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336
한자 南峻明
영어공식명칭 Nam Junmyeong
이칭/별칭 덕서(德瑞),석천(石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59년연표보기 - 남준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93년 - 남준명 진사시 합격
몰년 시기/일시 1718년연표보기 - 남준명 사망
거주|이주지 경상도 영해도호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지도보기
묘소|단소 반포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영양
대표 관직|경력 진사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남준명(南峻明)[1659~1718]은 1693년(숙종 19)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유고로 「석천유고(石川遺稿)」를 남겼다.

[가계]

남준명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덕서(德瑞), 호는 석천(石川)이다. 아버지는 남상규(南尙圭), 어머니는 오이건(吳以建)의 딸 함양오씨(咸陽吳氏), 조부는 남숙(南俶), 증조부는 진사(進士) 남경훈(南慶薰), 부인은 류균해(柳均海)의 딸 전주류씨(全州柳氏)이다.

[활동 사항]

남준명은 어린 시절부터 배움이 독실하였으며, 성장 후에는 항상 주자서(朱子書)와 『가례(家禮)』 등의 서적을 탐독하였다. 문장이 뛰어나 울진현령(蔚珍縣令)으로 부임한 오도일(吳道一)이 이를 보고 칭송하였다. 1693년(숙종 19)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에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와 향촌 사회 활동에 힘썼다. 영해(寧海)는 해읍(海邑)이어서 농사짓기가 수월하지 않았기에 영해도호부사(寧海都護府使)에게 정문(呈文)하여, 수리시설을 활용하는 방안과 구황(救荒)의 대책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휘일(李徽逸)을 제향하는 인산서원(仁山書院)[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건립을 처음 주창하였다.

[학문과 저술]

남준명의 시(詩)·잠(箴)·제문(祭文)을 엮은 「석천유고」가 『익양연방집(益陽聯芳集)』에 수록되어 있다. 그 외 『가범(家範)』, 『사물회설(四勿會說)』, 『홍범연설(洪範衍說)』 등을 저술하였다.

[묘소]

남준명의 묘는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반포(反浦)[번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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