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70
한자 禹億萬
영어공식명칭 Woo Eokman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 6월 4일연표보기 - 우억만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우억만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42년 6월 1일연표보기 - 우억만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우억만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우억만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323 지도보기
활동지 창수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3길 20-3 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우억만의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주소는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9일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이종구(李鍾龜) 등의 주도 하에 약 200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창수면 3.1독립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우억만도 권재형·이현우·김경발·박재복의 권유를 받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오후 4시 무렵 군중은 각자 태극기 및 나무 몽둥이를 휴대하고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창수동 구장 김재수(金在守)와 신리동의 권덕명(權德明) 등은 주재소 파괴를 독려하였다. 이에 우억만은 만세를 부르짖은 후 윤순석·정재주·신갑수·오해봉·우주일·김도치·김덕규 등과 함께 주재소의 서류·장부·공문서 등을 찢어 버리고 파기하였다. 또한 윤석순·손상석·이해일 등과 함께 주재소의 책을 사무실 밖으로 내던졌으며, 이진백·손상석 등과 함께 순사 숙소를 파괴하였다. 이후 우억만은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4월 23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과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건조물 손괴, 기물 훼기, 공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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