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이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50
한자 永川李氏
영어공식명칭 Yeongcheon-Lee Clan
이칭/별칭 영양이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52년 - 이사민 출생
본관 영천 - 경상북도 영천시
입향지 입향지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원직리 지도보기|창수면 인량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대지리 -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대지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이문한(李文漢)
입향 시조 이사민(李士敏)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이유와 이사민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개설]

영천이씨(永川李氏)는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한다. 영덕군 입향조는 이유(李儒)[?~?]와 이사민(李士敏)[1552~?]이다. 이유의 후손은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대지리 등지에 세거하고, 이사민의 후손은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세거하였다.

[연원]

영천이씨는 신라 6촌의 양산촌 촌장인 알평(閼平)에서 비롯되었으나, 오랫동안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시대에 평장사를 지낸 이문한을 시조로 삼고 있다. 영천이씨는 이문한의 후손으로 이대영(李大榮)을 중시조로 하는 파와 이대영의 아우 이중영(李仲榮)을 중시조로 하는 파가 있다. 이대영은 신호위 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영양군(永陽君)[영양은 영천의 별호]에 봉해져 후손들이 영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이중영은 지울주사(知蔚州事)를 지내고 울산군(蔚山君)에 봉해졌다.

[입향 경위]

영천이씨 가운데 영덕 지역에 처음 입향한 인물은 참판을 지낸 이유와 장사랑을 지낸 국포(菊圃) 이사민이다. 이중영의 손자인 이유는 15세기 초 영천군 송리에서 영덕현(盈德縣) 직천(直川)[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원직리]으로 이거하였다. 이후 이유의 6세손 모고재(慕古齋) 이학(李鶴)[?~?]이 16세기 초에 영덕군 달산면 대지리로 이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이대영의 후손인 이사민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의 증손자로 할아버지 이중량(李仲樑)이 영해부사로 있을 때 재령이씨 이은보(李殷輔)[1520~1580]의 여식과 혼인하여 16세기 후반 예천 고평에서 창수면 인량리로 옮겨와 정착하였다. 이후 후손들은 인량리에 세거하였다.

[현황]

이학의 후손들이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대지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사민이 입향한 인량리에는 후손들이 많이 떠나서, 2006년 기준 8가구만 남아 있다.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영덕군 관내 거주하는 영천이씨는 600명으로 집계되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원직리에는 입향조 이유의 아들로 우부승지를 지낸 이승길(李承吉)[1425~1473?]의 강학소인 처호정(處湖亭)이 있다. 달산면 용평리에 있는 정자 모고재(慕古齋)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고, 인량리에 있는 이중량의 종택 영덕 삼벽당(盈德三碧堂)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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