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684
한자 南孝溫
영어공식명칭 Nam Hyoon
이칭/별칭 백공(伯恭),추강(秋江),행우(杏雨),최락당(最樂堂),벽사(碧沙),문정(文貞)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희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54년연표보기 - 남효온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80년 - 남효온 진사시 합격
몰년 시기/일시 1492년연표보기 - 남효온 사망
추모 시기/일시 1513년 - 남효온 승정원 좌승지 추증
추모 시기/일시 1782년 - 남효온 이조판서 추증
사당|배향지 창절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남성
본관 의령(宜寧)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애 있는 창절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학자.

[개설]

남효온(南孝溫)[1454~1492]은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이 단종(端宗)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실을 기록한 「육신전(六臣傳)」을 저술하였다.

[가계]

남효온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행우(杏雨)·최락당(最樂堂)·벽사(碧沙)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문관직제학을 지낸 남간(南簡)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 남준(南俊)이다. 아버지는 남전(南恮)이고, 어머니는 도사 이곡(李谷)의 딸 고성이씨(固城李氏)이다. 부인은 군수 윤훈(尹壎)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고, 아들은 남충세(南忠世)이다.

[활동 사항]

남효온은 1454년(단종 2)에 태어났다. 1478년(성종 9) 자연재해가 일어나자 성종(成宗)이 여러 신하들에게 직언을 구하였는데, 남효온도 상소를 올려 재이(災異)를 막을 방안을 제시하였다. 남효온은 상소를 통하여 첫째, 제때에 혼인을 치르게 하여 혼자 사는 원한을 없애고, 둘째, 지방관을 신중히 선발하여 백성의 원망이 사라지게 하며, 셋째, 인재의 등용문을 넓혀 산림(山林)의 유일(遺逸)을 선발하여서 더 많은 어진 이와 군자가 국왕을 보좌하게 하고, 넷째, 궁궐의 모리기관(謀利機關)인 내수사(內需司)를 혁파하여 민심을 위로하며, 다섯째, 이단인 무당과 불교를 혁파하여 하늘과 사람이 화합하게 하고, 여섯째, 학교를 일으켜 세워 인재를 배출하여 명신(名臣)을 많게 하며, 일곱째, 풍속을 바로잡고, 여덟째,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소릉을 복위하여 원혼을 달래면 재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건의하였다.

특히 조정 내에서 엄청난 분란을 불러일으킨 소릉을 복위하자는 마지막 방안은 세조(世祖)를 옹립한 당시 집권 세력인 정난공신(靖難功臣)들의 존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이었다. 이 문제로 훈구파는 심하게 반발하여 남효온을 국문하자는 논의마저 일어났을 정도였다.

남효온은 1480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길을 단념하고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호남을 여행하던 중 김종직(金宗直) 만나 스승으로 섬기게 되었으며, 생육신 중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과도 친교를 맺었다. 이후 남효온은 평생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절개를 지키며 살다가 1492년(성종 23) 사망하였다.

남효온은 1504년(연산군 10)에 발생한 갑자사화 때 소릉 복위를 주장한 상소 내용이 문제가 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으며, 아들 남충세도 죽임을 당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남효온을 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김시습·조려(趙旅)·성담수(成聃壽) 등과 더불어 생육신(生六臣)으로 불렀다.

[학문과 저술]

남효온의 저술로는 「육신전」을 비롯하여 친분이 있는 사우 50여 명에 대한 행적과 문장 등을 기록한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 『추강냉화(秋江冷話)』 등이 있다. 문집으로 『추강집(秋江集)』 5권 4책이 있다.

[상훈과 추모]

남효온은 1513년(중종 8) 소릉이 복위되자 신원되어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고양의 문봉서원(文峰書院), 장흥의 예양서원(汭陽書院),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1782년(정조 6) 다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문정(文貞)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남효온은 조선 후기에 지금의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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