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임씨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고곡리는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이 골짜기가 깊고 길다고 하여 고일, 고곡(古谷), 고곡촌(古谷村)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소리 일부가 통합되어 고곡리로 개편되었다. 1931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 임하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임...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금곡재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09-73번지[금소4길 25]에 있다. 약산 기슭에 남동향으로 터를 잡았다. 1810년(순조 10) 예천임씨의 발의로 금수서당(錦水書堂)으로 건립되었다. 상량문에 의하면 1849년(헌종 15)에 중수하였으며, 이후 이름을 금수서숙(錦水書塾)으로 바꾸었다. 1928년 예천임씨 입향조인 야...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안산(案山)인 비봉산(飛鳳山) 봉우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들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 폭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수(錦水)·금양이라 하였다가, 비봉산 아래의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된다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금소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자 일본인들이 마을의 이름을 금소라고 바꾸었다고도 한...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예천임씨 동성 마을. 마을의 안산(案山)인 비봉산(飛鳳山) 봉우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들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 폭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수(錦水)·금양이라 하였다가 비봉산 아래의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된다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조선 중기에 임억숙(林億淑)이 정착함으로써 예천임씨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울진임씨 동성마을. 원래 금수 또는 금양이라 하였다가, 마을 안산인 비봉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소(錦韶)라고 불렀다. 그 뒤 비봉산 아래에 있는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제격이라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조선 중기 임강(林江)이 원래 살고 있던 영해에서 옮겨 와 금...
-
전통시대부터 우리나라 각 마을에서는 산신을 마을신으로 섬겼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산신이 곧 동신이고 산신제가 곧 동신제이게 마련이나 금소의 산신은 조상신·혈연신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의 유력 성씨인 예천임씨와 울진임씨 가문에서 제각기 자기 ‘조상할머니’를 산신으로 섬기는 것이다. 예천임씨들은 ‘무오생(戊午生) 김씨할매’를, 울진임씨들은 ‘무신생(戊申生) 이씨할매’를 조상할머니로...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진리에 있었던 청주정씨 동성마을. 마을을 개척하면서 황무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칼로 베어내고 논을 만들었다고 하여 칼 ‘도(刀)’자와 논 ‘답(畓)’자를 써서 도답촌이라 불렀다. 또한 마을 앞에 내가 흐른다고 하여 나리라고도 불렀으며, 지하수가 풍부하여 도나리라고도 하였다가 후에 도진리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마사는 예전에 삼이 많이 났고, 아래마사는 마사...
-
동채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은 대장이다. 동채 위에 오른 대장은 각 부분의 동채꾼은 물론 자기 편 구경꾼들까지 총괄, 지휘하면서 동채꾼들이 효과적으로 움직여 상대편을 제압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대장의 진가는 무엇보다 동채끼리의 공중전에서 드러난다. 경험이 풍부한 대장의 능숙한 지휘는 동채를 민첩하게 움직여 승리로 이끌기 때문이다. 1940년대 금소마을 동채...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주위에 참나무 숲이 많이 우거져 있다고 하여 섶나무 ‘신(薪)’자를 써서 신전(薪田)이라 하였다. 1540년경 유씨(劉氏)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였고, 1600년경에 예천임씨(醴泉林氏)가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음리를 병합하여 안동군 북후면 신전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안동군과 안...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원당리·어리·길명리·오천동·구천리를 통합하면서 원당리와 오천동에서 ‘원’자와 ‘천’자를 따 원천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새터는 광복 후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구억마(일명 꿩마)는 옛날 구억만이라는 부자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복 후에는 뒷산에 꿩이 많이 서식한다 하여 꿩마라고도 하였다. 원당(일명 원당이·당거리)...
-
열녀각은 금소에서 옹천강씨 집안으로 시집온 예천임씨 열녀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1904년 고종이 내린 정려각이다. 열녀 예천임씨는 남편 강종헌이 병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정성으로 간호를 하였으나 운명 직전에 이르자, 자신의 무명지를 깨물어 남편에게 수혈함으로써 3개월간 더 살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은 끝내 운명했는데, 그 때 임씨 부인의 나이는 22세였다고 한다. 강신중 옹이 집...
-
금소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농업에 종사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농사를 짓는 데는 농경지 확보가 필수적으로, 금소는 넓은 들을 갖고 있어 농사짓기에 유리한 지역이다. 1608년(선조 41)에 편찬된 경상도 안동부(현 안동시) 읍지 『영가지(永嘉誌)』 관개조(灌漑條)에 금소보와 버리들보가 나오는데, 이를 통해 금소가 다른 지역에 비해 물을 이용한 벼농사를 일찍부터 시작했다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