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449
한자 盈德陶谷洞忠孝堂
영어공식명칭 Chunghyodang House in Dogok-dong, Yeongdeok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길 41-4[도곡리 13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55년연표보기 - 영덕도곡동충효당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696년연표보기 - 영덕도곡동충효당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88년 9월 23일 - 영덕도곡동충효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83호 지정
현 소재지 영덕도곡동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길 41-4[도곡리 136]지도보기
원소재지 영덕도곡동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길 41-4[도곡리 136]
성격 전통 가옥
정면 칸수 9칸[정침]|3칸[사당]
측면 칸수 9칸[정침]|1.5칸[사당]
소유자 박원대
관리자 박원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83호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무안박씨 가문의 고택.

[개설]

영덕도곡동충효당(盈德陶谷洞忠孝堂)박선(朴璿)[1596~1669]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박선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계헌(季獻), 호는 도와(陶窩)이다. 1655년(효종 6) 조산대부 동몽교관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후학 양성에 주력하였다. 1689년(숙종 15) 유림들이 공의를 모아 도계서원(陶溪書院)에 제향하였다. 문집으로 『도와집(陶窩集)』이 전한다.

[위치]

영덕읍 북쪽에 축산면사무소가 있는 도곡리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동쪽의 산 밑에 있다. 이곳은 동해와 마주해 내륙에 솟은 대소산 남서록 말단의 산자락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는 축산천과 그 양안으로 펼쳐진 곡간평야를 향한 집들이 들어서 있다.

[변천]

무안박씨는 평해면 원구리에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는데, 박선이 살던 집이 화재로 소실되자 축산면 도곡리로 이거해 왔다. 박선은 먼저 도곡리에 정착한 형 박유(朴瑜)[1576~1618]가 건립한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터를 잡고 영덕도곡동충효당을 건립하였다. 이후 2차례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었다. 1696년(숙종 22) 박선의 손자 박호(朴滈)[1624~1699]가 중건하였다.

[형태]

건물은 축산항과 가까운 산곡간에 남쪽 동서간으로 난 마을길에서 산 쪽으로 난 골목을 들어서면 다소 넓은 앞마당이 있고, 그 뒤로 정침과 뒷산 자락에 사당이 각기 서남향하고 있다. 정침은 정면 9칸, 측면 9칸이고, 'ㄱ' 자형 안채와 '一' 자형 사랑채, '一' 자형 고방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벽으로 채를 서로 연결한 연결형 뜰집이다. 안채는 4칸 안마당에 면해 전퇴를 둔 넓은 안대청이 있고, 그 좌측으로 상방, 우측으로 고방과 안방이 있다. 안방 앞으로는 정지, 고방으로 이어져 우익사를 이루었다. 상방은 앞에 툇마루의 통래칸을 두었고, 그 앞으로는 밖으로 돌출된 고방 3칸이 사랑채와 이어져 좌익사를 이루었다. 다만 고방채는 안채 상방과는 1칸, 외진주(外陣柱)와는 반칸 돌출해 2칸 마룻바닥의 고방을 두고, 사랑채와의 사이에는 1칸 통래칸을 두었다.

사랑채는 중문간을 기준으로 우측에 마구, 좌측에는 사랑윗방 2칸, 마루 1칸을 일렬로 배열하고, 그 좌측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 돌출된 사랑채가 있다. 평면은 2칸통 온돌방에 4칸통 사랑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구조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자연석 기단을 쌓고 네모기둥을 세워 주상부는 민도리 형식으로 처마 하중을 받았다. 특히 안대청과 사랑채는 높은 기단과 바닥으로 구성해 격식을 차렸고, 넓은 안대청에는 툇기둥이 중간에 세워져 있다. 이런 안대청의 평면과 연동해 안대청의 지붕가구는 퇴량을 둔 3고주 5량가이고, 사랑채는 평주 5량가이다. 특히 중문간과 연결된 사랑윗방은 돌출된 사랑채와 기둥열이 약간 비껴 배열되어 있어 서로 다른 시기에 건립된 양상을 볼 수 있다.

사당은 정침 동북쪽의 높은 지대에 담장과 연결된 솟을삼문 안에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에 이익공형식, 맞배 기와집이다.

[현황]

1988년 9월 23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정침의 평면 구성은 1638년(인조 16)에 박선이 주도해 건립한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종택’과 동일한 평면 형태 및 구성을 취한 점, 1655년(효종 6)에 건립하고 1699년(숙종 25) 중건 및 안채부터 차례로 증축해 ‘연결형 뜰집’으로 건축한 점, 안채 맞은편에 조선 중기 사회적 변동과 연동된 동선과 각 영역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사랑채를 돌출 배치한 시기적 평면 형태인 점, 후대 이건되긴 했지만 정침과 병렬해 학문 수양과 접객을 위한 별당 정자를 둔 격식 높은 사대부가의 배치 유형을 갖춘 점, 지역 사대부가에서는 사례가 드문 전퇴가 있는 9칸통의 넓은 안대청을 둔 중부형 평면과 연동된 독특한 지붕가구와 지붕형태가 중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점, 사랑대청에 천하 귀필로 알려진 8대손 박춘수의 무의구곡시(武毅九曲詩)가 남아 있는 점은 타 주택과 비교해 시대적 건축 특징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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