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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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동편에 위치한 우암산(牛岩山)[338m]에 얽힌 전설. 청주시 상당구에 해발 339m인 우암산(牛岩山)[338m]이 있다. 조선 선조 때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이 보은으로 가는 길에 충청남도 연기(燕岐)에서 아양산(지금의 부모산, 청원군 강서면과 비하리에 걸쳐 있는 산)에 올라 주변의 지형을 살피던 중 동쪽에 산세(山勢)가 예사롭지 않은 산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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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계변무(宗系辨誣)를 축하하는 경하시(慶賀詩)를 모아 인쇄하기 위해 만든 판목(板木). 중국 명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선계(先系)가 고려의 권신인 이인임(李仁任)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어 건국초기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계속 거절당하다가 1584년(선조 17) 5월에 종계변무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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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청주 출신으로 선조 때 무과에 등과하여 관직에 나갔다. 임진왜란으로 왜적이 침입할 당시 경상남도 거제 지세포(知世浦) 만호로 있을 때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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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붙이와 돌에 새긴 살아있는 역사기록이며 선조들의 삶과 사건의 생생한 증거 금석문은 크게 금문과 석문으로 나누어진다. 금문은 금속류의 용기·악기·무기·화폐·인장·경감·조상·범종·도량형 등에 주출되었거나 새겨진 문자이며, 석문은 석재의 비·묘지·조상 등에 새겨진 문자이다. 금문의 대표적인 경우는 「칠지도명」·「환두대도명」·「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광배문」·「상원사종명」·「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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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 10통이고, 법정명은 문암동 그림바위이다. 문암동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 지역으로 그림바위가 있으므로 화암(畵岩) 또는 문암(文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주내면(西州內面)의 문암리(文岩里)를 병합하여 문암리(文岩里)라 해서 강서면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에 대통령령에 의하여 청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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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이다. 주부 박인량(朴仁亮)의 손자이며,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의 증손자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장령·동래부사에 제수되었고, 1622년 청주목사가 되었다. 벼슬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성품이 강개하고 고집이 세어, 공론에 맞지 않으면 권귀(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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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박숭원(朴崇元)의 신도비. 조선 선조 대의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인 박숭원의 신도비이다. 비문은 황경원이 짓고, 윤용구가 글씨와 비액을 썼다. 그리고 박숭원의 외손인 송의섭이 이미 선조 대에 비문을 지었으며, 순조 대에 와서 비를 건립하게 된 내력에 대한 추기를 새겼다. 흥덕구 수의동 도장골마을 입구 왼쪽 언덕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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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진왜란 때 청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영의정 박란(朴蘭)의 손자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인근 사림의 추앙을 받고 있던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1592]의 의병진에 합류하였는데, 이 때 나이 21세였다. 1592년 왜군이 청주성까지 진격하자 청주성에서 전투가 크게 벌어졌는데, 7월 28일 전사하였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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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동편에 위치하는 청주의 진산이며 문화유적의 보고.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8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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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으로는 흥덕구 강서 1동 14통이고, 법정명으로는 수의동 강촌이다. 수의동은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의 지역으로 절의를 지킨 사람이 많은 마을이라 하여 수의동(守儀洞)[수절, 숫절]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강상리(綱常里), 부동(釜洞), 정상리(井上里)를 병합하여 수의리(守儀里)로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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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천곡(泉谷)할아버지의 출생지는 서울 황하방인데, 지금 그 위치는 정확하게 어딘지는 모르겠어.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할아버지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천곡 선생의 부친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사신 곳은 현재로는 전라도 정읍시 망재동 마을인데 거기가 천곡이야. 그래서 호가 천곡이구, 거기를 샘골이라 부르기도 해. 임진왜란 때 일본이 명나라를 치러갈 때 목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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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국립청주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원래 충청북도 괴산군의 영산신씨 충익공파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문서로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이 관리하고 있다. 2005년 2월 8일부터 2005년 3월 31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린 ‘기증 및 기탁문화재 특별전’에 전시되기도 한 이 문서들은 공신교서와 신경행 및 그의 후손에 관한 문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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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인물, 임란의사(壬亂義士).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문길(文吉)이다. 고려 개국공신이었던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지역으로 진격할 때 왜적에게 사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왜국으로 끌려간 신예남(申禮男)은 그들의 온갖 협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인으로서의 절개를 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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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민사건(閔思謇)의 딸이며, 공조참판에 증직된 신예남(申禮男)의 아내이다. 임진왜란 때 남편 신예남을 따라 진보(眞寶)로부터 청주 오창(梧倉)으로 옮겨 살았다. 왜적이 들이닥쳐 신예남이 잡히자 적에게 뛰어들어 구하고자 하였다. 심하게 다친 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 진보로 옮겨가 남편의 의관으로 초혼장(招魂葬)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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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산.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청주 서쪽 5리에 수구(水口)에 사람들이 두 개의 산을 만들어 놓고 야양(爺孃)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이 산이 오래 전부터 ‘야양산’으로 불려왔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는 ‘아양산’은 ‘야양산’에서 변한 것이다. ‘아양’은 단독으로 쓰여 마을을 지시할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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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기허당(騎虛堂)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수도할 때 선장(禪杖: 승려의 지팡이)으로 무예를 익혔는데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출중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규대사(靈圭大師)[?~1592]는 승려들의 창의(倡義)를 독려하였지만 따르지 않았다. 영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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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儒學)의 도를 닦는 학자. 청주에서는 1570년(선조 3)에 신항서원이 호서에서 두 번째로 세워질 정도로 사림들이 자리잡혀 갔고 임진왜란 때 청주읍성의 수복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유림(儒林)은 유학의 도(道)를 닦는 학자로써 흔히, 사림(士林)을 일컫는다. 사림이란 용어는 고려말(高麗末)·조선초(朝鮮初)의 시기에도 간혹 쓰였으나, 중종조 무오사화 이후 사화가 거듭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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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덕초, 호는 청매당이다. 사인(舍人) 유자빈(柳自濱)의 증손이며, 상의원 별제 유임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지조가 고결하였다. 선조 때 영릉참봉이 되었다. 광해군 때에 참봉(參奉)에 음제(蔭除)되었다가 폐모론(廢母論)이 일자 벼슬을 버리고 충청북도 청원군으로 내려와 살았다. 효행이 뛰어났었다. 인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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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서 서문동 사이에 있는 도로.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는 조선 선조 때 청주목사로 재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그가 청주목사를 떠날 때 직접 소나무를 심은 사실을 기념하여 1886년(고종 23)에 세운 ‘표석’이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171-3번지[상당로69번길 38]의 청원군청 정문의 왼쪽 화단에 ‘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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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1570년(선조 3)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여 의병장에 특명되고, 충주목사에 제수되었다. 품계는 가선대부(종2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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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몽응(夢應), 호는 청강(淸江)이다. 이시보(李時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공달(李公達)이고, 아버지는 병마사 이문성(李文誠)이며, 어머니는 부령도호부사 우예손(禹禮孫)의 딸 능달(能達)이다. 영의정 상진(尙震)의 손자사위이다. 부인은 상붕남(尙鵬南)의 딸 목천(木川)상씨이다. 7세 때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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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朝鮮)에 침입한 왜군(倭軍)과의 전쟁.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朝鮮)에 침입한 왜군(倭軍)과의 전쟁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은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일컫는데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이라면 정유재란까지 포함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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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청주지역을 지날 때 왜장을 사살하여 그 목을 용만(龍灣) 행재소(行在所)에 바쳤는데, 이것이 왜장을 목 베인 처음 일이라 선조(宣祖)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 후 종군하여 순국하니 명나라 조정에까지 알려졌으며, 선조대에 오근촌(梧根村)에 충신의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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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선조대의 열녀. 열녀 이씨는 정지신(鄭之信)의 부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을 만나자 자결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이씨의 열행이 기록되어 있다. 남편 정지신도 이름난 효자로 청주목 남이면 노천동리에 효자 정려를 건립했다. 현재 정려는 모두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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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숙거(叔擧), 호는 모계(慕溪)이다. 조순생(趙順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승윤(趙承胤), 어머니는 조황(趙璜)의 딸 평양조씨이다. 처음 정사현(鄭思顯)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성제원(成悌元)과 송인수(宋麟壽)[1487~1547]를 사사하였다. 성리학(性理學)에 통달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일찍이 어머니의 병에 들오리(野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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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 노계산에 위치한 무연고 묘인 전박장군(傳朴將軍) 묘에서 출토된 조선시대의 복식(服飾)유물. 1980년 4월 16일 대청댐 건설공사로 인하여 수몰지역 내인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 노계산에 자리한 한 무연고 묘를 이장하던 중 복식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주인공은 알 수 없으나 마을에서 전박장군 묘로 불리워지고 있어, 이 묘에서 출토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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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시조 한란의 내력을 서술한 비석. 조선 선조 때 청주목사겸 청주진병마절제사로 부임한 한백겸(韓百謙)이 자신의 시조인 한란(韓蘭)[?~?]을 제사지내기 위해 1605년(선조 38)에 건립하였다. 한백겸은 한란의 유적을 고증하여 찾고, 그 동생인 이조참판 한준겸(韓浚謙)은 제사 때마다 후손들이 읽고 알 수 있도록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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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도청소재지. 청주시는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이었다가 백제시대에 상당현(上黨縣), 일명 낭비성(娘臂城) 또는 낭자곡(娘子谷)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시대인 685년(문무왕 5)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고 757년 서원경(西原京)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청주(淸州)로 지명을 고쳤고 983년(성종 2) 청주목이 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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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 성씨.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라는 것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이는 씨족의 근거지가 되는 지명에서 취하여 진 것으로 그 씨족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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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정극경(鄭克卿)으로 고려 의종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으며, 6세(世) 정책(鄭幘)은 충숙왕 때 대호군을 거쳐 응양군상호군을 지내고 이어 판선공감사로 청하군(淸河君)에 봉해졌으며 뒤에 서원백(西原伯: 청주의 옛 지명)에 올랐으므로 후손은 본관을 청주로 하였다. 고려조에서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벼슬에 맥을 이어온 명문가이다. 본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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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명길(鳴吉)이며, 호는 구암(久菴)이다. 할아버지는 한여필(韓汝弼), 아버지는 한효윤(韓孝胤)이고, 어머니는 예빈시정(禮賓寺正) 신건(申健)의 딸이다. 장인은 구사중(具思仲)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85년 교정청(校正廳)이 신설되자 정구(鄭逑)[1543~1620] 등과 함께 교정낭청에 임명되어 『경서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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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경일(慶逸)이며, 호는 월포정(月浦亭)이다. 할아버지는 한영년(韓永年), 아버지는 한기(韓琦)이고, 형 한일제(韓日躋), 아우 한일신(韓日신), 아들은 한준(韓峻)이다. 1567(명종 22)에 진사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선조(宣祖)가 피난을 가자 단검(短劍)을 잡고 백의종군(白衣從軍)하여 용만(龍灣)에 이르러 선조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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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극진하게 잘 섬기는 아들. 왕조사회에서 가정에서의 효도는 국가의 임금님에게 충성하는 데까지 자연스럽게 연장되고, 국왕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지배 이념으로 보아서 적극 장려되었다. 반대로 불효하거나 역적이 나올 경우에는 유교의 강상(綱常)을 범한 죄과로 간주되어, 그 집안이나, 마을, 또는 고을 전체가 처벌받고, 고을의 지위까지 격하되어 주민들은 약 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