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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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Shamanistic Rite after Weeding of Paddy Fields |
이칭/별칭 | 풋구,머슴날,풋굿먹기,꼼베기놀기,장원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성진,한양명 |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칠월 중순 무렵 논매기가 끝나면 벌이는 농민들의 제축 행사.
[개설]
풋굿(백중놀이)은 연간 농작물 재배의 핵심적인 활동을 모두 마치고, 음력 7월 초·중순 무렵에 마을 단위로 날을 정하여 하루를 먹고 노는 세시풍속이다. 이를 풋구·머슴날·풋굿먹기·꼼베기놀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우물을 치고 길을 닦는 등 공동노동을 하며, 각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마을에서 잔치를 벌인 뒤 모두 나누어 먹는다. 이를 “풋구 먹는다”고 하는데 백중과 겹칠 때가 있다.
[연원 및 변천]
백중놀이는 조선 후기에 시작되었다. 1766년에 발행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와 우하영(禹夏永, 1741~1812)의 『천일록(千一錄)』에 풋굿과 관련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농업용수 공급에 어려움이 따르는 상황에서 진행된 논매기와 모내기는 두레와 같은 집약적인 공동 협업노동으로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모내기를 위해서 두레가 결성되었는데, 그 여세를 몰아 논매기까지도 마을단위 공동노동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 결과 1년 중 논매기 작업을 종료한 후에 마을단위의 공동 협업노동을 매듭짓는다는 차원에서 농민들이 함께 모여 하루를 쉬는 형태의 풋굿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 따라서는 풋구·머슴날·장원례 등으로 불린다. 현대에 와서는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군자마을에서 매년 7월이 되면 ‘풋굿축제’를 개최한다. 풋굿축제는 군자마을이 2004년 대한민국 제1호 문화·역사마을로 지정되면서 복원하였다. 군자마을에서는 공동체의 친목을 다지는 취지로 1970년대 중후반에 자취를 감추었던 것을 옛 풍습대로 재현하고 있다.
[절차]
음력 7월 초에 일꾼들이 모여 풋굿할 날짜를 정한다. 풋굿날을 앞두고 미리 마을길 청소와 풀베기를 한다. 풋구날이 되면 우선 마을에 있는 샘의 물을 친다. 샘 앞에는 제물을 차려놓고 제를 올린다. 샘의 물을 칠 때는 샘이 깊다 보니 물동이로 계속 퍼내고 나중에는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 들어가서 마저 퍼낸다. 그러고 나서 마을의 깨끗한 사람이 먼저 우물물을 길어 간다.
풋굿날 아침 일찍 주인집에서 술·떡·적 등 갖가지 음식을 장만해 준다. 그리고 삼베 적삼 한 벌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형편이 넉넉하거나 그동안 일꾼이 일을 잘한 주인집에서는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해 내주기도 했다. 일꾼들이 정해진 장소에 모이면 어느 집에서 음식을 후하게 장만해 주었는가를 서로 평가했다. 따라서 차려온 음식의 양이 많은 일꾼은 어깨에 힘을 주곤 했다. 반면 음식의 양이 적어 일꾼이 의기소침해 있으면 주인집에서는 음식을 더 장만해 내주는 일도 더러 있었다. 이처럼 그날 차려온 음식의 양은 주인집의 관심과 평소 일꾼의 성실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풋굿은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이어진다. 일꾼들은 서로 가져온 음식을 펼쳐 놓고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날 이야기의 주제는 평소에는 좀처럼 할 수 없었던 주인집 험담, 농사일의 고초, 신세한탄 등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리고 술을 한 잔 한 뒤에는 풍물을 치며 떠들썩하게 논다. 악기를 손에 든 사람들이 풍물을 치면 나머지 사람들은 일어나 춤을 추었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풋굿은 음력 7월 중순 경에 행하던 농부들의 농경의례이자 일꾼들의 축제였다. 일 년간의 영농주기로 볼 때, 가을철 수확 이전의 마지막 중노동에 해당하는 호미로 김매는 작업을 완료한 것을 축하하는 차원에서 행해진 놀이이자 의례였던 셈이다.
안동 지역에서는 여름 농한기에 길일을 택해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마련한 술과 안주·떡·감자 등 먹을거리로 풋구를 먹고 갖가지 민속행사를 통해 친목을 다져왔다. 풋굿은 마을공동의 제사이자 축제적인 행사로서 마을의 통합성을 이루는 데에도 큰 구실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농사일도 줄어들고 농사법도 많이 바뀌어 풋굿의 전통도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