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1062
한자 儒敎
영어공식명칭 Confucianism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흔우

[정의]

강원도 영월군 지역에서 행하여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개설]

유교는 공자(孔子)를 조술(祖述)하는 유자(儒者)들의 학문이며 공자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생활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유교의 현실적 측면은 공자가 “자신의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히 한다[修己而安百姓].”라고 말한 것과 같이 자기도야[修身]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을 평안하게 하는[平天下]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이상으로 삼는 데서 잘 나타난다. 유교의 도는 수도적(修道的) 측면과 행도적(行道的) 측면을 병행하기 때문에 개인의 수양을 사회까지 확대시키고자 한다. 유교는 세상 속에서 인간성을 수양하는 목표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밝은 덕을 세상에 밝히는 것[明明德於天下]’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다. 유교의 현실 지향적 성격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현실을 개혁하려는 데 특징이 있는데, 인간에 내재된 참된 가치를 현실 속에서 보존·함양함으로써 현실을 개혁하는 적극적 방법을 택하고 있다.

유교의 종교적 측면은 경천(敬天) 사상과 조선(祖先)에 대한 제사 의례에서 볼 수 있다. 유교는 제사를 중요시한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행하는 제의는 기복행사(祈福行事)이지만, 유교의 제의는 윤리성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유교의 제의는 대가나 보상을 요구하는 구복(求福)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유교의 제의는 주술적 요구를 배격하고 세속 세계를 도덕화하려고 한다. 전통적인 습속, 오사(五祀)나 절사(節祀)와 같은 국가 행사나 민간신앙과 습합(習合)한 부분이 있으나 부차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교의 제의는 건실한 윤리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외형적·절차적 관계를 설정할 뿐만 아니라 ‘고무진신(鼓舞盡神)’하고 ‘신이명지(神而明之)’하는 신명성(神明性)을 다함으로써 인간의 주체적 체험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조선(祖先)에 대한 제사는 자신이 생겨난 근원을 반성하여[報本追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자각하는 데 있다. 의례는 효성의 정감을 담는 그릇이요,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존경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의의를 느낀다. 유교는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객관적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현세에 살아 있는 이들의 진실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 있는 이 섬기기와 같이 한다[事死如事生].”라고 하였고, “내가 직접 제사하지 않으면 제사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吾不與祭 如不祭].”라고 하였다. 효는 존경의 마음이 조상뿐만 아니라 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교의 중요한 종교적 덕목이다.

[변천]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래된 것은 한자(漢字)의 도입 시기와 일치한다. 유교는 삼국 시대 이후 정치사상과 이념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에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개인 수양과 생활 의례가 중시되었다. 당시 불교 국가인 고려와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였던 사대부는 성리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로써 유교[성리학]는 조선 시대 500년 동안 전 계층에게 삶 자체이며 국가의 기본 원리가 된다. 조선 초기에는 치인(治人)을 응용한 정치적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고, 16세기부터는 수기(修己)에 역점을 둔 학문적 성리학이 발달하였다. 이런 성리학 사상은 고려처럼 유학이 단순한 통치 이념이나 지배계급을 위한 교육 내용 자체로 그친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 서민생활에 깊이 영향을 생활 규범이었다. 남아 있는 자료가 부족하여 고려 시대까지 영월 지역의 유교 현황을 살펴보기는 어렵다.

관리 양성과 유교적 윤리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영월향교가 창건된 것은 조선 초인 1398년(태조 7)이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통치 이념인 성리학을 민간에 보급시키고,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리를 양성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성립된 상황에서 영월향교도 건립되었다. 영월향교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892번지에 있다. 영월향교 대성전에는 5성(五聖)[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과 중국 송조 2현(宋朝二賢)[정호·주희],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우리나라 18현은 동위(東位)에 모신 설총, 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이며, 서위(西位)에 모신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이다. 그리고 조선 후기 숙종 때 영월에 창절서원이 건립되었고, 또 법흥서당, 큰골서당 등이 존재하여 민간 초등교육 기관으로서 초등교육을 담당하였다. 창절서원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63-1번지에 있다.

영월 유교사상의 발로와 유풍(儒風)은 단종의 고사(故事)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영월은 단종의 종언지(終焉地)이고 단종의 최후와 유교의 절의사상(節義思想)이 얽힌 고사들이 영월에 있기 때문이다.

단종이 신원(伸寃)될 때 왕이 내린 글에 “강원도에 국록을 받고 있는 수령 방백들이 있는데, 수령 방백들도 못한 일을 그대 지방호장(地方戶長)으로 충의를 현양하였다.”라고 극찬하였다. 엄흥도(嚴興道)단종 사후 멸문지화를 예견하면서도 단종의 시신을 수장(收藏)한 일 등을 유교적 절의사상의 표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영월이 오늘날 충절의 고장으로 알려진 것은 엄흥도와 같은 유교의 충의지사(忠義之士)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 유적]

영월의 유교 유적으로는 향교[영월향교], 서원(書院)[창절서원], 정자, 원사(院祠), 정려각 등이 있다. 정자에는 금강정을 비롯하여 요선정, 빙허루 등이 있다. 원사에는 영모전, 충절사[김상태 의병장]가 있고 정려각 및 비에는 충신·효자·열녀·효부에 관한 정려각과 비가 있다. 영모전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28번지에 있고, 충절사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27-2번지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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