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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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金氏 |
영어의미역 | Gyeongju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호명동 |
집필자 | 김준옥 |
세거지 | 전라남도 여수시 호명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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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551년 |
성씨시조 | 김알지(金閼智) |
입향시조 | 김윤강(金允康)|김수은|김첨 |
[정의]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윤강·김수은·김첨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경주김씨는 서기 65년에 금궤에서 나왔다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17대 내물이사금 이후로 경주김씨 자손들이 대대로 신라왕이 되었으나, 56대 경순왕 대에 이르러 왕건에게 나라를 내주게 되어 셋째 아들 영분공 김명종(金鳴鐘)과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으로 세계(世系)를 잇는다.
[입향경위]
경주김씨 여수 입향조는 김윤강(金允康)이다. 김윤강은 김명종의 후예 수은공(樹隱公)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인데, 1551년(명종 6)에 남원 두동에서 지금의 여수시 호명동에 입향했다. 또 김세필(金世弼)의 후손 김흠(金欽)은 선조 때 충주에서 지금의 여수시 화양면으로 와서 우거했다. 김충한의 후손 김길휘(金吉輝)는 현종 때 남원에서 화양면 장척마을로 왔다.
율촌면 신산마을은 1600년경 김수은(金守恩)이 경상도 상주에서 살다가 두 아들을 데리고 입향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이후 입향조의 후손이 여수 각 지역으로 분산 이주하였다. 김은열의 후예 태사공 김인관(金仁琯)의 후손 상촌공 김자수(金自粹) 파에서는 1590년대 중반에 순천에서 문수동 허문마을로 김첨(金僉)이 입향했다. 또, 김담(金淡)은 숙종 때 보성에서 소라면 사곡리로 이거했다.
[현황]
경주김씨 여수 입향조 김윤강의 후손은 여수시 삼일동 두암 하촌마을, 화양면 장척마을, 소호동 항호마을, 삼일동 중방마을·원월마을·월내동 하촌마을·낙포동 하촌마을·신덕동 덕대마을·호명동 내동마을 등으로 나가 일가를 이루며 살았으나 마을이 여수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마을이 수용되어 여수시내에 분산 이주했다.
김첨의 후손은 문수동과 웅천동 등에 살고 있으며, 삼일동 토산마을과 낙포동 상촌마을 등으로 나갔던 후손은 역시 여수시내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김담의 후손은 소라면 사곡리에 살고 있다. 김수은의 후손은 율촌면 신산마을과 율현마을에서 대를 잇고 있다. 거문도의 삼산면 동도리 죽촌마을에는 김류를 비롯한 일가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