕군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는 예주(禮州)에 영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람현은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벌어진 동해안 일대의 각축전 및 지방 통치 방식, 내륙 거점 도시와 동해안 지역의 교통로 운영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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