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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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堯卿惠恤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 396-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인표 |
건립 시기/일시 | 1713년 - 송요경 혜휼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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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송요경 혜휼비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631-1 |
성격 | 비석 |
양식 | 호패형 비석 |
관련 인물 | 송요경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130㎝[높이]|50㎝[너비]|16㎝[두께] |
소유자 | 청도군 |
관리자 | 청도군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정비.
[개설]
청도 군수 송요경이 백성을 구제한 것을 기리는 선정비로,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사거리 마을에 있다. 송요경(宋堯卿)[1668∼174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백유(伯兪)이고,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증손자로 33세 때인 1700년(숙종 26)에 처음 벼슬한 이래 돈녕제용판관(敦寧濟用判官)·혜국낭청(惠局郎廳)을 거치고, 외직으로는 청산 현감·청도 군수·선산 부사·청주 목사·나주 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744년(영조 20)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가 되었고, 1747년(영조 23) 청산(靑山)·통정(通政) 등 요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송요경이 청도 군수로 재임한 기간은 1709년(숙종 35)부터 1714년(숙종 49)까지이다.
[건립 경위]
청도 군수였던 송요경이 청렴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등 선정을 베푼 것을 기리기 위하여 유사(有司) 김태정(金兌精)을 중심으로 청도 군민이 건립하였다.
[위치]
금천면사무소에서 금천 사거리를 지나 선암로를 통해 신지리 방면으로 가면 신지 2리 사거리 마을 새마을 회관이 있다. 이 사거리 마을 북쪽 끝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면 비석이 있다.
[형태]
사각형의 화강암 비석 받침을 갖춘 호패형 비석으로 규격은 높이 130㎝, 너비 50㎝, 두께 16㎝이다.
[금석문]
비석 앞면에 해서체로 ‘군수송공요경청검혜휼비(郡守宋公堯卿淸儉惠恤碑)’라고 음각하였고, 뒷면에 ‘숭정후계사오월일입 유사김태정(崇禎後癸巳五月日立 有司金兌精)’이라고 새기고 있다. 이 비문을 통하여 비석이 1713년(숙종 39)에 김태정의 주관 아래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보호 시설 및 표지판 없이 비석만 야외에 노출되어 있으나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비문을 모두 읽을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청도 군수로 임명된 지방관의 활동과 이를 대하는 청도 주민의 반응을 알아 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