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686
한자 趙旅
영어공식명칭 Jo Ryeo
이칭/별칭 주옹(主翁),어계(漁溪)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희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20년연표보기 - 조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53년 - 조려 진사시 합격
몰년 시기/일시 1489년연표보기 - 조려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98년 - 조려 이조참판 추증
추모 시기/일시 1781년 - 조려 이조판서 증직
거주|이주지 함안 - 경상남도 함안군
사당|배향지 서산서원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35[원북리 537-2]
성격 처사|생육신
성별
본관 함안(咸安)

[정의]

조선 전기 강원도 영월에서 단종에게 문후를 드렸다고 전하는 학자.

[가계]

조려(趙旅)[1420~1489]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때 판도판서를 지낸 조천계(趙天啓)이고, 할아버지는 공조전서 조열(趙悅)이다. 아버지는 조안(趙安)이다.

[활동 사항]

조려는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1455년(세조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조려는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 함안으로 내려와서 서산(西山) 아래에서 은거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중국 은나라의 충신인 백이(伯夷)의 고사에서 따와, 함안의 서산을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

조려는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스스로 ‘어계처사(漁溪處士)’라고 불렀다. 생육신(生六臣) 중 한 사람이다.

[학문과 저술]

조려의 저술로는 시문집인 『어계집(漁溪集)』 3권 2책이 있다.

[상훈과 추모]

조려는 1698년(숙종 24) 노산군(魯山君)단종으로 복권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703년 경상도 유생 곽억령(郭億齡) 등이 사육신(死六臣)의 전례에 따라 생육신인 조려도 사당을 세워 달라고 건의하였고, 1706년에 국왕의 승인을 받아 서산서원(西山書院)이 건립되었다. 경상남도 함안에 있는 서산서원에는 조려를 비롯하여 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원호(元昊)·남효온(南孝溫)·성담수(成聃壽)가 배향되어 있다. 조려는 1781년(정조 5) 이조판서로 증직되었으며, 정절(貞節)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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