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608
한자 靈泉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영흥리 1090-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성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영천비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영흥리 1090-1]지도보기
성격 비석
관련 인물 박기정
재질 석재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 제정을 설치한 연유를 기록한 비.

[개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한식 제례 때가 되면 항상 물이 갑자기 불어났다. 그러자 계유정난으로 죽음 당한 이들의 원한이라 여기고 이를 달래기 위하여 제례를 지내고 ‘영천(靈泉)’이라 새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건립 경위]

영천비 뒷면에 건립 경위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장릉의 우물은 평소에 장마가 들어도 수량이 늘거나 줄지 않았다. 그런데 매년 한식 제향을 지낼 때가 되면 우물의 물이 갑자기 불어나 주민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1791년(정조 15) 정조는 능침 아래에 제단을 쌓고 단종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사약을 받는 과정에서 희생된 200여 명에게 제향을 올리도록 하였는데 이때 자규루 터가 발견되어 누각을 중건하였다. 제단과 누각 중건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당시 충정공 박팽년의 후손 박기정이 영월부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조정에 상세히 보고하였다. 정조는 박기정에게 명하여 이 내용을 돌에 새겨 표시하도록 명하였고 비문이 세워지게 되었다. 비문은 서영보가 짓고 글씨는 박기정이 썼다.

[위치]

영천비(靈泉碑)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90-1번지 장릉 내에 있다. 정자각의 남쪽 30m 지점에 있다.

[형태]

영천비는 제정의 서쪽에 지붕돌을 갖추어 세운 비석이다.

[금석문]

영천비의 앞면에는 정조가 내린 ‘영천’이라는 우물의 이름을 한자로 새기고 뒷면은 비를 건립하게 된 연유를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천비단종에 대한 영월부민들의 당시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