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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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龍-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윤제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원래 구룡사가 있던 절터였으나 뒷날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마을이다.
[명칭 유래]
구룡산 정상에 위치해 있으며 경상북도 경산시와 경상북도 영천시, 청도군의 경계 지역에 자리한 마을이다. 예전에 이곳에 구룡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구룡사는 9마리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기 위해서 1,000년 동안 기도를 올렸던 곳이라고 하며, 한 도승이 이곳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구룡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한때는 9마리 용의 원력으로 1,000여 명의 승려가 머문 큰 절로 번창하였으며, 그때 승려들이 먹기 위해서 세운 물레방아가 있었다는 물방골[물방아골]이 지금의 용천 약수탕 안 계곡에 작은 못으로 남아 있어 전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한다.
용천 약수탕은 정상동 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약수는 철분이 많은 약수로 약효가 있어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룡산 상봉에 모여 살던 10마리의 용이 승천을 할 때, 그 중 제일 덕량이 많았던 늙은 용 한 마리가 9마리의 용들을 승천시켜주는 데 힘을 다 쏟고 자기는 힘에 겨워 승천하지 못한 채 지금도 용천 약수탕 우물 속에 남아 몸을 도사리고 있다는데, 이 한 마리의 영험으로 용천 약수탕의 효험이 있다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형성 및 변천]
구룡산 동쪽에 자리한 구룡 마을은 운문면 정상리에 속한 마을이다. 오래전에 산너머에는 수암사가 있었고, 이곳에는 구룡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천주교 신자들이 관의 박해를 피해서 군의 경계 지역으로 피난을 와서 정착을 한 곳이 구룡이고 구룡에는 옛날 절터가 있어 쉽게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이곳으로 온 동기는 대부분 천주교 박해 때 경산과 영천 그리고 청도의 경계 지점인 이곳은 관청의 수색으로부터 피하기 쉽고 깊은 산중이라서 이곳으로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팔공산 담티 성지와 언양의 배넘이골과 같은 곳이다.
[자연 환경]
구룡산 정상에 자리한 마을로, 동쪽으로 보고 비탈에 형성되어 있다. 앞뒤가 모두 산이지만, 천수답 농지가 있어 여러 집이 살 수 있는 곳이다. 등 너머에는 경산 구룡 마을로 가는 길과 영천 북안으로 가는 길이 있다.
[현황]
마을에는 4가구, 6명[남자 3명, 여자 3명]의 주민이 약초와 고랭지 채소 등을 재배하며 살고 있다. 옛날 학생들은 아랫마을 봉하 국민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모두 객지(도회지)로 나가고 젊은 사람은 없다.
천주교 대구 대교구의 구룡 공소가 중심이 되고, 옛 종탑은 길 위에 있다. 구룡 공소는 거의 비어 있지만 매주 일요일은 어김없이 경산시 용성 천주교회에서 와서 예배를 보고 있다. 동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약 500m 가면 수암동 수암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