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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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河淡 |
이칭/별칭 | 응천,소요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출생 시기/일시 | 1479년 - 박하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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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16년 - 박하담 생원시에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560년 - 박하담 사망 |
출생지 | 박하담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
묘소|단소 | 박하담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칠엽산 |
사당|배향지 | 선암사 - 경상북도 청도군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밀양 |
대표 관직|경력 | 생원 |
[정의]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응천(應千), 호는 소요당(逍遙堂). 증조할아버지는 함양 군수를 지낸 박융, 할아버지는 소고공 박건이며,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박승원(朴承元)이고, 어머니는 경절공 하숙부(河叔溥)의 딸 진주 하씨(晉州河氏)이다.
[활동 사항]
박하담(朴河淡)[1479∼1560]은 1516년(중종 11)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뒤 여러 번 대과에 실패하자 청도의 운문산 아래 눌연(訥淵) 위에 정자를 짓고 소요당이라 명명하고 풍류로써 여생을 보냈다. 조정에서 박하담의 학행을 듣고 감역·봉사·사평 등의 직임을 주어 여러 번 불렀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다.
기묘사화 로 낙향한 김대유와 교분이 두터워 함께 청도 지역에 사창(社倉)을 설치하였으며, 조광조 일파가 처형되자 그의 문집을 불태워 버렸다. 82세로 죽은 뒤 청도 칠엽산에 묻혔다.
[학문과 저술]
조식·성수침 등과 교유하였으며, 저서로는 『소요당일고』 5권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칠엽산에 있으며, 묘재인 칠엽재(七葉齋)가 있다.
[상훈과 추모]
청도군 선암사(仙巖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