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827
한자 石商益
영어공식명칭 Seok Sangi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희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7년 9월 6일연표보기 - 석상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0년 7월 8일 - 석상익 강원도 전투경찰 제8대대 제1중대 중대장 취임
몰년 시기/일시 1950년 7월 8일연표보기 - 석상익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8년 7월연표보기 - 석상익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
활동지 녹전리 -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지도보기
성격 경찰|6·25전쟁영웅
성별 남성
대표 경력 강원도 비상경비사령부 전투경찰 제8대대 제1중대 중대장

[정의]

강원도 영월군에서 벌어진 녹전전투에서 활약한 6·25전쟁영웅.

[개설]

석상익(石商益)[1919~1950]은 1919년 9월 6일에 태어났다. 6·25전쟁 당시 강원도 영월 지역 사수의 임무를 받고 비상경비사령부 전투경찰 제8대대 제1중대 소속 경위로서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에서 벌어진 영월 녹전전투에 투입되었다. 중대장인 김해수 경감이 전사하자 중대장의 임무를 이어받아 전투를 이끌다가 1950년 7월 8일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활동 사항]

1950년 7월 강원도 비상경비사령관 윤명운 경무관은 내무부장관의 명령에 따라 철수 경찰 병력을 수습하여 영월을 사수하기로 결심하였다. 영월이 주요 탄광 지대이고, 특히 영월 화력발전소, 상동중석광산, 마차광업소 등이 있었기에 이를 사수하기 위하여 강원도 경찰학교장였던 김인호 총경을 영월지구전투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강원도 전투경찰 제8대대와 홍천경찰서 및 인제경찰서 전투경찰 100명으로 영월 지구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영월을 지키게 하였다. 이에 김인호는 전체 대원과 함께 영월 사수의 결의를 다짐하고, 부대를 영월 주변의 고지에 배치하여 방어 기지를 구축하였다.

영월 지구에서는 1950년 7월 2일부터 수차례의 공방전이 벌어졌다. 중과부적으로 영월 방어부대는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윤명운 사령관은 영월 탈환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김해수 경감이 이끄는강원도 전투경찰 제8대대 제1중대는 비상경비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영월 공격을 개시하였다. 7월 8일 14시 무렵 제8대대 제1중대가 영월군 중동면 녹전리송현고개에 진출하였을 때, 거기에서 선발대로 보이는 북한군과 조우하였다. 이때 기선을 제압하는 선제공격으로 일제사격을 하면서 북한군 일진을 격퇴하고, 계속 추격하여 백병전까지 벌였다. 곧이어 북한군의 후속부대에 제1중대가 포위된 채 공격받았다. 작전 중에 중대장 김해수가 전사하자, 즉시 석상익 경위가 제1중대장을 맡아 부대를 이끌었다. 석상익의 지휘 아래 대원은 전력의 열세 속에서도 녹전전투에서 북한군에 맞서 싸웠다. 후임 중대장 석상익마저 전사하고 많은 대원이 전사하자, 전열이 급속히 무너졌다. 생존 대원은 북한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녹전전투에서 북한군 73명을 사살하는 전과도 거두었으나, 중대장 김해수 경감과 후임 중대장 석상익 경위를 비롯한 24명의 전투경찰이 전사하고, 부상자 7명을 포함한 남은 병력만이 영월 수복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원대 복귀하게 되었다. 그 뒤 영월 수복을 위한 작전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지만, 김해수·석상익을 비롯한 제1중대원들의 활약과 희생으로 북한군의 진격을 크게 지연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훈과 추모]

국가보훈처는 2018년도 ‘이 달의 6·25전쟁영웅’ 중 7월의 인물로 김해수석상익을 선정하였다. 전투가 벌어졌던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에는 석상익 경위를 비롯한 전투경찰을 기리는 현충 시설인 호국경찰 전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해마다 추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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