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538
한자 保安道
영어공식명칭 Boand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용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 보안도 폐지
관할 지역 보안도 - 보안[강원도 춘천시]|인남[춘천시]|부창[춘천시]|원창[춘천시]|연봉[강원도 홍천군]|천감[홍천군]|연평[강원도 영월군]|약수[강원도 평창군]|평안[평창군]|여량[강원도 정선군]|창봉[강원도 횡성군]|갈풍[횡성군]|오원[횡성군]|벽탄[강원도 정선군]|호선[정선군]|안흥[강원도 횡성군]|유원[강원도 원주시]|신흥[원주시]|양연[영월군]|단구[원주시]|신림[원주시]
관할 지역 보안도 - 안보[강원도 춘천시]|천감[강원도 홍천군]|인람[춘천시]|원창[춘천시]|부창[춘천시]|연봉[홍천군]|창봉[강원도 횡성군]|갈풍[횡성군]|오원[횡성군]|안흥[횡성군]|단구[강원도 원주시]|유원[원주시]|안창[원주시]|신림[원주시]|신흥[원주시]|양연[강원도 영월군]|연평[영월군]|약수[강원도 평창군]|평안[평창군]|벽탄[강원도 정선시]|호선[정선시]|여랑[정선시]|임계[강원도 강릉시]|고단[강릉시]|횡계[강릉시]|진부[강릉시]|대화[강릉시]|방림[강릉시]|운교[강릉시]

[정의]

조선 시대 강원도에 설치되었던 역도의 일종.

[개설]

보안도(保安道)는 조선 시대 강원도에 설치되었던 역도(驛道)이다. 보안도 산하에는 21~29개의 역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중 영월에는 양연역(楊淵驛)과 연평역(延平驛)이 있었다. 보안도는 다른 역도와 함께 조선 국왕의 왕명 및 공문서 전달, 이외 진상품, 공물 운송, 사신 영송과 접대를 위해 활용되었으나 1896년(고종 32) 근대적 교통 통신 제도의 도입과 함께 폐지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보안도는 오늘날의 국도(國道)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의 역도는 역참의 운영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이는 보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선 시대의 역참은 1392년(태조 1) 7월, 왕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왕명 및 공문서의 전달은 중앙과 지방 사이의 정치 및 행정 체계를 연결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이외에도 역참은 진상품이나 공물의 운송, 봉명사신을 포함한 사객의 왕래에 따른 영송과 접대를 위한 역마 제공, 통행인의 규찰 및 국경을 지키는 관방(關防)의 역할까지 수행하였다. 그런데 역참이 운영되려면 바로 역도가 있어야 하였고, 이 같은 배경에서 조선왕조는 전국에 역도를 편성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보안도였다.

[내용]

보안도는 조선 시대 강원도에 있었던 역도 중 하나였다. 역도는 도로의 상태와 중요도 및 산천의 거리에 따라 수 개 내지 수십여 개의 역(驛)을 하나로 묶어 역승(驛丞) 또는 찰방(察訪)으로 하여금 관리하는 체계를 말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전국에 산재한 538개의 역이 44개의 역도로 편성되어 있다. 세조 대의 역도 개편은 세조 3년(1457), 세조 6년(1460), 세조 8년(1462) 등 3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 개편으로 『경국대전』[1485]에 수록된 전국의 역참 조직은 41역도 543속역으로 편성되었다.

조선 전기의 역참 제도는 임진왜란[1592~1598]을 당하여 그 기능이 거의 마비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1597년(선조 30) 기발(騎撥)은 매 20리마다 1참(站)을 두고, 보발(步撥)은 30리마다 1참을 두어서 서발(西撥)·북발(北撥)·남발(南撥)의 3대로를 근간으로 한 파발 제도가 성립되었다. 영월 지역에는 보안도에 속하는 양연역과 연평역이 있었다. 이는 조선 후기에도 이어져 영월부에는 연평·양연 두 개의 역에 대마 3필, 기마 5필, 복마 4필, 역리 43명, 노비 61명[노 34명·비 27명]을 두고 있었다. 모든 역도는 갑오개혁을 계기로 1896년(고종 32)에 근대적인 교통 통신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변천]

보안도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강원도 역도로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과 같이 등장하며, 이때 보안도에는 28개 역[보안(춘천), 인남(춘천), 부창(춘천), 원창(춘천), 연봉(홍천), 천감(홍천), 연평(영월), 약수(평창), 평안(평창), 여량(정선), 창봉(횡성), 갈풍(횡성), 오원(횡성), 벽탄(정선), 호선(정선), 안흥(횡성), 유원(원주), 신흥(원주), 양연(영월), 단구(원주), 신림(원주)]이 배속되어 있었다.

이후 세조 대에는 1457년(세조 3), 1460년(세조 6), 1462년(세조 8) 등 3차례에 걸쳐 역도 개편이 이루어졌다. 1차 개편은 주로 기존의 역도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시행되었는데, 이때는 강원도의 역로가 피폐하고 역승의 관품이 낮아 역무를 처리하는 데 원활하지 못하다 하여 대창도와 보안도를 합하여 대창도라 칭하고 찰방을 파견하도록 하였다. 2·3차 개편은 역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여 재편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때는 은계도[찰방], 보안도[찰방], 평릉도[역승], 상운도[역승] 등 4개 역로로 개편되었고, 정비된 역로는 4역도 78역으로 확립되었다.

『경국대전』[1469]에는 강원도 역도로 은계도, 평릉도, 상운도와 함께 등장하며, 이들 역도에 모두 78개의 역이 있었고, 그중 보안도에는 29개 역[안보(춘천), 천감(홍천), 인람(춘천), 원창(춘천), 부창(춘천), 연봉(홍천), 창봉(횡성), 갈풍(횡성), 오원(횡성), 안흥(횡성), 단구(원주), 유원(원주), 안창(원주), 신림(원주), 신흥(원주), 양연(영월),연평(영월), 약수(평창), 평안(평창), 벽탄(정선), 호선(정선), 여랑(정선), 임계(강릉), 고단(강릉), 횡계(강릉), 진부(강릉), 대화(강릉), 방림(강릉), 운교(강릉)]이 속하여 있었다.

『속대전』[1744]에는 은계도, 평릉도, 상운도와 함께 등장하며, 이들 역도에 속한 역이 모두 77개인 가운데 보안도에는 29개 역[안보(춘천), 천감(홍천), 인람(춘천), 원창(춘천), 부창(춘천), 연봉(홍천), 창봉(횡성), 갈풍(횡성),오원(횡성), 안흥(횡성), 단구(원주), 유원(원주), 안창(원주), 신림(원주), 신흥(원주), 양연(영월),연평(영월), 약수(평창), 평안(평창), 벽탄(정선), 호선(정선), 여랑(정선), 임계(강릉), 고단(강릉),횡계(강릉), 진부(강릉), 대화(강릉), 방림(강릉), 운교(강릉)]이 속하여 있었다. 보안도는 1896년(고종 32)에 근대적인 교통 통신 제도가 도입되면서 역도가 폐지될 때 함께 폐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보안도는 조선 시대 강원도에 존재하였던 주요 역도이며, 영월 지역의 양연역과 연평역 등이 보안도에 소속되어 있었다. 따라서 보안도는 조선 시대 영월 지역의 교통 환경을 보여 주는 동시에, 조선 시대 교통 체계에서 영월 지역의 역할과 위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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