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2159
한자 落花巖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영흥리 7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용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42년연표보기 - 낙화암비 제작
현 소재지 낙화암비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영흥리 78]지도보기
성격 비석
관련 인물 홍성보
재질 석재[이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80㎝[비신 높이]|36㎝[비신 너비]|8㎝[비신 두께]|13㎝[비좌 높이]|65㎝[비좌 너비]|50㎝[비좌 두께]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낙화암에 있는 단종의 시녀와 종인들의 충절을 기린 조선 후기의 비.

[개설]

낙화암단종을 모시던 시녀와 종인들이 투신한 곳이다. 영월부사 홍성보는 1742년(영조 18) 금강정 뒤쪽에 시녀, 종인의 신위를 봉안하기 위하여 ‘사우(祠宇)’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암벽 위에 갈석(碣石)을 세우고 비제를 ‘낙화암’이라 하였다.

[건립 경위]

낙화암비(落花巖碑)에는 ‘증정기원[1629] 후 두 번째 임술[1742] 7월일’이라는 건립 연대가 표시되어 있다. 270여 년 전에 세워진 원비는 1910년 여름 비석 윗부분이 동강으로 떨어져 물에 잠겼다. 나머지도 겨울 부랑자에 의하여 동강으로 던져졌다. 비문의 탁본은 해서체인데, 가로 21㎝, 세로 22㎝의 크기로 ‘청령포금표비’와 함께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1924년 영월군수 홍양 이석희와 보승회장 지창영이 주선하고 석공 이성심이 글을 새겨 다시 낙화암비를 세웠다.

[위치]

낙화암비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78번지에 있다. 금강공원금강정 앞 산책로 따라 우측으로 150m 지점에 있는 얼굴 모양 조형물 앞에 있다.

[형태]

낙화암비 비신은 이암을 비석 모양으로 다듬었으며 비신 높이 80㎝, 너비 36㎝, 두께 8㎝, 비좌는 높이 13㎝, 너비 65㎝, 두께 50㎝으로 둥근 모양에 아래쪽은 흙에 묻혀 있다.

[금석문]

낙화암비 앞면에는 ‘낙화암’이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단종조의 여러 시녀와 종인이 같은 날 동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숙종 무인년[1698년(숙종 24)]에 ‘민충사’란 편액이 내려졌다. 이보다 앞선 영종 임술년[1742년(영조 18)]에 영월부사 홍성보가 처음으로 비를 세우고 ‘낙화암’이라는 세 글자를 새겨 넣었다. 융희 경술년[1910년] 여름에 비석 머리 부분이 반쯤 떨어져 나가 물에 잠겼고, 같은 해 겨울 어느 불량한 자가 나머지 비석도 강물에 던져 버렸으니,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일이다. 이에 본 군수 이석희와 보승회장 지창영이 비를 세우기로 뜻을 모아 이왕직에 보고를 올리고, 특별히 격려하고 권장하는 윤음을 받은 바 힘입어, 이에 며칠도 안 되어 일을 모두 마치고, 낙화암 옛터에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갑자[1924년] 3월 일 본 군수 이석희 보승회장 지창영 석공 이성심”

[현황]

낙화암비 비좌는 전체적으로 돌이끼가 많고 풍화가 심하며, 비신은 상단에 돌이끼가 많고 풍화의 흔적이 약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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