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재의 해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1278
한자 - 骸骨
영어공식명칭 Skull Of Jori Ridg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기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9년 12월 2일 - 「조리재의 해골」 『영월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조리재 -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김조리|머슴
모티프 유형 전화위복

[정의]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 있는 조리재의 지명유래담.

[개설]

강원도 영월군과 충청북도 제천시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영월군 남면 토교리 고개를 조리재라고 한다. 제천의 송학에서 영월군에 있는 쌍용리로 큰길이 나기 전에는 조리재 고개를 통하는 길이 유일한 장삿길이었다. 「조리재의 해골」조리재에 얽힌 지명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조리재의 해골」은 2019년 간행된 『영월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경상도 어느 마을에 키가 작고 왜소한 체구의 김씨가 살았는데, 행동이 몹시 경망하여 ‘김조리’라는 별명이 있었다. 쌀을 이는 데에 사용하는 조리는 항상 촐랑대기 마련이어서 김씨의 경망스러운 행동을 풍자한 별명이었다. 김조리는 농사를 지어 보아도 잘되지 않았고, 엿장수를 시작하여 열심히 뛰어 보았으나 이 또한 부진하였다. 무엇을 하여도 뜻대로 되지 않자 김씨는 허탈함과 실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안 되면 조상 탓이라고, 김조리는 명산을 찾아 아버지 산소를 옮겨 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산수가 좋다고 알려진 강원도에 가서 묏자리를 구하기로 작심하였다. 김조리는 아버지 묘를 파서 유골을 포장하여 괴나리봇짐으로 만들어 짊어지고 강원도를 찾았다. 그리고 영주, 단양, 제천을 거쳐 영월 땅으로 향하여 오는 길에 고개에 접어들었다. 그 고개는 제천과 영월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에 장돌뱅이 장사꾼이 많았다. 김조리는 여러 사람과 함께 주막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보니 아버지 유골이 들어 있는 괴나리봇짐은 없어지고 참빗이 든 보따리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 유골을 잃어버린 김조리는 앞이 캄캄하였다. 조상에게 송구스러웠으나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김조리는 아버지 유골과 바뀐 참빗 보따리를 둘러메고 참빗 장사를 시작하였다. 어찌 된 일인지 참빗이 잘 팔려 많은 돈을 벌었고, 결국 김조리는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논과 밭을 장만하여 잘살게 되었다.

한편, 예전 주막집에서 김조리와 같이 잠을 잤던 참빗 보따리 주인은 도무지 장사가 되지 않아 곤궁한 참이었다. 이때 같은 방에 투숙한 키 작은 사람이 괴나리봇짐을 유난히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을 보고 필시 귀중품이리라 짐작하였다. 욕심이 난 참빗장수는 새벽에 김조리의 괴나리봇짐을 훔쳐서 영월 땅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고갯마루를 넘어 영월 땅 으슥한 곳에 이른 후 사람 왕래가 없는 틈을 타서 괴나리봇짐을 풀었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유골만 들어 있었다. 참빗장수는 참빗 보따리만 잃어버린 것에 분통이 터져 홧김에 유골을 여기저기 사방으로 팽개쳐 버렸다. 그러고는 농촌으로 들어가 머슴으로 전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경상도 어느 부잣집 머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이 추석이 다가와도 산소에 벌초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추석날이 되어 주인과 머슴은 한가하게 술상을 차려 놓고 술을 같이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주인이 머슴을 위로하기 위하여 격려의 말을 전하였다. “나도 젊었을 때는 그대와 같이 머슴도 살았고, 행상도 하면서 무척 고생을 하여 보았다네. 그러니 그대의 사정도 알 만하네. 때가 되면 성공할 수 있으니 참고 살아가게.” 그러고는 무슨 일을 하여도 안 되어 아버지 산소를 파서 강원도로 짊어지고 갔던 이야기, 유골 보따리를 잃어버린 이야기, 참빗을 팔아서 돈을 벌게 된 이야기 등을 모두 털어놓았다.

주인이 하는 말을 들은 머슴은 바로 자기가 저질렀던 일임을 깨닫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다. 머슴은 원래 제주도 사람인데, 그때는 제주도의 참빗이 유명하였으므로 참빗을 팔고자 육지에 왔던 것이다. 주인은 도리어 반색을 하며 자기 아버지의 유골을 찾게 하여 달라고 사정하였다. 주인과 머슴은 영월 땅으로 와서 그 고개를 다시 찾아갔다. 하지만 여기저기에 버린 유골을 수십 년 후에 찾으려고 하니 도저히 보이지가 않았다. 두 사람은 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점심을 먹기 위하여 물이 있는 골짜기를 찾았다. 그런데 거기 물웅덩이에 사람의 두개골이 보였다. 머슴이 가만히 생각하니 예전에 내던진 두개골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다 봉분을 쌓고 예를 갖춰 산소를 만들었다. 김조리는 아버지의 산소를 쓰고 난 다음 머슴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고개를 김조리가 아버지 유골을 묻었다고 하여 ‘조리재’라고 불렀다.

[모티프 분석]

「조리재의 해골」의 주요 모티프는 ‘전화위복’으로서 불우한 사건이 오히려 기복의 계기가 된다는 이야기 구조를 담은 설화이다.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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