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90
한자 道溪里金寧金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ingle-Clan Village of Kimnyeong-Kim Clan in Dogye-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도계1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37가구[2011년 기준]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도계리에 있는 김녕 김씨 집성촌.

[개설]

김녕김씨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관향으로 하고, 김시흥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도계리의 김녕김씨는 17세기 초·중엽 지촌(芝村) 김연생(金蓮生)[1658~?]이 마을을 개척하고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김녕김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영덕읍에서 국도 제34호선을 따라 안동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지품면사무소에서 우회전하여 골짜기를 따라 3.5㎞쯤 올라가면 도계1리에 이른다. 도계1리에서 골짜기를 따라 4㎞쯤 더 올라가면 도계2리가 있다. 높이 800m의 명동산과 높이 400m의 포대산 자락이 마을 좌우에 나란히 뻗어내려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산간오지 마을이다. 도계1리에서 영덕읍까지의 거리는 16㎞ 정도가 된다. 오래도록 질 좋은 한지를 생산하여 명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생산이 중단되었다.

[명칭 유래]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이곳 도계리에서 지사(志士)들을 양성해서 독지곡(篤智谷)이라 했다는 설이 있고, 복숭아꽃이 많이 피어 도계(桃溪)라 했다가 도계(道溪)로 바꾸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 북면 지역으로 도계1리와 2리를 합쳐서 소항리(所項里)라 했으며, 1895년 지방관제 개편 때 분동하여 도계2리를 상소동, 도계1리하소동이라 하였다. 그 뒤 1914년에는 다시 상소동과 하소동을 합하여 도계동(道溪洞)이라 하였다. 광복 후 다시 도계1리도계2리로 분동하였다.

[형성 및 변천]

17세기 초·중엽 김녕김씨 김연생이 마을을 개척하고 정착하였다고 한다. 『지품면지』에 의하면 김연생은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9세손으로 청송 부남에서 도계리로 왔다고 한다. 그러나 『영덕읍지』의 「오래된 성씨」 편에는 김문기의 7세손 죽은(竹隱) 김급(金岌)이 상주에서 영덕읍 덕곡리 골안으로 입향하고, 김급의 손자 김연생이 도계리로 옮겨와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황]

1992년에 편찬된 『영덕군 향토사』 자료에 의하면 도계1리에 거주하는 35가구 중 김녕김씨가 29가구였으며, 도계2리에도 34가구 중 17가구가 김녕김씨였다. 『지품면지』의 자료에 의하면 2011년 10월 30일 기준 도계1리에는 총 33가구 전부가 김녕김씨였으나, 도계2리에는 김녕김씨가 대거 전출하여 총 24가구 중 김녕김씨는 4가구만 남아서 집성촌으로서의 특성이 사라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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