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94
한자 鄭宗龜
영어공식명칭 Jeong Jonggu
이칭/별칭 성범(聖範),운교일사(雲嶠逸士),영은(瀛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61년연표보기 - 정종구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37년연표보기 - 정종구 사망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야성(野城)[영덕(盈德)]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정종구(鄭宗龜)[1761~1837]는 1795년(정조 19) 응제시(應製詩)를 지어 차상(次上)을 한 영덕 출신의 학자이다.

[가계]

정종구의 본관은 야성(野城)[영덕(盈德)], 자는 성범(聖範)이고, 호는 영은(瀛隱)·운교일사(雲嶠逸士)이다. 문경공 정자영(鄭自英)의 후예이며, 할아버지는 증(贈) 부총관(副摠管) 정한국(鄭漢國), 아버지는 정석화(鄭錫和)[1736~1789]이다.

[활동 사항]

정종구는 문장과 검소한 행실로 이름이 높았다. 1795년(정조 19) 국왕이 직접 시제(試題)를 낸 응제(應製)에 응시하여, 시(詩)로써 차상(次上)을 하였다. 이에 국왕으로부터 포상을 받고, 『경림문희록(瓊林文喜錄)』에 이름이 올랐다.

[학문과 저술]

「반도암해학선가(蟠桃庵海鶴仙歌)」를 지었으며, 같은 영덕현(盈德縣) 출신의 효자 장윤경(張允慶)[1552~1632]을 위해 건립한 충효각(忠孝閣)의 상량문을 짓기도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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