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영·채빈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754
한자 蔡錫永 蔡彬夏
영어공식명칭 Chae Seokyoung·Chae Binha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성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649년연표보기 - 채석영 효자 정려
추모 시기/일시 1889년연표보기 - 채빈하 효자 정려
추모 시기/일시 1974년 4월 - 채빈하·채석영 효자각 보수
추모 시기/일시 1994년 - 채빈하·채석영 효자각 재건
추모 시기/일시 1998년 - 채빈하·채석영 정려각 효자각 보수
출생지 영월 - 강원도 영월군
거주|이주지 영월 - 강원도 영월군
성격 효자
성별 남성
본관 평강(平康)

[정의]

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효자.

[가계]

채석영(蔡錫永)[?~?]과 채빈하(蔡彬夏)[?~?]는 영월 출신으로, 본관은 평강(平康)이다.

[활동 사항]

채석영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병간호를 하였으나 어머니는 채석영이 일곱 살 때 사망하였다. 채석영은 열세 살 때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보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장례를 치렀다. 아버지 묘소의 봉분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모두들 집으로 피신하였는데, 상주(喪主)인 채석영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다시 산소로 가 보니 채석영이 홀로 묘소 앞에서 엎드려 울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펴보니 신기하게도 울고 있던 채석영은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채석영은 이후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목욕도 하지 않고 머리도 빗지 않았으며, 옷도 갈아입지 않으며 슬퍼하였다. 또한 채석영이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항상 큰 호랑이가 곁에서 보호하였다고 한다.

채빈하는 아버지가 병에 걸려 위독하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니며 병간호를 하였으나 별 효과가 없어서 열한 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이후 3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다.

[상훈과 추모]

채석영은 1649년(인조 27)에 정려되었고, 채빈하는 1889년(고종 26)에 정려되었다. 현재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채빈하·채석영 효자각이 있다. 채빈하·채석영 효자각은 1974년 4월 후손인 채수행이 보수하였고, 1994년 후손인 채원석이 중건하여 1998년에 보수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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