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정동만(鄭東萬)[1772~1841]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뒤 남원 도호부사로 승진하였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사복시첨정을 거쳐 광주 판관을 지냈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일원(一元), 아버지는 정언복(鄭彦復)이며, 목사를 지낸 정화순(鄭華淳)에게 입양되었다. 처는 군수를 지낸 박삼원(朴參源)의 딸이다. 1807년(순조 7) 생원시...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 병조 판서를 지낸 정이한(鄭而漢)의 후손이다. 정동철(鄭東哲)[?~?]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상태를 살피고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마련하는 등 극진히 봉양하였다. 또한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접대함에 있어서도 항상 예로써 행하였다. 어느 날 부모의 약을 지어 돌아오는 길에 배고픔과...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정존중(鄭存中)[1721~1798]은 천안 군수 재임 시 전염병이 돌아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수습했다. 이후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정(士靜)이다.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鄭光弼)의 후손이며, 정제선(鄭濟先)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정형익(鄭亨益)이며, 아버지는 정홍상(鄭弘祥), 어머니...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정지경(鄭之經)[1586~1634]은 천안 군수였던 정근(鄭謹)의 아들로 부자가 모두 천안 군수를 지냈다. 천안 군수 재임 시 전임 군수 손여성(孫汝誠)이 지은 『문헌록』을 바탕으로 『속문헌록』을 간행하고, 고을의 효자와 열녀를 포상하였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상백(常伯), 호는 기은(機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구(鄭球)이고...
-
개항기 천안 출신의 문신. 조병호(趙秉鎬)[1847~1910]는 1883년 안동 부사로 재임 시 민란을 진압하였으며, 이듬해 외무독판이 되어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박영효 등의 소환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예조 판서, 한성부 판윤, 의정대신 등을 지냈다.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덕경(德卿),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참판을 지낸 조기진(趙基晉)의 아들이며, 한...
-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시기의 천안 지역의 역사. 1914년에 천안군(天安郡)·목천군(木川郡)·직산군(稷山郡)이 통합되어 천안군이 되었고, 1963년에 천안시와 천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이 되고, 1995년에 다시 통합되어 현재의 천안시가 되었다. 따라서 1914년 이전의 천안시 지역은 천안(天安)·목천(木川)·직산(稷山) 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에 전해 내려오는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전설. 천안 삼거리에서는 서울에서 내려오는 큰 길이 두 길로 나누어진다. 한 길은 병천을 지나 청주·문경새재·대구·동래에 이르는 길이고, 또 하나의 길은 공주를 거쳐 논산·강경·전주·순천에 이르는 길이다. 천안 삼거리는 지금의 국도 1호선과 21호선이 교차하는 사거리의 바로 위쪽이며, 이곳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용동에 있는 공원. 천안 삼거리 공원은 민요 흥타령(興打令)으로 유명한 천안 삼거리를 기념하여 조성되었다. 천안 삼거리는 조선 시대 삼남 대로(三南大路)의 분기점이다. 이 길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대로로 천안에 이르면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 길은 병천을 거쳐 청주로 들어가 문경 새재를 넘어 상주로 통해 영동, 김천을 지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