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
-
1872년에 편찬된 『1872년 군현지도』에 수록된 아산현의 지도. 『1872년 군현지도』 아산현 편은 1872년 현재의 아산시 염치읍, 인주면, 둔포면, 영인면, 음봉면 일대를 묘사한 군현 지도이다. 고종 즉위 이후 재정 확보, 군제 정비를 위하여 1871년 열읍지도등상령(列邑地圖謄上令)이 발표되고, 각 군현에서는 지도를 제작하여 1872년에...
-
1919년 서울에서 시작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3~4월 동안 충청남도 아산 각지에서 만세 시위, 횃불 시위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독립운동. 아산의 3·1운동은 3월 11일 온양공립보통학교[지금의 온양초등학교] 학생들의 만세 시위로부터 시작하여 4월 4일 선장면 군덕리 시장에서 지역민들의 만세 시위를 끝으로 약 25일에 걸쳐 전개되었다. 충청남도 아산...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침공으로 충청남도 아산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 후 북한 인민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7일 아산에 진입하여 9월 말까지 전 지역을 점령하였다. 9월 29일 국군과 유엔군이 아산 지역을 수복하였고, 이후로는 북한 인민군의 침입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전쟁 기간 동안 아산 지...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가덕리 곡교천 하안에 있던 나루. 가얘나루가 있던 가덕리 일대는 높이 20~40m의 낮은 구릉성 산지가 하안까지 뻗어 있는 곳이어서 포구가 발달하기에 유리한 입지였다. 하천에 가까우면서도 홍수로부터 안전했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따르면, 조선 후기 곡교천을 건너던 주요 도로는 고분다리[曲橋]를 지나거나 긔애나루[犬浦]를...
-
조선 초기 충청남도 아산현에서 맹사성이 지은 시조.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맹사성(孟思誠)[1360~1438]이 세거지인 충청남도 아산에서의 강호(江湖) 체험을 바탕으로, 여말선초(麗末鮮初)의 혁신적 관료 사대부들이 품었던 유교적 이상 국가의 비전을 그린 작품이다. 연시조 형태로는 최초이며, 강호한정가(江湖閑情歌)[자연 속에서 한가로운 정취를 느끼며 부르는 노래]의...
-
1864년(고종 원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개항기(開港期)는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기존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면서 근대적 사회를 지향해 가던 시기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본래 온양군, 신창현, 아산현으로 충청도 소속이었으나,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갑오경장]의 지방제도 개혁으로 온양군, 신창군, 아산군으로 개편되...
-
조선시대 세금으로 바쳐진 곡식의 수송 및 보관을 위해 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설치했던 창고. 공세곶창(貢稅串倉)은 충청도의 세곡을 모아 보관하였다가 서울로 운송하는 역할을 하던 조선 전기 전국 9대 조창(漕倉) 중 한 곳으로 공세곶이[貢稅串], 공세창(貢稅倉), 공진창(貢津倉), 아산창(牙山倉)이라고도 불렸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기록된 9개 조창은...
-
개항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1863년(철종 14) 고종이 즉위한 뒤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서구 열강의 침략 가능성이 높아지던 상황에서 왕권 강화책을 추진하였다. 양반 유생층의 지역적 기반인 서원 철폐가 대표적이었다. 이로 인해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도 도산서원(道山書院), 인산서원(仁山書院),...
-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행하여진 근대적 교육 활동. 1905년 러일전쟁 개전을 전후하여 한반도에서는 나라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몽론자들은 계몽 단체를 조직하고, 그 활동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특히 서울 지역에 집중되었던 이전의 상황과 달리 이 시기의 계몽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활발히 일어났다. 충청남도 지역에...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서원골에 있던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금곡서원(金谷書院)은 맹사성의 부친 동포(東浦) 맹희도(孟希道)를 제향하던 사우이다. 1837년 4월 20일에 동포 맹희도의 옛집에 창건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1871년 훼철된 것으로 추정된다. 맹희도는 본관이 신창이며 고려 말의 신진사대부이자 성리학자였다. 1365년에 문과...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 있는 김육의 대동법 시행을 기리는 조선 후기 비석. 김육(金堉)[1580~1658]은 서울 출신의 실학적 개혁 정치가로서 평생 대동법의 시행을 추구하였다. 김육은 1638년(인조 16) 충청도관찰사와 1649년(효종 즉위년) 우의정으로 재임할 때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하려고 노력했으나 김집 등 충청 지역 양반 지주들의 반대로 좌...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의 도고산 정상부에 있는 고려시대 제사터. 도고산 제사터가 있는 국사봉은 도고산[482m] 정상에 있는 봉우리로, 그 정상부에 있는 석축 구조물이다. 속설에는 도고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도고산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도고산은 고려시대에 명산대천(名山大川)에 대한 제사를 지내던 곳 중 한 곳이었다...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흥리(挑興里)는 도흥1리와 도흥2리로 이루어지며 인주면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줄기에서 남향으로 형성된 두 개의 큰 골에 도흥1리와 도흥2리가 각각 자리잡고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농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도흥리’라는 명칭은 1914년 도정리(挑井理)와 신흥리(新興理)를 병합할 때 두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 체제에 저항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기 위해 벌인 운동. 청일전쟁에서 시작된 아산 지역의 항일 기운은 을미사변과 을사조약을 거치면서 항일 의병 활동으로 발전하였고, 1905년 이후에는 교육구국운동이 전개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1910년대 대한광복회에 의한 친일 도고면장 처단 의거가 일어났으며, 1919년에는...
-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동학사상과 항일민족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많은 사람이 기포(起包)[동학농민운동 때 농민 등이 동학의 조직인 포(包)를 중심으로 하여 봉기(蜂起)하던 일]에 참여하였던 곳이며, 천도교로 개칭한 이후 후손들은 3·1운동 등 민족운동을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동학과 천도교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
-
청일전쟁 시기 충청남도 온양, 신창, 아산 지역의 동학도와 주민들이 일제 침략에 저항하면서 양반 중심의 신분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한 운동. 안교선(安敎善)이 이끄는 아산의 동학도들은 1893년(고종 30) 동학교단의 보은 집회에 참여하여 외세 침략에 저항하였다. 이어 청일전쟁으로 항일의식을 고조시킨 아산 지역민들은 동학에 입도하여 항전 의지를...
-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4동에 속하는 법정동. 득산동(得山洞)은 행정동인 온양4동의 관할을 받으며 득산1통, 득산2통, 득산3통으로 이루어진다. ‘득산동’은 1914년 득박리(得璞里)와 마산리(馬山里)를 병합할 때 두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붙인 것이다. 득산동은 본래 신창군 대동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마산리 일부, 웅산리...
-
충청남도 아산 출신이자 청백리의 상징인 조선 전기 때 문신. 맹사성(孟思誠)[1360~1438]은 권근(權近)의 문하에서 수학한 후 1386년(우왕 12) 문과에 장원급제하면서 춘추관검열(春秋館檢閱)을 거쳐 내직과 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 때 예조의랑(禮曹議郎)이 된 이래 정종, 태종, 세종 대까지 4대 왕을 모셨다. 맹사성은 청백리의...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 출신의 문신. 맹세형(孟世衡)[1588~1656]은 고려 때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을 지낸 맹희도(孟希道)의 9세손이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맹세형의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여평(汝平), 호는 하곡(霞谷)·만은(晩隱)이다. 조선시대 명재상 맹사성(孟思誠)의 8세손으로, 사첨시정(司瞻侍正) 맹익선(...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맹주서(孟胄瑞)[1622~1679]는 현종과 숙종 대에 활약했던 문신으로, 1678년(숙종 4) 안동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푼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특진관(特進官)에 이르렀다. 맹주서의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휴징(休徵)이다. 할아버지는 맹희(孟喜)이고, 아버지는 맹세형(孟世衡)이며, 어머니는 최준(崔濬)...
-
고려 말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맹희도(孟希道)[1337~?]는 1365년(공민왕 14)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좌윤(漢城左尹), 전교부령(典校副令), 전교령(典校令),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등을 지냈고, 우의정에 증직(贈職)되었다. 고려 말의 두문동(杜門洞) 72인 중의 한 명으로서 1388년(우왕 14)에 관직을 버리고 온양의 금곡촌(金谷村)[현재 배방읍...
-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을 포함한 조선 각지에서 청의 침입으로 피해를 받은 전쟁.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살았던 백성들은 근왕군(勤王軍)과 의병으로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참여하여 전투를 수행하기도 하였지만, 청나라 군사들에 의해 많은 피해를 받았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숭명배금(崇明排金) 정책을 표...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봉농리(鳳農里)는 도고면의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도고면에서 논이 가장 넓어 논농사가 주를 이룬다. 세계꽃식물원이 있으며 무한천과 삽교천이 이어져 있어 각종 철새들이 모여드는 철새도래지이다. ‘봉농리’라는 명칭은 1914년 봉암리(鳳巖里)와 포농리(浦農里)를 병합할 때 두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붙인 것이다...
-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실천해 온 역사적 흐름과 관련 유적. 충청남도 아산은 삼한시기 마한의 염로국(冉路國)에 속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탕정군[온양 지역], 아술현[아산 지역], 굴직현[신창 지역]에 속하였으며, 고구려 장수왕 때 고구려에 속하였고, 백제가 망하면서 신라에 복속되었다. 따라서 384년(침류왕 1) 중국 동진의 마라난타가...
-
충청남도 아산시의 젖줄로 일컫는 아산의 중심 하천. 충청남도 아산시의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곡교천(曲橋川)은 총 33개의 지천을 거느린 하천으로, 그 주변에서 농경 산업과 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곡교천의 곳곳에서 과거와 현재 아산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곡교천은 충청남도 아산시를 대략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주요 하천으로,...
-
조선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여 성황신을 모셨던 당집. 성황사(城隍祠)는 조선 건국 후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산천(山川)·성황(城隍)·풍운(風雲)·뇌우(雷雨)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던 민간신앙의 단(壇)들을 하나의 성황사로 통합하여 주(州)·부(府)·군(郡)·현(縣)의 행정단위마다 하나씩 설치하고, 지방관으로 하여금 봄·가을로 제사 지내게 하였다. 조선...
-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같은 본관과 성을 가지고 대대로 살아온 성씨. 특정 지역의 세거성씨(世居姓氏)는 어떤 가문이나 인물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세거성씨는 입향조(入鄕祖)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다. 촌락사회, 특히 집성촌에서는 입향조...
-
충청남도 아산시에 분포하는 식물의 종류상. 충청남도 아산시는 충청남도의 북부, 천안과 경기도 평택에 인접해 있어 수도권 쪽에서 충청남도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은 금북정맥의 끄트머리이며 낮은 산들과 평지로 아산만의 평택, 안성과 마주 보고 있다. 남쪽은 공주시와 예산군의 경계가 되는 충청남도 북부의 큰 규모의 산지로서 동쪽에는 태화산과 광덕산,...
-
1950년 7월 10일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하여 충청남도 아산군 신창면[현 아산시 신창면] 한티고개에서 벌어진 경찰과 북한 인민군 간의 전투.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후 북한 인민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였고, 7월 6일 충청남도 천안까지 내려왔다. 북한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참전한 미군은 7월 8일까지 이틀간 천안에서 북한 인민군과...
-
맹자를 시조로 하고, 맹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세거성씨. 신창맹씨(新昌孟氏)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시조(始祖)는 맹자(孟子)[맹가(孟軻)]이고, 아산시의 입향조(入鄕祖)는 맹의(孟義)이다. 신창맹씨는 중국 산시성[陝西省] 평릉(平陵)에 연원을 두고 있다. 성원(姓源)은 주(周)나라까지 올라가지만,...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 모아 있는 송덕비 비석군. 신창면 읍내리의 비석군은 특정 인물의 공덕을 칭송하는 문자를 새긴 송덕비이다. 송덕비는 관아의 입구나 도로변에 세워지지만, 신창현에는 옛 건물이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신창면 읍내리의 비석군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297번지의 옛 신창현 동헌 터 앞에 있던 것을 1907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한...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행목리에 있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역. 본래 신창역은 아산시에 있는 장항선에 속한 철도역이었으나 폐지되었고, 이후 역사를 이전하여 같은 역명으로 현재 누리로 철도가 정차하는 수도권 전철의 최남단 전철역이 되었다. 2007년 12월 21일에 오목리에서 행목리로 역사를 옮기고 이전의 신창역은 폐지하였다. 2008년 12월 15일부터 수도권 전철 1호...
-
조영규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세거성씨. 신창조씨(新昌趙氏)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시조(始祖) 겸 아산시의 입향조(入鄕祖)는 조영규(趙英珪)이다. 신창조씨의 시조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조영규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사병(私兵) 출신으로 개국공신 중 한 명이다. 천거로 벼슬에 올라 왜구...
-
표대박을 시조로 하고, 표인려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세거성씨. 신창표씨(新昌表氏)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시조(始祖)는 표대박(表大㺪)이고, 아산시의 입향조(入鄕祖)는 표인려(表仁呂)이다. 중국 고대 오계(五季)시대 후주(後周)의 이부상서(吏部尙書) 표대박이 후주가 망하자 960년(광종 11) 장(張...
-
서거정이 지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의 공북정에 대한 기문. 「신창현공북정기(新昌縣拱北亭記)」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의 공북정(拱北亭)이 지어진 시기와 유래, 정자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충청남도 아산현의 신창수령 조군유(趙君愉)[『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조침(趙侵)으로 기록되어 있음]가 공북정을 지었고, 윤자운(尹子雲)...
-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치안 업무를 맡아 보는 행정기관. 아산시 온양6동에 있는 아산경찰서는 국가의 경찰권을 운영하는 경찰 행정기관으로 치안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관내 치안 유지 및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45년 10월 21일 대한민국 국립경찰이 발족되면서 온양 지역에도 온...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 맹사성이 기거하였던 건물. 아산 맹씨행단은 조선 초의 명재상인 맹사성(孟思誠)[1360~1438]이 기거하고 후학을 길러낸 곳이다. 맹사성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7...
-
6·25전쟁 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 6·25전쟁 기간 동안 충청남도 아산에서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여러 건의 학살사건이 자행되었다. 민간인 학살사건은 크게 북한 인민군이나 좌익 세력에 의해 일어나거나, 북한 인민군 퇴각 이후 부역자 처단을 명목으로 반공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자행하였다. 한편으로는 미군의 오인에 의한 학살사건도 있었다...
-
충청남도 아산시 모종로에 있는 아산 지역의 소방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 아산소방서는 아산 지역의 화재 예방과 불을 끄는 임무를 맡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기관이다. 아산소방서는 관할구역 내 화재를 예방·경계·진압하고, 화재·재난·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에서의 구조·구급 활동 등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공공의...
-
충청남도 서북부에 있는 시. 아산군은 1914년 3개 군현[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이 통합되어 생겨났으며, 1986년 온양시가 분리 독립하였으나 1995년 다시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되어 도농복합시인 아산시가 되었다. 충청남도 아산시는 동단[배방읍 휴대리, 동경 127° 06′ 32″], 서단[선장면 신덕리, 동경 126° 50′ 32″], 남단[...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서 발원하여 백석포리에서 안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아산천(牙山川)’ 명칭은 조선시대의 아산현 읍내면 지역이었던 아산리에서 유래하였다. 아산천이 읍내면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온양·아산·신창이 합쳐져 아산군이 되었고, 읍내면 아산리는 영인면 영산리로 바뀌었다. 1922년 아산군청이 온양읍으로 옮겨가면서...
-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 양조장이란 일반적으로 발효식품, 즉 술이나 간장 식초 등을 만드는 공장을 말한다. 막걸리 양조장은 전국적으로 가장 고르게, 많이 분포된 식품회사이자 근대식 공장이다. 대도시 인근에서 안정적인 유통망을 확보해 현대적 시설로 변신에 성공한 몇몇 양조장을 제외하고 몇몇 남아 있는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에 자리 잡은 양조장은 시설이...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서 원남리를 잇는 고개. 어르목고개는 내포(內浦) 지역과 한성부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였던 수영로(水營路)상에 있는 높이 95m의 고개이다. 수영로는 충청수영[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서 홍주-예산-신창-평택을 거쳐 양성의 가천역에서 간선도로인 제주로와 만났다. 어르목고개는 이 길 중 음봉삼거리와 요로원 사이에 있던 고개이다....
-
충청남도 아산시에도 위치해 1년에 3차례씩 돌림병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여러 신에게 여제를 지내던 제단. 여단(厲壇)은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해 주인 없는 외로운 혼령을 국가나 지방의 군현에서 제사를 지내주던 토석단(土石壇)을 말한다. 조선시대 아산현, 신창현, 온수현[온양군으로 승격]에는 각각 여단이 있었다. 조선 전기의 자료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
충청남도 아산시의 역사에 대한 개관. 충청남도 아산은 조선 초에 온양군·신창현·아산현으로 편제되어 충청도관찰사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아산현은 고려 때 아주를 1413년(태종 13)에 개칭한 것이다. 1459년(세조 5)에 현을 줄여서 온양·평택·신창 등 세 고을에 나누어 붙였다가 1465년에 다시 복구되었으며, 1505년(연산군 11) 경기도에 이속되었다가...
-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사도세자와 관련된 유적. 1760년(영조 36) 사도세자가 다리 부종을 치료하기 위해 온양행궁(溫陽行宮)에 와 머물면서 활쏘기를 했는데, 그늘이 없어서 온양군수 윤염(尹琰)에게 사대(射臺)에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게 하였다. 그 뒤 사도세자 회갑년인 1795년(정조 19)에 정조가 명하여 그 주변을 정비하게 하였다. 온양군수 변...
-
1256년(고려 고종 43)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몽골군과 싸워서 크게 이긴 승리.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이 고려에 침입하기 시작하여 수십 년간 전쟁이 지속되었는데 아산 일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1256년 6월에 온수현(溫水縣)[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장군 이천(李阡)이 지휘한 고려군이 몽골군을 크게 격퇴시킨 대첩이 온수대첩이다. 13세기 칭기즈칸(Chingiz K...
-
고려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온수군(溫水郡)은 고려 전기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관내에 있었던 행정구역 중 하나이다. 온양온천이 있는 아산시 중심부 일대, 구 읍내 및 곡교천 남쪽 지대가 당시 온수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936년(태조 19) 9월에 후백제의 항복을 받아 통일을 완성하였다. 왕건은 통일을 완성한...
-
일제강점기 충남선 개통과 온양온천의 개발에 따른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6동]의 근대적 신시가지로의 환경 변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군에 존재했던 온양면(溫陽面)은 지금의 아산시 온양1~6동 일원이다.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아산, 온양, 신창 3개 군(郡)이 아산군으로 통합되었고, 온양면에 아산군청·온양경찰서·공주지방법원 온양출장소 등이...
-
충청남도 아산시 신정동[온양4동]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의 가톨릭 교회. 내포 천주교회의 신앙 전통이 공세리성당에서 온양성당, 온양 용화동성당으로 이어져 내려와서 2004년에 온양 신정동성당으로 계승되었다. 처음에는 ‘온양 방축동성당’이라 부르다가, 2005년 성당의 위치를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온양 신정동성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2006년에 성전...
-
방지를 원시조로 하고, 방운을 중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세거성씨. 상주방씨(尙州方氏)는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원시조(原始祖)는 방지(方智)이고, 중시조(中始祖)는 방운(方雲)이다. 아산시의 입향조(入鄕祖)는 방운이다. 방지는 중국 허난성[河南省] 사람으로 당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신라 문무...
-
충청남도 아산 지역과 관련된 유교 지식인의 학문·사상·활동 및 문화유적. 충청남도 아산은 애국과 충절로 뛰어난 선비의 고장이다. 고려 말 성리학을 받아들이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들판과 산이 어우러지며, 바닷길도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낙향하여 은거하는 선비들이 들어와 맹사성(孟思誠)과 김질(金秩)처럼 이곳을 입향조로 삼은 집안들이 나왔다. 조선 중기에 이르면...
-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유학의 발달 과정과 대표적인 유학자인 맹사성과 이간의 이야기. 유교는 기원전 4세기경 중국으로부터 한자 문화를 수용하면서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삼국시대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유교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아산 지역을 관할하였던 백제에서는 『논어(論語)』, 『효경(孝經)』 등 유교 경전을 전공한 오경박사(五經博士)를...
-
통일신라시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음봉현(陰峰縣)은 신라시대 웅주(熊州) 탕정군(湯井郡) 영현(領縣)의 하나로, 백제시대 아술현(牙述縣)을 757년(경덕왕 16) 음봉현으로 변경하였다.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일대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권36 잡지5 지리3에 "탕정군은 본래 백제의 군이었는데, 문무왕 11...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의병 지원 활동을 한 지방 관료. 이규남(李圭南)[1862~1907]은 아산군아(牙山郡衙) 수서기(首書記)로서 1907년(고종 44) 11월 16일 의병이 아산분파소(牙山分派所)를 습격할 때 의병과 연계하여 길 안내를 하는 등 의병 지원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압송되던 중 동생 이규찬(李圭瓚)과 함께 피살되었다. 공훈전자사료관 독립...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동학 지도자. 1894년(고종 31) 10월 홍주성(洪州城)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동문 밖에서 참살당했다. 이신교(李信敎)[1840~189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회안대군파(懷安大君派) 17세손이다. 입향조인 13대조 이사눌(李思訥) 이후 약 400년간 세거해 온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용화리[지금의 아산시 용화동]에서 태어나고 거주하였다...
-
충청남도 아산시의 행정구역, 인구 추이, 도시와 촌락, 산업, 교통 등의 인문 지리적 조건. 아산군은 조선시대 3개 군현[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이 1914년 통합되어 생겨났으며, 온양온천을 배경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적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1986년 온양시가 분리 독립하였는데, 온양시는 충청남도에서는 천안시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된 시(市)로 온양온천...
-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배와 지역민에 의한 독립운동이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된 시기.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는 일반적으로 1910년대의 무단 통치기, 1920년대의 문화 정치기,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의 민족 말살 통치기 등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일제는 사회...
-
충청남도 아산시를 거쳐 천안시와 전라북도 익산시를 연결하는 철도 노선. 장항선은 충청남도 천안시 천안역과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역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선으로 총길이는 160.2㎞이다. 충청남도 아산시를 통과하여 지나가는데, 아산시에서는 무궁화호와 누리로가 아산역, 배방역, 온양온천역, 신창역, 도고온천역에 정차한다. 장항선은 1922년 조선경남철도주식...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동학 지도자.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아산 일대의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였다. 정태영(丁泰榮)[1859~1922]의 본관은 나주(羅州), 본명은 정건섭(丁建燮)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대정리[현 아산시 선장면 대정리]이다. 1895년(고종 35) 부인 김태화와의 사이에서 장남 정규희(丁奎熙)[정수길(丁壽...
-
조선 후기 온양군수를 지낸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은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잠야(潛冶) 박지계(朴知誡)와 포저(浦渚) 조익(趙翼)에게 배웠고, 인조와 효종 대에 걸쳐 온양군수를 비롯하여 여러 벼슬을 했으며,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아산 도산서원(道山書院)과 예산 회암서원(晦庵書院)에 모셔졌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유지되던 시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아산시는 조선시대 때에 아산현(牙山縣), 신창현(新昌縣), 온양군(溫陽郡)으로 각각 독립적인 행정구역으로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모두 인접 지역이었던 만큼 행정구역 설정부터 군사제도, 교통 및 통신 등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 받았다. 또한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호구총수...
-
조선 중기 대동법 실시를 주도하였던 학자이자 문신으로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의 풍양조씨 입향조. 조익(趙翼)[1579~1655]은 김육(金堉)과 함께 대동법을 확장, 시행하는 데 기여하였다. 풍양조씨(豐壤趙氏) 중시조(中始祖) 평장사공(平章事公) 조신혁(趙臣赫)의 10세손으로 도고면의 풍양조씨 입향조(入鄕祖)이다. 조익의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비경(飛卿)...
-
충청남도 아산시 권곡동에 있는 천도교 교구. 천도교는 1860년에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창도(唱道)한 동학의 새 이름이다. 충청남도 아산에 동학이 전래된 때는 1880년대 초이며, 아산의 동학 교도들은 1894년 가을의 내포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 1905년 ‘천도교’ 개칭 이후에는 1908년 아산전교실로 출발하여 3·1운동과 무인멸왜기도운...
-
18세기 영조 대부터 19세기 헌종 대에 걸쳐 충청도 각 읍의 읍지를 모아 펴낸 종합 읍지. 『충청도읍지』는 18~19세기 충청도 지역의 읍지를 총 51책으로 펴낸 것으로 온양군[38책], 아주현[47책], 신창현[48책]의 읍지가 수록된 충청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지(道誌)이다. 『충청도읍지』는 저자 미상으로 알 수 없다. 18세기 중반에 간행된 『여지도서(輿...
-
조선시대 한양에서 출발하여 소사점에서부터 충청남도 아산시를 거쳐 충청수영이 있는 보령시에 이르는 대로. 조선시대 전국의 도로는 수도 한양(漢陽)을 중심으로 지역의 중요성에 따라 대로(大路), 중로(中路), 소로(小路)로 구분되어 연결되었다. 이 도로들은 국가의 정책 수행에 있어 중요 거점을 연결한 전국적인 연결망으로서 국가 운영의 기본 동맥이었다.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철종...
-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친환경 농업을 구현하는 사람과 단체 이야기. 충청남도 아산시는 대한민국의 친환경 유기농 운동의 본산이라고 할 만한 지역이다.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으로 땅과 물이 오염되어 죽어가고, 논과 밭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미생물과 생물들의 생존이 위협받으면서 사람 역시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친환경농업은 이러한 생태적 문제에...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구령리에 있는 들. ‘탕정(湯井)’은 ‘온천이 솟는 우물’을 일컫는다. 백제 때에는 온양을 탕정(湯井)이라 불렀고, 신라에 편입된 뒤 671년(문무왕 11)에는 탕정주(湯井州)라 불렀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온수군(溫水郡)으로 고쳐 불렀다. 조선 초기에 온양과 신창을 합쳐 온창(溫昌)이라고 부른 적도 있지만, 조선시대인 1442년 세종이 온천을...
-
백제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탕정군(湯井郡)은 백제시대 아산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조직이다. 아산 지역이 탕정군으로 편제된 시기는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지만, 사비기(泗沘期)에 지방통치조직으로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실시되었으므로 이때 탕정군으로 편제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영현(領縣)으로 아술현(牙述縣)과 굴직현(屈直縣)을 두고 있...
-
통일신라시대 초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인 671년(문무왕 11) 탕정군(湯井郡)을 탕정주(湯井州)로 승격시켜 총관(摠管)을 임명하였다가 681년(신문왕 1) 다시 탕정군으로 격하시켜 웅주(熊州)에 예속시켰다. 통일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이르러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9주5소경제(九州五小京制)로 정비하였다. 9...
-
충청남도 아산시의 신창면 읍내리 남서쪽에서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으로 넘어가는 고개. 한치고개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신창현」과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신창현」에 ‘대치(大峙)’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치고개는 ‘큰고개’를 한자화한 명칭으로, 크다는 말은 통행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지도에도 신창과 예산을 이어주는 충청수영로가...
-
한말 을미사변 이후 1909년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일어난 의병들의 활동. 한말 의병은 국가와 민족을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보전시키고자 자발적으로 무장 항쟁한 군사 집단이다. 주자학적 의리론과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중화를 받들고 이적을 물리침]을 기본으로 하는 국수보복론(國讐報復論)[국모의 원수를 갚아야 함]과 안민론(安民論) 등의 이념적 성격을 띠었다....
-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공공 문제의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 분배와 관련된 지방자치단체의 제반 활동과 상호작용 과정. 행정의 수행은 정치 권력을 배경으로 하지만 공공 서비스의 생산 및 공급은 정부가 독점하지 않는다. 즉, 준정부기관 및 민간 부문과의 상호작용 및 협력적 관계를 통해 공공 서비스를 생산, 공급, 분배한다. 넓은 의미의 정부는 국가 통치기구를 의미하며 입법...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달리에 있는 효부 동래정씨의 조선 후기 정려. 효부 동래정씨(東萊鄭氏)[1649~1728]의 아버지는 정은(鄭嶾)이고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愼氏)이다. 신창 수라리에 사는 해주오씨 선전관 오도빈(吳道彬)[1647~1706]의 부인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부모를 떠날 수 없어서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할 만큼 부모를 극진히 섬겨서 고을 사...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효자 맹사성의 조선 전기 정려. 맹사성(孟思誠)[1360~1438]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창이다. 청백리, 명재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다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맹사성은 효자였는데, 맹사성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어머니를 극진하게 간병하며 모셨다. 맹사성이 열 살 되던 해에 어머...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효자 맹흠규의 조선 후기 정려. 맹흠규(孟欽圭)[1735~1811]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창, 자는 유옥(幼玉), 호는 만옹(晩翁)이다. 신창맹씨 18대손으로 1765년 진사시에 급제하고 1805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사헌부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효자 맹흠규 정려와 관련하여 맹흠규의 효행 관련 사항이 전해지는 기...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효자 맹희도의 조선 초기 정려. 맹희도(孟希道)[1337~?]는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호는 동포(東浦)이며 본관은 신창(新昌)이다.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사람으로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키며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순절한 이부상서(吏部尙書) 맹유(孟裕)의 아들이며, 고불 맹사성(孟思誠)의 아버지이다. 1365년(공민왕 14...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의 효자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효자리에 얽힌 전설」은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효자리 마을의 지명과 관련된 이야기로, 박창신과 최익대의 효성을 보여 주는 이야기다. 최익대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이병연이 편찬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아산편」에 실려 있는데, 여기에 최익대라는 효자로 인해 ‘마랑동(馬郞洞)’이라는 지명이...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와 영인면 상성리를 잇는 고개. 희내재가 있는 길은 신창현[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에서 아산현[충청남도 아산군의 옛 행정구역]으로 가는 길 가운데 하나였다. 신창에서 아산을 가려면 곡교천을 건너야 했는데, 신창-아산을 잇는 주 도로는 곡교천의 고분다리[曲橋]를 건너 아산고개를 넘는 길이었다. 이 외에도 중방포, 신포, 장구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