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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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西里遺蹟 |
이칭/별칭 | 송서동 고분군(松西洞 古墳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 716번지 일대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구군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6월 19일 - 송서리 유적 경북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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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9월 30일 - 송서리 유적 경북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완료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1년 9월 7일 - 송서리 유적 경북 문화재 연구원에서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2년 2월 28일 - 송서리 유적 경북 문화재 연구원에서 조사 완료 |
현 소재지 | 송서리 유적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 716 일대 |
성격 | 생활 유적|분묘 유적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이래 통일 신라 시대에 걸친 생활·분묘 유적.
[위치]
유적은 행정 구역상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 716번지와 617-13번지 일원에 있다. 경위도 상으로는 동경 128°37′08″, 북위 35°38′23″에 해당한다. 각북천과 풍각천 사이에 있는 풍각면 소재지 북편에 붕어산[해발 144.1m]이라는 독립 구릉이 있는데, 청동기 시대와 삼국 시대 취락 및 고분군은 붕어산의 남동 자락 아래쪽에 해당하는 평탄 대지에 입지하고 있다. 즉 풍각 초등학교를 포함하는 동편의 송서리 일대가 유적의 범위이다.
[형태]
각북천과 풍각천 사이에 있는 풍각면 소재지는 서편의 탑들과 동쪽의 송서들에 둘러싸여 있는 형세이다. 그 북편에는 동서 320m, 남북 160m 크기의 평면 타원형인 붕어산이 있다. 붕어산 앞쪽에 자리한 풍각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서쪽의 탑들에는 불교 유적인 봉기동 유적이 있고, 동쪽의 송서리 마을에는 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삼국 시대의 취락과 삼국 시대 고분군이 조성된 송서리 유적이 있다.
유적이 있는 평탄 대지[해발 99m]는 각북천의 범람에 의한 충적지이지만, 그 앞쪽은 서북과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현리천과 풍각천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각북천과 풍각천이 합수하는 청도천의 시점까지 불과 1.4㎞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주변은 비옥한 충적지가 넓게 분포할 뿐 아니라 풍부한 수원이 뒷받침되고 있었다. 사방으로 트인 교통의 요충지로서도 뛰어난 입지적 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인간들의 생활 터전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여겨진다.
[현황]
유적지에 대한 1차 조사는 풍각 초등학교 내 다목적 교실 신축을 위하여 실시되었다. 2004년 2월 시굴 조사를 실시하고 6월 19일부터 9월 30일까지 발굴 조사가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주관하여 이루어졌다. 2차 조사는 2011년 9월 7일부터 2012년 2월 28일까지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담당하여 주변 일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1차 조사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住居址] 1동, 삼국 시대 집자리 3동, 삼국 시대 무덤으로 덧널무덤[木槨墓] 5기와 돌덧널무덤[石槨墓] 37기·독무덤[甕棺墓] 2기, 통일 신라 시대 건물지의 고래 시설 5기가 드러났고, 2차 조사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3동, 삼국 시대의 덧널무덤 1기·돌덧널무덤 53기·돌방무덤[石室墓] 3기·독무덤 3기 등 다양한 무덤 유구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출토 유물로는 삼국 시대의 집자리에서 짧은 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 항아리[臺附壺], 두 귀 달린 항아리[兩耳附壺], 손잡이 달린 옹[把手附甕], 긴 계란 모양 옹[長卵形甕], 시루, 바리[鉢] 등의 토기류가 나왔다. 덧널무덤에서는 뚜겅 없는 굽다리 접시[無蓋高杯],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有蓋高杯], 짧은 목 항아리, 긴 목 항아리[長頸壺], 뚜껑 있는 굽다리옹[有蓋臺附甕], 컵 모양의 아가리가 넓은 작은 단지[컵形廣口小壺], 컵 모양 토기[컵形土器], 바리[鉢], 뿔 모양 잔[角杯], 바리 모양 그릇 받[(鉢形器臺], 원통 모양 그릇 받침[筒形器臺] 등의 토기류와 쇠화살촉[鐵鏃], 쇠도끼[鐵斧], 쇠낫[鐵鎌], 쇠손칼[鐵刀子], 쇠집게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한편 돌덧널무덤에서는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짧은 목 항아리·긴 목 항 아리·굽다리 긴 목 항아리[臺附長頸壺]·뚜껑 있는 작은 옹[有蓋小甕]·굽다리 완[臺附盌]·손잡이 달린 굽다리 완[臺附把手附盌]·손잡이 달린 옹· 손잡이 달린 작은 옹·굽다리 합[臺附盒]·큰 항아리[大壺]·토제 다리미[土製熨斗]·가락바퀴[紡錘車] 등의 토제품, 금판 덧씌운 가는 고리 귀걸이[鐵地金張細鐶耳飾]와 은판 씌운 하트 모양 허리띠 장식[鐵地銀張心葉形銙帶金具], 그리고 새끼칼 딸린 큰 칼[母子大刀]·쇠칼[鐵刀]·쇠화살촉·쇠도끼·쇠낫·쇠손칼·작은 방울[小形鐵鐸] 등의 금속류가 나왔다.
이 밖에 1차 조사 때 삼국 시대 집자리 1호 주변에서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과 사격자문[斜格子文]이 각각 시문된 2점의 빗살무늬 토기 조각이 수습되어 신석기 시대 중기 이후부터는 이곳에 사람들이 정주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