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부읍지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과 북면에 걸쳐 있는 산. 구룡산은 창원시의 진산인 검산(檢山)에서 줄기를 이어 온 낙남정간의 기맥으로서 북쪽의 백월산으로 맥을 잇는다. 이곳에는 모두 3개의 산성이 있다. 염산성(簾山城) 혹은 구룡산성(九龍山城)이라 알려진 것이 대표적이며, 서쪽의 지개리 쪽 골을 안은 포곡식(包谷式) 산성과 또 하나는 동북쪽으로 약 1㎞ 떨어진 봉우리(3...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창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조세제도가 문란하게 운영되면서 이에 따른 백성들의 피해와 부담이 막대해졌다. 창원 지역에서도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요역의 부담과 그 폐단이 심각하였다. 이에 창원부사 정언형(鄭彦衡)이 백성들이 과중한 요역의 부담과 폐단에 시달리는 것을 막고자 설치한 것이 균제고로서, 정언형이 창원부사로 재임 하였던 1784년(정조...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수령이 국왕을 대신하여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에게 제사 드리는 사단(社壇)과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 드리는 직단(稷壇)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때에도 의식을 행하였다. 전통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주례(周禮)』의...
-
조선시대 창원도호부 관내에서 실시되었던 곡물대여제도나 기관 또는 그 곡물 저장 및 보관 시설. 사창은 조선시대 각 지방 군현을 중심으로 설치하여 운영한 곡물대여기관이자 제도로서 의창 및 상평창과 함께 3창의 하나이며 한편으로는 그 시설이나 그 시설 관리자의 직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그 시설인 창고를 의미하며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는 창원도호부 관내에 약 1...
-
경상남도 창원시 팔룡동에 있던 조선시대 포구. 사화(沙火)는 ‘모래벌판’의 한자식 표기이다. 사화(沙火)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이곳이 모래벌판으로 이루어진 해안가 사장(沙場)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화포는 지이포의 초입에 해당되는데, 지금은 어디에서도 과거 해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러한 지명을 통해 과거 창원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실제 창원대로 상의...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수군 무기 보관 창고.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 운영되었는데 수군기고(水軍器庫)는 그 중의 하나이다. 수군기고는 바다와 연안 등지에서 전투와 방어의 역할을 담당하는 수군의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서, 창원도호부에서 서쪽으로 8㎞ 거리에 있던 해창(海倉)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여제를 지내던 제단. 여제는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이나 역질을 퍼뜨리는 귀신인 여귀(厲鬼)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의 각 군현에 여단을 두어 역병을 예방했다. 이 여단은 동쪽의 성황단, 서쪽의 사직단과 함께 관아에서 필수적으로 세우는 제단이었다. 여제는 1908년 국가 차원에서 폐지되면서 철저하게 부정되고...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곡식 보관 창고. 영송창(迎送倉)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영송고(迎送庫)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영송고는 영송도감(迎送都監)에 소속된 관아의 하나로, 사람을 맞이하고 보내는 데 필요한 돈과 물품을 담당하였다. 영송창은 창원도호부 관아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데 필요한 경비로 사용될 곡식을 보관한 창고였을 것으로 짐작된...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청. 영송청(迎送廳)은 창원도호부에서 쇄마(刷馬)의 관리를 맡아보던 건물로 짐작된다. 쇄마란 조선시대 지방의 관아에 갖추어 두었던 말[馬]을 가리킨다. 영송청은 창원도호부 관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주로 비용을 지불하고 민간의 말을 고용하였다.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영송청은 1734년(영조 10...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육군 무기 보관 창고.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 운영되었는데 육군기고(陸軍器庫)도 그 중의 하나였다. 육군기고는 지상에서 전투와 방어의 임무와 역할을 담당하는 육군의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서, 창원도호부의 관아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창원은 1601년(선조 34)...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이숙(李潚)은 창원도호부[현 경상남도 마산시 봉암동]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이는 『창원부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1602년(선조 35) 이귀(李貴)가 정인홍(鄭仁弘)의 죄악을 아뢴 상소문 속에 '합천군수 이숙이 정인홍이 관의 명령을 거역한 것을 분히 여겨 반민(叛民)이라 꾸짖었더니, 정인홍이 감...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본역을 두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로. 자여도는 창원도호부를 중심으로 동쪽의 김해도호부, 서쪽의 함안군, 남쪽의 웅천현, 북쪽의 칠원현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의 교통로이다. 역로 개설의 특징은 대체로 자여도의 동서쪽 길은 낙동강 유역의 남쪽 외연을 동서축으로 연결하며, 남쪽 길은 고개를 넘어 해안선을 따라 개설되어 있다. 따라서...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 자여역은 경상남도 해안 지역의 동서 교통로를 형성하는 자여도의 중심 역원으로,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국가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자여역은 14개의 작은 역을 거느리며 창원 지역을 중심으로 동쪽의 김해시, 북쪽의 창녕군·밀양시, 서쪽의 마산시·함안군, 남쪽의 진해시를...
-
자여마을에 있었다고 알려진 자여장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이 때문에 자여장의 모습은 옛 기록과 주민들의 기억 속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다. 『창원부읍지』에 의하면 자여장은 창원도호부에서 동쪽으로 20리 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자여역이 있던 송정리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나, 봉산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자여장은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의 경계선을 이루는 작은 도랑가를 따라서 형...
-
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장붕익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운거(雲擧), 호는 우재(憂齋).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장차주(張次周)이다. 장붕익은 164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등을 거쳐 1702년 11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 백성들에게 은혜와 위엄을 베풀어 아전들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장수산(張守山)은 창원도호부[현 경상남도 마산시 합성동]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3등공신에 녹훈되고, 벼슬이 수문장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내용이 『창원부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5일마다 열리는 사설 시장. 조선시대의 장시는 어용상(御用商)이나 시전(市廛)과 구별되는 시장으로, 별다른 시설이 없는 일정한 장소에 상인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모여 서로 교역하는 곳을 말한다. 이들 장시는 대부분 고장의 치소(治所)가 있었던 읍성 주변이나 역(驛) 주변, 그 외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교통의 요지에서 열렸다. 주로 5일을 주기로 하여...
-
창원은 조선시대에 들어 그 읍격이 승격하였다. 창원부로 시작하여 1415년(태종 15)에 창원도호부로 개칭하였다가 임진왜란을 겪은 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창원이 행정·군사의 중심 지역이자 경상남도 일대의 수도로 그 위상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문묘의 전패(殿牌)가 분실된 사건을 계기로 9년 남짓 창원현으로 격하된 적이 있...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진휼미 보관 창고.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운영되었는데, 진창(賑倉)도 그 중의 하나로서 창원도호부의 관아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는 생산량의 감소와 냉해 등 자연재해로 인하여 그 해의 작황이 좋지 않아 식량 사정이 나쁠 때 어려운...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차역들의 급료 보관 창고.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 운영되었는데 차역고(差役庫)도 그 중의 하나이다. 차역고는 창원도호부의 관아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차역고는 차역창(差役倉)이라고도 하였다. 차역(差役)이란 관아에서 일을 시키는 노동자들을 가리킨다. 차역창은...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동에 있는 조선 전기 창원도호부의 치소(治所) 외곽을 옹위하던 성. 세조 때 창원읍성을 쌓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창원은 절제사 군영과 아주 가깝고 절제사 군영의 성곽이 넓기 때문에 따로 읍성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있어 결론이 나지 않았다. 창원의 경우 당시 군자감 창고는 군영의 성곽 안에 있었으나 의창은 부에 있었으므로 군영의 성...
-
1832년(순조 32) 창원대도호부사 김이종이 편찬한 읍지. 『창원부읍지』는 당시 창원대도호부사이던 김이종(金彛鍾)이 조정의 명을 받아 저술하였다. 1700년대 후반에 편찬되었던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내용을 새롭게 보충하기 위해 편찬을 기획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총 20책으로 경상도 관할의 71읍 읍지가 모두 수록되어 있다. 『창원부읍지』는 서울대학교 규장...
-
경상남도 창원시 창원분지의 서쪽을 에워싸고 있는 산맥. 천주산(天柱山)을 최고봉으로 하여 북쪽의 전단산맥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나온 산맥이다. 이 산맥은 창원시와 마산시, 함안군 칠원면에 걸쳐 자리 잡고 있으며, 또 이들 행정구역의 경계가 된다. 천주산은 청룡산(靑龍山)이란 이름 외에 첨산(檐山), 담산(擔山), 작대산(爵大山) 등의 이름으로 불렸는데...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물품 보관 창고.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 운영되었는데, 해창도 그 중의 하나이다. 해창은 창원도호부 내의 곡식 등 물품을 보관한 창고로서 창원도호부에서 서쪽으로 8㎞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라에 바치는 세곡의 보관과 수송을 위한 조창(漕倉) 곁에 위치하고 있었다. 조선시...
-
창원시 북면 외감리와 감계리 일대에서 우거(寓居)하였던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유악(維嶽)·수옹(壽翁).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허자(許磁)[1496~1551]이고, 아버지는 강호처사(江湖處士) 허강(許橿)[1520~1592]이다.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1523~1603]로 대제학을 지낸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외손녀이다....
-
조선 중기의 문신. 황근중(黃謹中)[1560~1633]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일지(一之), 호는 월담(月潭). 창원황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영춘현감(永春縣監)을 지낸 황수(黃琇)[?~1617]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南氏)[?~1618]로 좌랑(佐郞)을 지낸 이준(李浚)의 딸이다. 황경중(黃敬中)[1569~1630]의 형이며, 조선 현종 때 영의정을 지낸 양...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아버지는 황석기(黃石奇)이고, 아들은 황윤서(黃允瑞)이다. 황상은 충혜왕 때 호군이 되었으며, 공민왕 초에 밀직부사에 제수되고 추충익찬공신(推忠翊贊功臣)에 봉해졌다. 1354년(공민왕 3) 유탁(柳濯)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장사성(張士誠)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돌아와서 지추밀원사가 되었다. 1356년 적신 기철(奇轍) 일...
-
고려 후기의 문신. 황석기(黃石奇)의 본관은 창원(昌原). 창원황씨 공희공파(恭僖公派) 파조(派祖)이며, 아들은 황상(黃裳)이다. 황석기는 충혜왕비인 원나라의 덕녕공주(德寧公主)를 따라와서 충혜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겼다. 1342년 밀직사지신사로 조적(曺頔)의 무리를 제거하고 왕을 시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다.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갱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