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803
한자 金泰元
영어공식명칭 Kim Taewon
이칭/별칭 집의당(集義堂)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엄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3년 9월 15일연표보기 - 김태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5년 - 김태원 경기도 이천에서 이천수창의소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06년 5월 - 김태원 최익현 의진에서 소토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김태원 이강년 의진 가담
몰년 시기/일시 1933년 3월 13일연표보기 - 김태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김태원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출생지 영월 - 강원도 영월군
거주|이주지 원주 - 강원도 원주시
활동지 경기도 - 경기도
성격 의병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최익현 의진 소토장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장.

[개설]

김태원(金泰元)[1863~1933]은 1863년(철종 14) 영월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일제의 침략에 맞서서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가계]

김태원의 본관은 해풍(海豊)이며, 호는 집의당(集義堂)이다. 아버지는 김집(金鏶)이다.

[활동 사항]

김태원은 1895년 12월 21일 경기도 이천에서 김하락(金河洛)·조성학(趙性學)·구연영(具然英)·신용희(申龍熙)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안성 지역에서 민승천(閔承天) 의진과 합세하는 등 의병을 모집하였다. 김태원 등은 1896년 1월 17일 이천수창의소(利川首倡義所)를 결성하였고, 창의대장에는 민승천(閔承天)을 추대한 후 김태원은 선봉장을 맡았다.

이천수창의소 결성 다음 날인 1월 18일 일본군 수비대 180여 명이 이천을 공격하였다. 김태원 등 의병장들은 의병들이 아직 훈련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매복 작전을 펼쳤는데, 의병들은 늦은 밤까지 전투를 벌여 일본군 대다수를 살상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2월 12일에 치러진 이현 전투에서는 일본군에게 패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남한산성에서 광주와 양근 의병진과 합세한 이천수장의소는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하였으나 일본군의 반격에 밀려 남한산성에서 물러나 영남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김태원은 남하하던 중 유인석(柳麟錫) 의진에 참여하고 있던 서상렬(徐相烈) 의병장을 만나 대열에 합류한 뒤 유인석과 함께 중국 서간도로 이동하였다.

1900년 중국에서 일어난 의화단의 난으로 귀국한 김태원은 1906년 5월 최익현(崔益鉉) 의진의 소토장(召討將)을 맡아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1907년에는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이강년 의병장이 체포되자 원주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1933년 3월 13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태원의 저술로는 『집의당유고(集義堂遺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태원의 공적을 기려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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