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웅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성희(聖希)이다. 군수(郡守) 김추(金樞)의 아들이다. 1716년(숙종 42)에 무과에 급제하여 내외 직을 두루 거친 후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726년(영조 2)에 관직을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728년 청주에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이 일어남에 전 주서(注書) 유언협(柳彦協) 및 삼종형(三從兄) 김광노(金...
-
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겸숙(兼叔)이다. 공조참판 김자항(金字恒)의 아들이다. 상신(相臣) 김우항(金宇杭)의 서질(庶姪)이다. 할아버지는 김홍경(金洪慶)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덕승(金德承)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청주 상당산성 아래로 이사하였다.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하였고, 체력이 남달리 뛰어나 남대문루를 뛰어넘었다 한다. 1728년(영조 4)...
-
1728년(영조 4)에 소론(少論) 과격파들과 남인(南人)이 영조(英祖)와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은 노론(老論)이 지지하는 영조의 즉위로 위협을 느낀 소론의 과격파들과 남인이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증손(曾孫)인 밀풍군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이다. 충...
-
조선 후기의 무신. 창의사.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사호(士毫), 호는 서호산인(西湖山人)이다. 박민웅(朴敏雄)은 부사 박원진(朴元震)의 손자이다. 도량과 재간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여 소년 때부터 이름이 났다. 뒤에 장붕익(張鵬翼)과 이봉상(李鳳祥)[1676~1728]이 각각 국사(國士)로서 조정에 천거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등이 반란(무...
-
조선 후기의 창의 인물.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언백(彦伯)이다.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의 아우이고, 할아버지는 부사(府使) 박원진(朴元震)이다. 임진의병장 박춘번(朴春蕃)의 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여 무예가 뛰어났으나, 무과에 등과하지는 못했다. 1727년(영조 3)에 어사 김시형(金始炯)이 역사(力士)로 천거하였으나 탁용(擢...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에 있는 박민준(朴敏俊)[1676~1744]의 묘비.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공적을 세운 박민준의 묘비로 1859년(철종 10)에 세웠다. 청주에서 청원군 부강으로 가는 서부도로의 충북공업고등학교 부근의 오른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186㎝, 폭 63㎝, 두께 37.5㎝이 오석...
-
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임진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5대손이며, 병자호란 때 순절한 박동명(朴東命)[1576~1636]의 현손으로 삼대 창의(倡義)의 충절을 자랑한다. 어릴 때 『삼국지(三國志)』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를 외우고 감상하길 즐겼다. 1727년(영조 3)에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생활하던 중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본명은 신복영(申復永)으로 청주 출신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高靈申氏) 입향조인 신식(申湜)의 5대손이자, 경종대에 남인으로 활약하던 신경제(申慶濟)의 손자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는 연산군 대에 낭성과 가덕에 낙향하여 상당산(上黨山)[419m] 동쪽에 살았으므로 산동신씨라고 지칭되어 왔으며, 낭성에서 대과급제 24명, 진사 8...
-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에 청주 상당산성에서 반란군을 토벌한 의병장.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문거(文擧)이다. 아버지는 1693년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을 상소하여, 심한 국문을 받아 옥사한 감찰 연최적(延最績)이다. 1728년(영조 4)에 영조(英祖) 무신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조지성(趙持誠), 조완담(趙完澹)의 부자를 시켜 의병 40여 인을 모아 청주...
-
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고성(高城)이며, 자는 무숙(茂叔), 호는 한죽당(寒竹堂)으로 천성이 효성스럽고 학문이 박식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의병을 일으켜 이붕해(李鵬海), 민진완(閔鎭緩), 변관하(卞觀下) 등 의병장과 청주 인근 산하에서 군사를 수습하여 인솔하고 청주읍성(淸州邑城) 남문밖에 이르니 이미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이 적의 두목을 처참한 뒤...
-
조선 후기의 무관.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무신란을 주도하여 청주성을 장악한 이인좌(李麟佐)의 동생이다. 무신란이 일어나 반군이 청주를 장악 할 때 가담한 인물이다. 반군은 청주성 장악 이후 신천영(申天永)과 이기좌(李麒佐)에게 청주를 지키게 하고 증평 청안, 천안 목천, 진천을 지나 안성과 죽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반군은 안성, 죽산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궤멸되었고, 이 소식을...
-
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고려 말의 명현(明賢)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13대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그의 종제(從弟) 이사해(李思海), 당질(堂姪) 이중저(李重著), 향인(鄕人) 김양구(金陽龜) 등을 이끌어 청주 근처 산하에서 수백 인을 모아 창의하여, 청주성의 동문을 치고 창의사(倡義使) 박민웅...
-
조선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성수(聖叟)이고, 밀성군(密城君)의 후예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 인근의 친지를 모아 70여인을 얻었다. 종질(從姪) 이태지(李泰之)를 부관(副官)으로 삼고, 당질(堂姪) 이원지(李元之), 이형지(李亨之) 형제를 종사관(從事官)으로 삼고, 삼종(三從) 이희명(李希命)과 이종인(李宗人), 이민핵...
-
청주문화란 청주와 청원 지역에서 축적되고 존재하는 문화이다. 청주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상대적인 문화 개념이다. 청주문화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화의 독자적인 완결성을 공간적으로 강조할 때 이런 문화단위 개념이 설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지역의 독자적 문화문법(文化文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마모를 견디면서 내재하는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