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어울리자, 영월의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003
한자 寧越-, 寧越-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명환

[정의]

강원도 영월군의 전통성과 전형성을 보여 주는 다양한 마을.

[개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생활 단위를 ‘마을’ 또는 ‘촌락(村落)’ 등이라고 한다. 마을은 가족이나 집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며, 마을 구성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공유한다. 영월군은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가 만나는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전형적인 내륙 산간 분지에 위치한 곳이 바로 영월군이다. 영월군 동쪽으로는 태백산맥이 지나가고, 북쪽으로는 차령 산지가, 남쪽으로는 소백 산지가 있어서 1,000m 이상의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남한강 상류인 동강서강이 영월 지역 곳곳을 돌아 영월읍에서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룬다.

근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강원도 원주시 및 충청북도 제천시와의 교통망이 발달하면서 영월군을 비롯하여 정선군과 평창군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석탄 산업이 활성화되었을 때는 제천을 통해서 중앙선, 태백선, 충북선을 연결하는 강원도 남부 탄전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석탄 산업의 사양화와 다양한 고속도로 건설, 자동차 교통의 발달 등으로 ‘영정평’이라 불리던 영월군, 정선군, 평창군 등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영월군의 마을들은 위와 같은 자연 및 사회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되었다. 특히 강이나 하천을 따라 길게 발달한 하안단구에 농경지를 개척하고 도로를 만들었으며, 이들 농경지를 중심으로 마을들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깊고 큰 수많은 산골짜기 입구와 산의 비탈진 면이 끝나는 완만한 곳에 화전을 하던 마을들이 있다. 영월군에서 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기원전 2,000~6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4,000년 전 청동기 시대의 석관묘가 김삿갓면 각동리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영월군의 전통성과 전형성을 보여 주는 마을 몇 곳을 선정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신선들이 사는 무릉도원면 무릉마을]

강원도 영월군에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다. 무릉도원은 신선들이 사는 마을로 속세를 떠나 있는 이상향이다. 영월군 수주면(水周面)무릉리도원리는 마을이 있었다. 현재는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수주면을 ‘무릉도원면’으로 바꾸었다. ‘수주’라는 말은 마을이 온통 물로 둘러싸여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수회면(水回面)’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양사언(楊士彦)이 다녀갔다는 요선암(邀仙岩)을 중심으로 수려한 자연을 뽐내던 곳이 무릉도원면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무릉마을이 있다. 무릉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주천강이 흐른다. 주천강은 강원도 평창군과 횡성군 경계에 있는 태기산[1261m]에서 발원하여 남한강을 이루는 물길이다. 물살이 급하지 않기에 강변 곳곳에 물놀이를 할 수 있다.

주천강변을 따라서 무릉도원면 소재지인 무릉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무릉마을에는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우체국, 무릉초등학교 등이 있다. 공공기관과 학교를 중심으로 무릉리 중심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최근 인구 감소와 주천강, 법흥천을 따라서 민박과 펜션들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면소재지는 한가하기만 하다. 무릉리 중심 마을을 지나 주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요선암으로 불리는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4대 서예가로 불렸던 양사언이 평창군수를 지낼 때 이 풍광에 반하여,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의미로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50m 가까이 되는 주변의 강바닥이 온통 기묘한 바위로 뒤덮여 있다. 바위는 모두 오목하게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를 돌개구멍 혹은 구혈[穴]이라고 부른다.

요선암 옆의 낮은 산을 오르면 요선정(邀仙亭)에 이른다. 요선정은 일제 강점기 무렵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다. 숙종의 어제시는 원래 영월군 주천면 청허루에 걸려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었다. 영조가 숙종의 어제시를 직접 찾아내 다시 쓴 뒤 편액을 내렸다. 일제 강점기 청허루가 소실되고, 걸려 있던 편액이 일본인 손에 들어가자, 무릉마을의 오래된 모임인 요선계에서 편액을 재구입하여 요선정을 짓고 봉안하였다. 또한 요선정 옆에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이 서 있다.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크기 3.5m의 석불이다. 무릉마을에 있는 요선정요선암은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마애불 뒤편으로 돌아가면 절벽 아래로 주천강과 법흥계곡의 물줄기가 흐르고, 소나무 한 그루가 주천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샘에서 술이 흐르던 주천마을]

영월군 주천면에는 술이 흘러나왔다는 술샘[酒泉]이 있다. 그래서 지명도 주천이다. 주천마을은 주천면 소재지이며, 영월군 서쪽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무릉도원면을 지나 온 주천강이 흐른다. 그리고 마을 양쪽에 태봉산과 망산이 둘러 있다. 영월읍 방향으로는 시멘트 채석장이 되어 반쯤 허물어진 다래산도 서 있다. 주천마을은 제천시와 원주시, 평창군을 갈 수 있는 길목에 해당한다. 지명의 기원이 된 술샘은 망산주천강이 만나는 곳에 있다. 술샘 입구에는 공원이 형성되어 있고 술샘을 기리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술샘이 반상(班常)을 가려서, 양반이 가면 청주가 나오고, 상민이 가면 탁주가 나왔다고 한다. 청주를 먹고 싶어진 상민이 하루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양반걸음으로 샘을 찾았으나 청주가 나오지 않고, 탁주가 나왔다. 이에 화가 난 상민이 샘을 향하여 돌을 던진 후 술이 나오지 않고 물만 나왔다고 한다.

술샘 앞 주천강에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쌍섶다리가 놓인다. 조선 시대 원주에 강원도 감영이 있었을 때, 강원도관찰사가 부임하면 가장 먼저 장릉에 배향하여야 하였다. 원주에서 출발하여 영월읍에 있는 장릉을 가려면 주천마을 입구를 흐르는 주천강을 건너야 하는데, 관찰사 일행들이 편안하게 건널 수 있도록 마을 주민들이 섶다리 두 개를 놓았다고 한다.

주천마을 중심에는 주천오일장이 열리는 주천시장이 있다. 주천오일장은 현재도 1일과 6일에 열린다. 주천시장을 중심으로 공공기관이 인근에 있으며, 공공기관과 함께 각종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근래에 와서 ‘다하누’라는 브랜드로 지역 한우농가와의 직거래를 통하여 한우를 구매할 수 있는 상점들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주천강변 제방에는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흥녕선원[현 사자산 적멸보궁 법흥사] 찾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망산 정상에는 숙종과 영조·정조의 어제시문(御製時文)과 어제필(御製筆)이 걸려 있던 빙허루를 복원하였다. 빙허루에 오르면 주천강과 함께 주천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야간 조명 시설이 되어 있어서 아름다운 빙허루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한반도지형을 품은 선암마을]

영월군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마을 가운데 한 곳이 ‘선암마을’이다. 선암마을한반도면 옹정리에 속한 마을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뒤로는 도덕산(道德山)[508.6m]이 막고 있어서 마을이 외부와 닫힌 마을이다. 마을 앞에 ‘한반도지형’을 닮은 절벽에 신선바위가 있어서 선암(仙岩)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 마을 앞에 있는 영월 한반도지형은 삼면이 강으로 둘러 있고,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모습까지 위성에서 내려다본 우리나라의 지형을 닮았다. 그래서 최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심지어는 포항 호미곶의 툭 삐져나온 꼬리까지 그대로 닮았다. 선암마을 주변에는 울창한 소나무와 꽃이 필 시절에는 무궁화가 관광객을 맞는다. 주차장에서 약 1㎞의 탐방로를 따라 걸어가면 영월 한반도지형선암마을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영월 한반도지형이 위치한 선암마을영월군 서면 지역이었다. 한반도지형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자, 행정구역 이름도 ‘서면’에서 ‘한반도면’으로 바뀌게 되었다. 관광객들이 선암마을을 찾아오면서 마을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10여 가구가 살던 작은 마을이었지만, 관광객들을 위하여 영월 한반도지형이 잘 보이는 곳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주차장과 쉼터를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선암나루를 건너 신천중학교 앞으로 통하는 농로를 이용하던 작은 마을이었다. 영월군 관내 마을들 가운데서 닫혀 있는 마을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개방된 마을로 변모하였다. 선암마을 주민들은 영농조합법인인 ‘한반도뗏목마을’을 만들었다. 한반도뗏목마을에서는 뗏목을 타고 영월 한반도지형과 그 주위를 흐르는 서강을 탐사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뗏목서강이 만들어 놓은 한반도지형의 남해안을 출발하여 서해안까지 1㎞ 구간을 왕복한다.

[서강변 들이 넓은 들골마을]

한반도지형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영월읍 방향으로 새로 난 길을 따라서 가면 영월군 남면 북쌍1리 들골마을에 이른다. 예전에는 남면 소재지에서 참나무재를 넘어 들어가던 마을이다. 들골마을 입구에 서강이 흐르기에 ‘들골교’를 지나서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서강변에 넓은 들녘이 펼쳐지므로 들골은 한자로 평동(坪洞)이라고 한다. 들골마을은 행정구역으로 남면 북쌍1리지만 영월 사람들은 들골이라 보통 부른다. 예전에는 ‘줄골’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한반도면 후탄리로 넘어가는 나룻터를 중심으로 옹정리 쪽은 윗들골[상평], 돈디 쪽은 아랫들골[하평]이다. 지금은 합쳐서 들골이라 많이 부른다. 현재는 영월 한반도지형이 알려지면서 새로 난 국도 제38호선을 따라 제천에서 영월 읍내로 향하다 보면 남면 소재지 직전에 들골마을로 들어가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들골마을을 통하여 영월 한반도지형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들골마을영월신씨, 평창이씨, 순흥안씨 등이 거주하는 집성촌이다. 영월군 관내의 마을들 가운데 집성촌의 모습을 아직도 유지하는 대표적인 마을이다. 특히 영월신씨들골마을에 터를 잡은 것이 500여 년이 넘는다고 전한다. 아랫들골에 신씨 제실이 있으며, 제실에서 매년 10월 무렵에 시제를 지낸다. 들골교를 지나 들골마을에 들어서면 맞은편에 마을회관이 있다. 주변에는 솟대와 돌장승 등이 조경되어 있으며, 마을회관은 마을 주민들이 모이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들골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농경지는 논6.1㏊, 밭61㏊ 등 모두 67.2㏊로 대부분 밭농사를 짓는다. 영월 대표 특산물인 고추를 비롯하여, 배추, 옥수수, 콩 등을 재배한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영월군 관내에서 잎담배를 생산하던 대표적인 마을이었다. 최근에는 사과 농사도 짓는다. 특이한 것은 들골마을에 흡연자가 없다. 잎담배 재배를 많이 하던 지역이었지만, 2008년 3월 마을 주민들 모두 담배를 끊고 ‘금연마을’을 선언하였다.

들골마을 주민들은 강원도민속예술축제에 영월군 대표로 많이 참여하는 마을이기도 하며, 마을에서는 ‘지게상여놀이’에 대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들골마을에는 ‘우구정 가옥’이라 불리던 고택이 한 채 있다. 지금은 ‘영월 북쌍리 고택’으로 부르는데,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영월 북쌍리 고택은 건축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전해지는 말로는 100년 이상 된 집이라고 한다. ‘ㄱ’ 자 형식의 안채와 ‘ㅡ’ 자 형식의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장작을 때는 아궁이에 솥이 걸려 있고, 집 주변 배추밭과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어울려 있다. 현재는 한옥 숙박을 하고 있으며, 2014년 한국관광공사 선정 겨울철 여행하기 좋은 한옥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영월군의 정보화마을 유전마을]

영월군 산솔면 녹전3리 유전마을은 영월군을 대표하는 정보화 마을이다. 유전마을녹전초등학교 뒤에 있으며, 마을의 아랫 부분을 하유전(下柳田), 위쪽을 상유전(上柳田)이라고 한다. 옛날에 버드나무가 많아서 ‘버들밭골’, ‘버들아치’ 등으로 불렀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유전마을은 고려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본격적인 마을 형성은 영월신씨와 김녕김씨가 정착한 조선 초기이다. 유전마을은 2001년 강원도 ‘새 농어촌 건설 운동 우수 마을’로 선정되었고, 2007년에는 ‘영월삼굿마을’로 정보화 시범 마을에 선정되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한 전통 체험하기 좋은 농촌 체험 휴양 마을 1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삼굿마을’이라 불리는 유전마을에서는 절임 배추와 된장, 더덕, 옥수수 등의 농특산물을 온라인 장터를 통하여 판매하며, 삼베를 얻기 위하여 삼나무를 찌는 삼굿 체험과 다양한 농촌 체험, 전통 혼례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설날에는 마을 출향인과 마을에 거주하는 분들이 경로당에 모여 합동 세배를 하며, 마을 중앙에 서낭당이 있어서 음력 정월 14일에 서낭제를 지낸다. 마을 서낭당에서 모시는 신은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고 하는 ‘단종’이다. 한편 도시 사람들이 산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2001년부터 매년 9월 말에 ‘송이 따기 체험 및 삼굿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마을 자체적으로 ‘민속자료관’을 운영하고 있다. 2009년에는 영월읍 동강둔치에서 있었던 동강축제에서 삼굿으로 옥수수 1만 개를 동시에 삶아 한국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다.

[포도 향이 짙은 예밀마을 ]

영월군 김삿갓면에 예밀마을이 있다. 행정구역상 예밀마을은 1리와 2리로 구분된다. 영월읍에서 동쪽으로 영월 고씨굴김삿갓면 소재지인 옥동리를 지나면 예밀마을에 이른다. 예밀마을 뒤편에는 덕가산과 삼봉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남한강 지류인 옥동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마을이다. 예밀리는 ‘예미(禮美)’와 ‘밀골(密골)’을 통합하면서 첫 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특히 ‘밀골’은 고려 의종 때 ‘밀주’라 불리는 관청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밀주는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 난리를 피하면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다. 조선 시대에는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인 두창(杜倉)이 있었다. 현재 예밀마을은 영월 포도를 키우는 대표적인 마을이다.

예밀마을은 2001년부터 마을 자체로 포도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포도축제를 통하여 ‘예밀포도마을’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예밀마을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하다. 그리고 영월군 자체가 석회암 지대이기 때문에 포도 재배에 필요한 석회석 토질을 갖추고 있다. 그렇기에 예밀마을은 포도 생산에 적합한 마을이다. 농촌진흥청의 탑프루트 프로젝트 시범 사업 단지로 선정된 ‘예밀포도작목반’에서 생산한 포도는 당도가 높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2006년에는 농촌 체험 관광 마을로 선정되었고, 2007년에는 건강 장수 마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예밀1리에서는 포도 따기 체험 등 포도와 관련된 체험을 운영하고, 예밀2리에서는 와인과 관련된 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예밀2리에서는 2009년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2011년 예밀와이너리, 와인체험관 등을 준공하여 마을 사업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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