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74
한자 李箕聖
영어공식명칭 Lee Giseong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1년 12월 2일연표보기 - 이기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이기성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76년 8월 10일연표보기 - 이기성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이기성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261 지도보기
활동지 창수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3길 20-3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기성의 본적과 주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이다.

[활동 사항]

창수면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오후 4시경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약 200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이종구(李鍾龜) 등의 주도로 일어났다. 이때 이기성은 오촌동의 이호발(李浩發)·이기석(李箕奭) 등으로부터 권유를 받고 가담하였다. 태극기와 몽둥이를 휴대한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친 후 창수주재소를 공격하였다. 당시 이기성은 장구동의 오만이, 길상동의 김중규, 신리동의 신갑수 등과 함께 돌을 이용해 주재소 벽을 무너뜨렸다. 이후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로 이기성은 체포되었다. 4월 5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6월 5일 대구지방법원과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주거침입, 건조물 손괴, 문서 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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