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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31032
한자 柳珩
이칭/별칭 사온(士溫),석담(石潭),충경(忠景)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종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6년연표보기 - 유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4년 - 유형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8년 10월 - 유형 순천 왜교성 전투 참여
활동 시기/일시 1600년 - 유형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02년 - 유형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05년 - 유형 회령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07년 - 유형 함경북도병마절도사 임명
몰년 시기/일시 1615년연표보기 - 유형 사망
부임|활동지 순천도호부 - 전라남도 여수시
사당|배향지 해남 용정사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용정길 14[용정리 602]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진주
대표 관직 삼도수군통제사

[정의]

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 할아버지는 유진동(柳辰同)이고, 아버지는 경원부사 유용(柳溶)이며, 어머니는 선산 임씨(善山 林氏)이다.

[활동 사항]

유형(柳珩)은 1566년(명종 21)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을 따라 강화도[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서 활동했고, 의주 행재소(行在所)에서 선전관에 임명되었다. 1594년 무과에 급제, 선조의 친유(親諭)를 받고 감격하여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은혜를 갚겠다는 ‘진충보국(盡忠報國)’ 네 자를 등에 새겨 스스로 맹세하였다. 신설된 훈련도감에서 군사 조련에 힘쓰다가 해남현감으로 나아갔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원균(元均)이 칠천량해전에서 패배한 뒤 백의종군하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李舜臣)의 막료가 되어 수군 재건에 노력하였다. 1598년 10월 순천 왜교성 전투에서 곤경에 처한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과 이순신을 구하였다. 이어 벌어진 노량해전에서 부상을 입고 전사한 이순신을 대신하여 전투를 지휘한 사실이 왕에게 알려져 부산진첨절제사(釜山鎭僉節制使)에 발탁되었다. 1600년(선조 33)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으며, 1602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다시 충청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605년(선조 38) 회령부사, 1607년(선조 40) 함경북도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다. 이어서 경상도병마절도사·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1615년(광해군 7) 황해도병마절도사로 재임 중 사망하였다.

유형은 삼도수군통제사 시절 전라좌수사였던 이시언충무공 이순신의 대첩비 건립을 계획하였으나 전출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황해도병마절도사로 있으면서 임진강의 강음[현 황해도 금천]에서 비석을 세울 만한 돌을 구하였고, 이후 한강 하구까지 어렵게 돌을 옮겼으나 전라좌수영으로 보내지 못하고 후속 작업에서 막히고 말았다. 유형은 임종하기 전 자식들에게 유언처럼 “이야[충무공]의 비석이 세워지지 않으면 내 묘 앞에도 비를 세우지 말라.”고 당부하였다고 전한다. 용병(用兵)에 능했으며, 특히 통제영(統制營)의 기계 설비와 회령·경성의 축성 등 적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 시설 확립에 주력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에 있는 용정사[민충사(愍忠祠)로도 불림]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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