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65
한자 南義祿
영어공식명칭 Nam Uirok
이칭/별칭 계수(季綏)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1년연표보기 - 남의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남의록 임진왜란 창의
활동 시기/일시 1603년 - 남의록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04년 - 남의록 선무원종공신 3등 녹훈
활동 시기/일시 1607년 - 남의록 군기시 판관 임명
몰년 시기/일시 1620년연표보기 - 남의록 사망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이전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이전재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길 471-24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본관 영양
대표 관직 군기시 판관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의병.

[개설]

남의록(南義祿)[1551~1620]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가계]

남의록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계수(季綏)이다. 아버지는 부장(部將)을 지낸 남광(南廣), 어머니는 참봉(參奉)을 지낸 백호(白琥)의 딸 대흥백씨(大興白氏),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남한립(南漢粒),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남비(南秠)이며, 부인은 직장(直長)을 지낸 박인수(朴仁壽)의 딸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다. 이 가문은 할아버지 남한립 대부터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활동 사항]

남의록은 1551년(명종 6)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원구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김언기(金彦璣)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김언기 사후에는 신지제(申之悌)·권태일(權泰一) 등과 계를 결성하고 스승을 추숭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경주성 전투에 참전하였다. 또한, 이함(李涵)·백현룡(白見龍)·남율(南慄) 등과 함께 곽재우(郭再祐) 의진에서 활동하였다. 군중에서 공을 세워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에 제수되었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07년에는 조산대부(朝散大夫) 군기시 판관(軍器寺判官)에 올랐다.

[학문과 저술]

남의록의 편지 1편과 유훈(遺訓), 남의록의 행적을 엮은 「판관공유고(判官公遺稿)」가 『영산가학(英山家學)』에 수록되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이전(泥田)에 묘소가 있다. 남경복(南景復)이 묘표(墓表)를 지었다.

[상훈과 추모]

1604년 임진왜란 때의 군공으로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묘소 인근에 재실(齋室)인 이전재(泥田齋)[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길 471-2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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