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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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垓 |
영어음역 | Gim Hae |
이칭/별칭 | 달원(達遠),근시재(近始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민석 |
성격 | 문신|의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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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
성별 | 남 |
생년 | 1555년(명종 10) |
몰년 | 1593년(선조 26) |
본관 | 광산 |
대표관직 | 예문관검열 |
[정의]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달원(達遠), 호는 근시재(近始齋). 아버지는 참봉 김부의(金富儀),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정랑 권습(權習)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해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1588년(선조 21) 사직서참봉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89년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으로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승문원정자를 지내고, 한림(翰林)에 선발되어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10월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고, 11월 사국(史局)에서 사초(史草)를 태운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 예안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남의병대장(嶺南義兵大將)으로 추대되어 안동, 의성, 군위 등지에서 분전하였다. 이듬해 평양 탈환전에서는 수십 명의 적을 살해하였으며 계속 적을 추격하다가 밀양에서 군사를 정비하고 경주로 이동한 후 진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김해는 태극음양(太極陰陽)에 대한 변석(辨析)과 심성이기(心性理氣)의 학설, 치란(治亂)의 자취 및 천문지지, 병사(兵事), 의방복서(醫方卜筮)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 특히 고례(古禮)를 담은 『의례(儀禮)』, 『예기(禮記)』 등의 책을 좋아하여 반복하여 살펴 그 요점을 강구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근시재집(近始齋集)』 4권이 있다. 문집 중 권1은 시(詩)이고, 권2는 남치리(南致利)와 예를 논의한 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3에는 조목(趙穆)에게 병산서원(屛山書院)의 『퇴계집(退溪集)』 수정에 관한 건, 왜적과의 대적 상황에서의 어려움 등을 토론한 서간 등이 있다. 그밖에 잡저, 유사(遺事) 등이 실려 있다. 권4는 부록이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금학산(金鶴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홍문관수찬과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