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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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垶 |
이칭/별칭 | 화봉(華封),매헌(梅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개설]
이성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1635년 과거에 급제한 뒤 승문원 교례를 비롯하여 병조 정랑·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49년(인조 27)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청렴한 생활을 하며 선정을 쌓았으나, 화재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화봉(華封), 호는 매헌(梅軒). 영광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이응종(李應鐘)이고, 아버지는 찰방 이극부(李克扶)이며, 어머니는 남원 양씨(南原梁氏)로 별제(別提) 양홍도(梁弘度)의 딸이다.
[활동 상황]
이성(李垶)[1594∼1653]은 아버지로부터 가학을 전수받아 18세 때 향시 양장(兩場)에 합격하여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1623년(인조 1)에 부모의 상을 연이어 당한 뒤 잠시 과거를 포기하였다. 1635년 형의 권유를 받아들여 응시,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그해 승문원 교례(承文院敎隷)에 임명되고, 1637년 주서가 되었으나 1년 뒤인 1638년 병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
1639년 전적으로 다시 임명되고 연서 찰방(延曙察訪)을 지냈으며, 1642년 병조 좌랑, 1648년 병조 정랑·사헌부 지평을 역임하고, 동차하정사(冬差賀正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49년(인조 27) 6월에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공평하고 청렴한 생활로 많은 선정을 쌓았으나, 화재 사건으로 1651년(효종 2)에 파직되어 향리로 돌아갔다.
[학문과 저술]
청도 군수를 그만 둔 뒤 여러 번 출사를 요청받았지만, 독서와 시를 즐기며 지냈다. 저서로는 『매헌 유고』가 있다.
[상훈과 추모]
청도에 청백 선정비(淸白善政碑)가 세워졌으나, 현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