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희
-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遊覽)하는 일. 관광은 인간이 일시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속으로 이동하는 행위를 통해 심신의 변화를 추구하고 다시 그 일상생활로 복귀할 것을 전제로 다른 지역의 제도, 풍습, 자연 등을 감상하며 배우고 견문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8세기 중국 고대 주나라때 편찬된 『역경(易經...
-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8세에 동학교도가 되고, 1894년(고종 31)의 동학혁명 때 손병희(孫秉熙)[1861~1922]와 함께 6만 여명의 교도를 이끌고 호응했으나 관군에 의하여 진압당한 후 전국 각처를 방랑하였다. 1908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전제관장(典制觀長)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손병희 등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만세운동을...
-
일제강점기 이후 독립운동, 교육계, 국방분야에서 활동하며 사회에 기여한 청주의 인물. 충청지역의 근대 인물들은 외세에 의한 개항 후에 침략해 오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대항하여 주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나라 안과 밖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한 애국지사, 독립운동가, 의병장들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일제의 지배 아래에서도 겨레의 주권을 회복하고, 광복 후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
일제침략기 애국지사들의 항일 독립투쟁 운동. 투쟁과 활동의 유형에 따라 의사, 열사 등으로도 불린다. 의사는 성패에 관련 없이 일제의 침략에 맞서 무기를 들고 친일파나 일본인 고관을 처단 응징하거나 조선총독부 등 침략 기구를 폭파 파괴하는 행동을 결행한 분을 지칭하며, 열사는 일제의 침략에 분개하여 자결하거나 또는 그에 준하는 투쟁을 한 사람을 지칭한다. 독립운동사는 1894년 일...
-
1894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일어난 동학계(東學系) 농민의 혁명운동. 1894년(고종 31) 3월 사회개혁을 위하여 1차 봉기하고, 7월 23일 일본군의 경복궁 기습으로 빚어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9월에 재봉기하여 1895년 초까지 삼남과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일대에서 관군, 일본군, 민보군과 전개한 전쟁이다. 청주는 남북접 농민군이 서울로 진군하는 길목에...
-
1893년 동학교도들을 집결시키고 왕조정부에 정치개혁과 외세배격을 요구한 집회. 동학교단은 4월 26일(음력 3월 11일)부터 5월 17일(음력 4월 2일)까지 충청북도 보은군 장내리에서는 수 만명의 동학교도들을 집결시켜서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의 깃발 아래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다. 『취어(聚語)』에 의하면 전국에서 동학교도들이 장내리에 몰려왔는데 청주의 동학...
-
1894년에 손병희(孫秉熙)[1861~1922]의 지휘 아래 충청남도 논산에서 전봉준(全琫準)의 남접농민군과 합세하여 우금치전투에 참여했던 동학농민군. 1894년에 독자적으로 활동한 남접(南接)농민군과는 달리 동학 교단의 지시를 받고 무장봉기해서 충청도,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고, 통령 손병희의 지휘 아래 논산에서 전봉준의 남접농민군과 합세하여 우금치전투...
-
청주시의 쉼터는 공원과 유원지로 나눌 수 있는데, 공원은 어린이공원, 근린공원, 도시자연공원, 묘지공원, 체육공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주민의 생활과 가장 관련이 깊은 공원은 근린공원과 도시자연공원과 체육공원이다. 그 이유는 어린이공원의 경우 아파트나 단독주택 지구의 어린이 놀이터이고, 묘지공원은 망자의 매장을 목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한편 청주시의 유원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공원.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충청북도 출신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1861~1922], 우당 권동진[1861~1947], 청암 권병덕(權秉悳)[1867~1944], 동오 신홍식(申洪植)[1872~1937], 은재 신석구(申錫九)[1875~1950], 청오 정춘수(鄭春洙) 등 여섯 명의 동상을 세워 선열들의 숭고한 넋...
-
1919년 3·1운동 당시 청주 일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비롯된 만세운동은 곧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3·1운동의 전국 확산은 「독립선언서」의 배포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충청도지방 「독립선언서」의 배포 책임자는 천도교 측의 인종익(印鍾益)이었다. 일제의 기록에 의하면 청주에서는 3월 2일 「독립선언서」 268매가 발견되어 관련자가...
-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07년 서울의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가 되어 서울 수표교교회에서 재임하던 1919년 2월 중순경, 오화영(吳華英)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계획을 듣고 동참하기로 결심하였다. 이해 2월 28일, 그는 손병희(孫秉熙)[1861~1922]의 집에서 열린 민족대표의 최종 회합에 참여하였고, 3월...
-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35세 때에 청주북감리교회에서 미국인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1913년 서울의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로서 공주에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17년 평양남산현교회(平壤南山峴敎會) 목사로 옮겨 재임하던 1919년 2월, 동지의 규합을 위해 평양에 온 이승훈(李昇薰)으로부터 3·1운동...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칠거리에서 주성동의 시계사이에 있는 도로. 독립운동가인 의암 손병희(孫秉熙)[1861~1922]의 출신지인 청원군 북이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로 손병희의 독립 정신을 후세에 깊이 전승하기 위하여 아호를 따서 그 이름을 지었다. 상당구 내덕동 내덕칠거리에서 율량천을 지나 율량택지개발사업지구와 제2순환로와 동부우회도로가 만나는 주성사거리를...
-
청주문화란 청주와 청원 지역에서 축적되고 존재하는 문화이다. 청주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상대적인 문화 개념이다. 청주문화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화의 독자적인 완결성을 공간적으로 강조할 때 이런 문화단위 개념이 설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지역의 독자적 문화문법(文化文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마모를 견디면서 내재하는 문화...
-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3]가 1860년 4월 5일 득도하여 창도한 동학을 3세 교주인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1861~1922]가 1905년에 개칭한 종교단체. 최제우는 득도 이후 시천주(侍天主, ‘내 안에 한울님을 모셨다’)의 가르침을 통해 양반, 천민이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평등함을 주장하였다. 이는 조선의 봉건적 질서를...
-
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이 담겨져 있는 명소 기행. 오늘의 충청도를 호서지방이라 한다. 청주는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소백산맥과 차령산맥, 노령산맥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牛岩山)[338m]은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서쪽으로는 부모산이 마주보고 서 있다. 그 두 산자락 가운데 든 시가지를 동·서로 가르는 물줄기가 바로 무심천(無心...
-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충청지역은 조선시대 한성에 도읍한 이후에 많은 사람이 주거하게 되었다. 특히, 수도에서 낙향하거나, 선조의 묘지를 쓰고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충효를 강조하여, 충청지역에서도 충신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조선 이후에 많이 나타났다. 그런데 청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죽은 사람은 드물고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