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27
한자 申智立
영어공식명칭 Shin Jirip
이칭/별칭 자건(子建),삼익당(三益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7년연표보기 - 신지립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78년연표보기 - 신지립 사망
부임|활동지 장수역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매양리
묘소|단소 오포촌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삼익당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호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평산[영해]
대표 관직 장수도찰방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신지립(申智立)[1587~1678]은 병자호란 후 절의를 지키고자 은둔하였으며, 유고로 『삼익당유고(三益堂遺稿)』를 남겼다.

[가계]

신지립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자건(子建), 호는 삼익당(三益堂)이다. 신희(申禧)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신협(申浹), 어머니는 무안박씨(務安朴氏)인데, 백부인 신식(申湜)과 백모 신안주씨(新安朱氏)에게 출계(出系)하였다. 할아버지는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을 지낸 신충명(申忠明), 증조할아버지는 신종제(申從濟)이며, 부인은 통정대부(通政大夫) 김홍범(金弘範)의 딸 정부인(貞夫人) 야성김씨(野城金氏)이다.

[활동 사항]

신지립은 장수도찰방(長水道察訪) 재임 중이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며 매화·국화·대나무를 심고 자호를 ‘삼익당’이라고 했다. 병자호란 후 명나라에 대한 절의를 지켜 주위 사람들이 ‘황명처사(皇明處士)’라고 일컬었다. 영덕 남강서원(南江書院) 이건을 주도하였다.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부사직(副司直)에 올랐다.

[학문과 저술]

유고로 1977년 석판본으로 간행한 3권 1책의 『삼익당유고』가 전한다. 시(詩)·만사(輓詞) 23수와 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 오포촌(烏浦村)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685년(숙종 11) 후손들이 신지립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호리에 삼익당을 세웠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