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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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무관. 1881년 11월 28일부터 1882년 8월 1일까지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근대 개항기 고종(高宗) 때의 무관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인여(藺汝), 호는 미산(渼山)으로 능성구씨 도원수파(都元帥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구병일(具秉一),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생모는 함종어씨(咸從魚氏)이며,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일찍이 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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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백제 때 대목악군(大木岳郡), 신라 때 경덕왕(景德王)이 고쳐 대록군(大麓郡)이라 하였다. 고려 때 다시 목주군으로 고쳐 청주목에 속했던 2군(郡), 7현(縣) 중의 하나이다. 1172년(고려 명종 2)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성종(成宗) 때 달리 신정(新定)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려사(高麗史)』). 목주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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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의 필름에 빛을 반응시켜 빛의 농도에 따라 사물의 이미지를 영상화한 것. 사진(寫眞, Photography)의 어원 Photography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의 “빛” 이라는 phos와 “그린다”는 grapose의 합성어로 “빛으로 그린다”는 뜻이며, 우리나라에서의 사진(寫眞)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들여와 사용하고 있는데 사물을 “베낀다”, “박아낸다”, “찍어낸다”는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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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동부에 위치한 구. 북서쪽은 청원군 오창면, 북동쪽은 청원군 내수읍, 동쪽은 청원군 낭성면, 동남쪽은 청원군 가덕면, 남쪽은 청원군 남일면, 서쪽은 흥덕구와 접하고 있다. 구청소재지는 상당구 우암동에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백제시대에는 상당현(上黨縣)[낭비성(娘臂城), 낭자곡(娘子谷)]이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685년(신문왕 5)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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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창고인 석빙고가 있었던 자리. 석빙고는 조선시대 고을마다 있었던 공용의 얼음 창고로, 겨울철에 얼음을 떠서 저장하였다가 여름 더위 때 사용하기 때문에 얼음이 녹지 않게 하기 위하여 지하에 설치하였다. 냉매(冷媒)는 주로 소금과 겨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의하면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는 일은 신라 때부터 있었으나 당시에 축조된 빙고는 현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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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호는 춘계(春溪)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부탄리에서 1865년 송수일(宋秀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직하고 비범한 재주를 보여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스스로도 성현의 덕행으로 부모님을 편안히 모시고, 친상에는 3년을 하루같이 추모하였다.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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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맹겸(孟謙)이고,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송철규(宋徹圭), 할아버지는 송휘보(宋輝普), 증조할아버지는 송주상(宋周相), 외할아버지는 김이정(金履禎)이다. 1843년(헌종 9) 식년문과(式年文科)의 병과(丙科) 21위로 급제하였고, 철종 초에 사헌부지평, 사간원 정언, 수찬,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다. 1856년(철종 7) 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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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지리3 웅주 에 신라 웅주(熊州) 연산군(燕山郡) 영현(領縣)의 하나였다고 한다. 본래 백제 때 두잉지현(豆仍只縣)으로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연기현으로 고쳐 연산군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현종 9)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이 되었고,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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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청주 출신으로, 고려 고종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1636년(인조 14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장관(將官)으로서 용감하게 싸워 강도(江都) 남문(南門)에서 순절하였다. 후에 조정에서 포상의 은전을 내렸다. 고원군수를 지냈다. 1675년(숙종 1)에 정려(旌閭)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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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아들이 효자로 이름 높은 오진택(吳振澤)이고, 손자 오정기(吳鼎基) 역시 효자로 칭송되었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났으며 학문 또한 고명(高明)하여 칭송이 높았다. 아들과 손자 모두가 효행으로 이름 높아 국가로부터 복호(復戶)의 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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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효자로 칭송되었던 오진택(吳振澤)의 아들이고, 역시 효자로 이름 높던 오상건(吳尙健)의 손자이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으로 이름 높던 청원군의 보성오씨(寶城吳氏)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효행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가 죽은 후 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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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효자로 이름 높은 오상건(吳尙健)이고, 아들 오정기(吳鼎基) 역시 효자로 칭송되었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나 하늘에서 나왔다고 여길 정도였고, 학문 또한 고명(高明)하여 칭송이 높았다. 아들과 손자 모두가 효행으로 이름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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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었던 용두사에서 사용하였던 금구.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보살사(菩薩寺) 금구(錦口)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옛 경신(庚申) 8월에 고을 사람이 땅을 파다가 옛 종을 습득하였는데 ‘대안육년용두사금구(大安六年龍頭寺錦口)’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그 형태가 기이하고 소리가 몇 리 밖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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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무심천(無心川) 변에 있는 평지 사찰. 상량문에 따르면 고종(高宗)의 후궁인 순빈 엄씨의 꿈에 물에 잠겨 있는 미륵불이 나타나 구해주기를 청했는데, 청주군수 이희복도 비슷한 꿈을 꾸었다. 며칠 뒤 청주군수에게 꿈에 본 7체불을 자세히 조사해 보라는 엄비의 명이 내려왔다. 이에 무심천(無心川) 풀숲에서 묻혀있는 7구의 불상을 발견해 엄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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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 청주향교에 있는 홍재희(洪在羲)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 조선 고종 대에 충청병사(忠淸兵使)를 지낸 홍재희의 유학진흥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이다. 비의 뒷면에 건립경위가 새겨져 있는데, 건립 시기는 “光緖十四年戊子二月日(광서14년 무자 이월일)” 즉 1888년(고종 25) 2월이고, 세운 이는 “本校西齋生立(본교서재생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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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여인(汝人), 호는 어당(峿堂)이다. 이연주(李演周)의 아들로,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820년(순조 20) 회인(懷仁)에서 출생하였는데, 1871년(고종 8) 청주 강외면 연제리에 이사하여 1882년에 우거지(寓居地) 연제리에서 죽었다. 1855년(철종 6)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이 되었고, 임술민란 뒤 「응지삼정소(應旨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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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상의 인문적 여러 요소를 분석대상으로 지역의 의의를 일반적으로 고찰·연구하는 학문 분야. 인문지리의 아버지는 칼 리터(Carl Ritter)[1779~1859]로, 그는 지리학을 경험과학으로 규정하면서, 공간적 관점에서 지역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며 현상들간의 상호관련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렸다. 특히 리터는 지역현상을 파악하는데 역사의식을 고취하며, 자연·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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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淸州) 속현(屬縣)의 하나. 백제 때 구지현(仇知縣)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 금지현(金池縣)으로 고쳐 불렀으며, 웅주(熊州) 대록군(大麓郡)[충청북도 천안시 목천면]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때 전의현으로 고쳐 청주(淸州)의 속현(屬縣)으로 삼았다. 1395년(태조 4) 처음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1414년(태종 14) 연기(燕岐)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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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어릴 때 이름은 준유(俊儒)이다. 그의 아들은 정현(鄭儇)으로 벼슬이 감찰어사에 이르렀으나, 일찍 사망하였다. 고종(高宗) 때 서경 어사대리(御史臺吏), 섭중낭장(攝中郞將), 장군, 시랑(侍郞),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청주사람으로 1217년(고종 4) 어사대(御史臺)의 관리로서 서경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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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후기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무관이다. 정종현(鄭宗鉉)은 고종 때 충청병영(忠淸兵營)의 영장(營將)을 지냈다.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청렴하였으며 공평하게 일처리를 하여 청주 백성들의 신망을 많이 받았다. 그가 다른 곳으로 이임할 때는 청주의 백성들이 매우 애석하게 여겨 가는 길을 막기까지 하였다. 그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해 1864년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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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허직의 선정을 기리는 비석. 조선 고종(高宗) 대에 율봉도찰방(栗峰道察訪)을 지낸 허직(許稷)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865년(고종 2)에 건립하였다. 상당구 율량동 율봉공원의 율량동 고가 입구에 있는 4기의 비석 가운데 세번째 비석이다. 비석의 반 이상이 땅 속에 묻혀 있어 온전한 비석의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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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곽예(郭預)[1232~1286]의 묘. 곽예는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좌승지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성절사로 원나라에 가는 도중에 죽었다. 시문에 능했으며 당대의 명필로도 이름이 높았다. 본래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에 있었는데, 1975년 국토개발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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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비석. 조선 고종(高宗) 때 흥선대원군이 집정하면서 1866년(고종 3)에 있었던 병인양요와 1871년에 있었던 신미양요를 통해 서양세력을 격퇴한 후 그 전승을 기념하고 척화를 강조하기 위해 1871년 4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충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청주 척화비도 이때 세운 것이다. 상당구 남문로 2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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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청주인 경진(慶珍)으로 고려 명종 때에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그 아들인 경대승(慶大升)은 청렴한 인물로 장군이 되어 정중부의 횡포정치를 제압하고 쇄신정치를 하였다. 청주경씨의 1세(世)는 경번(慶蕃)으로 고려 고종조에 문과에 올라 호부상서평장사에 이르고 청주에 세거하였으며 2세는 경수(慶綏)로 통례문사를 지내고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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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지방행정제도. 성종 대의 12목, 현종 대~고려 말까지 8목 중의 하나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였으나 국초에는 지방세력이 강대했던 반면 중앙 행정력이 극도로 미약했기 때문에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였고, 중앙에서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태조(太祖)는 지방세력이 강한 지역에 대한 조치로 주·부·군·현의 칭호를 고치고, 적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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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초명은 경(璟)이다. 고종 때 감찰어사(監察御使) 예부낭중(禮部郞中), 원종(元宗) 때 공부시랑(工部侍郞)·간의대부(諫議大夫), 국자대사성(國子大司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조호(世子調護),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좌상시, 판삼사사(判三司事), 재추소사존(宰樞所司存),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