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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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淸州韓氏)의 가계내력을 기록한 책. 판식은 사방 주위가 단변(單邊), 반곽(半郭) 25.7×17.2㎝, 위 아래 두쪽이 꽃무늬 어미[花紋魚尾]로 되어 있다. 크기는 33㎝.×21.4㎝이다. 표제는 “청주한씨 호남대동보(淸州韓氏 湖南大同譜)” 서문: 후손 상호 삼가 씀(序: 後孫 相鎬 謹書). 발문: 후손 일석 삼가 씀(跋: 後孫 一錫 謹識). 대동합보는 4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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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후반 고구려(高句麗)의 남하(南下)로 인한 청주 주변의 상황. 청주를 둘러싼 삼국간의 항쟁은 427년 고구려(高句麗)의 평양(平壤) 천도(遷都)로부터 시작된다. 청주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백제는 4세기대의 전성기를 지나면서 남하하는 고구려의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고구려는 북쪽 이민족과의 항쟁에 주력하면서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고국원왕(故國原王)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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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물건에 본래의 기능을 살리면서 조형미를 조화시키는 솜씨, 또는 그 제품. 공예는 인간생활 주변에서 쓰여지고 있는 가구, 그릇, 옷, 주택장식 등 생활용품이며, 이는 공예가 인간생활과 매우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공예는 일반 비품으로부터 장식품, 신앙물, 시설물에 이르기까지 아주 광범위하다. 신앙물은 장승, 신주, 불상, 석등, 석탑, 부도 등이 있으며 시설물은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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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과 연기군 전의지역으로 추측되는 삼국 항쟁기의 전투지. 금현성(金峴城)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7 잡지 제6 유명미상지분(有名未詳之分)에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26 백제본기 성왕 28년 3월, 권19 고구려본기 양원왕 6년 3월, 권4 신라본기 진흥왕 11년 3월, 권44 이사부)에 의하면 550년 백제 장군 달기(達己)가 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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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던 고개. ‘꽃재’는 ‘꽃’과 ‘재’로 분석된다. ‘꽃’은 ‘곶’의 변화형이다. ‘곶’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지명에 ‘古次·串’(*곶)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입(口)’을 뜻했다. 그러나 현대 지명에서 ‘곶’·‘고지’·‘구지’·‘꼬지’·‘꽁지’ 등으로 나타나, ‘들판 쪽으로 산등성이가 쭉 뻗어 나온 곳’을 가리킨다. ‘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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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29년(신라 진평왕 51, 고구려 영류왕 12) 가을 8월에 신라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여 크게 깨뜨렸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7 잡지 제6 지리4)에는 백제에 속했던 웅천주(熊川州)의 서원(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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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었던 고개. ‘다락재’는 ‘다락’과 ‘재’로 분석된다. ‘다락’은 ‘달’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지명에 따라서는 ‘달재’가 ‘다라재’나 ‘다락재’와 함께 쓰이는 예가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옛 지명에 ‘德(덕)’ 또는 ‘達(달)’이 보이는데, 이는 ‘산(山)’이나 ‘높다[고(高)]’를 뜻한다. 이 ‘달’에 조음소 ‘-아’가 붙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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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건물 또는 공예품 등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무늬를 그려서 아름답게 장식하는 기술을 가진 장인. 우리나라의 단청의 역사는 선사시대 토기를 채색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현재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목조 건축물의 격조를 높이는 장엄의 의미와 방충, 방습으로 인한 목재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함이고 종교 등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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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중엽 삼국이 다투던 요충지. 550년(신라 진흥왕 11) 정월에 신라의 이사부(異斯夫)가 고구려의 도살성을 빼앗았으며, 649년(신라 선덕왕 3) 8월에 백제가 석토성(石吐城) 등 7성을 함락시켰을 때 김유신(金庾信)이 도살성 아래 진을 치고 이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도살성(道薩城)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7 잡지 제6 유명미상지분(有名未詳之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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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및 기록, 자료를 수집·정리·보존하여 독자들에게 이용하도록 운영하는 기관. 도서관은 설립주체에 따라 국립·공립·사립 도서관으로 나누고, 설치목적에 따라 특수도서관과 공공도서관으로 나누며, 특수도서관은 다시 학교·대학·전문도서관으로, 공공도서관은 공립과 사립도서관으로 세분한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우리나라 도서관은 고구려의 경당이며 근대적 기능을 갖춘 도서관은 990년(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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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후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도안현(道安縣)은 현재의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5 잡지 제4 지리2)에는 한주(漢州) 흑양군(黑壤郡)의 영현(領縣)인 도서현(都西縣)이라 하였다. 본래 고구려의 도서현(道西縣)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쳐 도서현(都西縣)이라 하였다. 고려 때 도안현(道安縣)이라 하여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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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고개. ‘돌고개’는 ‘돌’과 ‘고개’로 분석된다. ‘돌고개’는 전국적으로 매우 흔하게 발견되는 지명으로, 한자 지명 ‘석현(石峴)’과 함께 쓰여 대부분 ‘돌[석(石)]’과 관련된다. ‘고개’는 일찍이 고구려와 백제 지명에 쓰인 예를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현대 지명에서는 ‘고개’·‘오개’·‘재’·‘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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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고개. ‘돌팍고개’는 ‘돌팍’과 ‘고개’로 분석된다. ‘돌팍’은 ‘돌멩이’에 대한 충남·전남·경북 방언이다. ‘돌팍’은 ‘돌팍고개’ 외에 ‘돌팍거리’·‘돌팍걸’·‘돌팍골’·‘돌팍구렁이’·‘돌팍깨울’·‘돌팍들’·‘돌팍머리’·‘돌팍모롱이’·‘돌팍미’·‘돌팍배미’·‘돌팍산’·‘돌팍재’ 등 지명의 선행 요소로 매우 흔하게 사용된다.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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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초월적인 자연신에 대한 숭배와 그 실천적 행위. 원시시대 신비롭고 위대한 자연을 숭배하면서 자연을 신격화하고 종교적으로 신앙하면서 형성된 자연신앙에서 발달한 원시종교로서 불교나 기독교와 같은 고급종교처럼 교주도 교리도 교단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하여 신앙의 대상은 산·물·바위·나무·동물 같은 자연물을 신으로 섬기며, 신앙의 목적도 단순히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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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書畵)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장인(匠人). 배첩(褙貼)이란 오늘날의 표구(表具)와 마찬가지로 서화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듦으로써 미적 가치는 물론 실용성 및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처리 방법이다. 표구는 일제강점시기에 일본인에 의해 들어온 용어인 반면에 배첩장(褙貼匠)은 조선왕조 초기부터 제도화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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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대국가 중의 하나. 서기 전후 무렵에 성립되어 660년 당에게 멸망할 때까지 한반도 서남부에 존재했던 나라로 마한(馬韓) 50여개 소국의 하나인 백제국(伯濟國)이 성장 발전하여 이룩한 나라이다. 백제는 한강유역에 자리를 잡은 마한 소국의 하나로서 나라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건국설화에 의하면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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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발견된 백제의 산성, 고분, 주거 유적. 청주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처음 보이는데, 63년(백제 다루왕 36, 신라 탈해이사금 7)에 백제가 청주로 비정되는 낭자곡성(娘子谷城)에 진출하여 신라와의 화의를 요청하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후 청주 인근 지역을 두고 백제와 신라는 오랜 공방전을 벌이게 되면서, 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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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나 유골을 처리하는 장소 즉, 무덤. 분묘란 흔히 묘 또는 무덤이라도 하고 사체나 유골을 처리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장소나 시설로 역사적으로 오래된 무덤을 고분이라 한다. 분묘는 각 사회의 장제(葬制)나 또는 내세관과 깊이 관련되어있다. 또 자연환경이나 생업형태, 피매장자의 연령과 성별, 사회적 지위나 신분에 이르기까지 분묘의 형태와 습속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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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상호간의 권리와 의무관계를 규율하는 법. 통치작용 중 입법 및 집행과 구별되는 사법은 형식적으로 파악하면 법원이 담당하는 작용이 되지만, 실질적으로 파악하면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당사자로부터의 쟁송의 제기를 기다려 독립적 지위를 가진 기관이 제3자적 입장에서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 제101조 제1항에서‘사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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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둘러싼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의 각축장. 살수(薩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7잡지 제6 유명미상지분(有名未詳之分)에 보인다. 494년(신라 소지마립간 16, 고구려 문자왕 3, 백제 동성왕 16) 가을 7월에 신라 장군 실죽(實竹) 등이 고구려와 ‘살수(薩水)의 들판’에서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견아성(犬牙城)으로 물러났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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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를 중심으로 한 삼국간의 항쟁. 교통의 요충지인 청주를 빼앗기 위한 고구려, 백제, 신라간의 항쟁으로 청주지역을 최종적으로 획득한 신라는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427년(장수왕 15) 고구려의 평양 천도와 함께 남쪽으로의 진출을 강화하자,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체결하여 고구려를 방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으로 백제는 개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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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년(신문왕 5) 충청북도 청주 지방에 설치된 신라시대 5소경(五小京)의 하나 신라는 삼국통일 후 전국을 9주(州)와 5소경(小京)으로 재조직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밑에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官: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守), 현에는 현령(縣令)을 두었다. 또한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소경을 두었다. 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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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중요한 지역에 두었던 지방 특별 행정구역. 신라의 소경제 채용은 고구려의 3경제(三京制)의 설치와 운용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고, 그 직접적인 설치 계기는 6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일련의 체제정비와 수도의 도시계획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즉 지증왕(智證王, 500~514)대에 지방 행정조직인 주와 군제가 실시되고, 중앙과 변경지역에 이르는 관도와 우역이 정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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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동편에 위치하는 청주의 진산이며 문화유적의 보고.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8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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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골짜기. ‘수루네미골’은 ‘수루네미’와 ‘골’로 분석된다. ‘수루네미’는 다시 ‘수루’와 ‘네미’로 나뉜다. ‘수루’는 ‘술[峰]’과 관련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백제 지명에는 ‘述’(술), ‘述尒’(수리), ‘首泥’(수니) 등이 보이는데, 이는 ‘봉우리’를 뜻한다. 현대 지명에 보이는 ‘수’, ‘수레’, ‘수루’,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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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과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그것을 알아맞히게 하는 구비문학의 한 형태. 수수께끼를 이르는 말로는 ‘슈지’, ‘슈지겻기’ 등이 있었다. 이 고어들은 수수께끼가 ‘슈지’와 ‘겻기’의 합성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슈지’와 ‘겻기’가 그 음이 변하여 고착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수수’는 숨은 것이며 ‘께끼’는 겨루기를 의미한 것으로 수수께끼란 ‘숨은 것을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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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중엽 신라의 청주 진출과 운영. 신라는 청주 및 금강 중상류 지역을 장악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신라는 5세기 후반부터 소백산맥을 넘어 한강·금강 유역으로의 진출을 꾀하였다. 6세기 중엽 백제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획득하여 고구려 세력을 몰아낸 신라는 다시 백제를 압박하여 금강 중상류역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때 청주지역도 신라의 영역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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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언론인·독립운동가·문인.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혹은 단재(丹齋)이다.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산내면(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열혈생(熱血生), 한놈, 검심(劍心), 적심(赤心), 연시몽인(燕市夢人) 등이다. 조선시대 신숙주(申淑舟)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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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유의 민속경기. 여러 문헌에는 각저(角抵), 각저(角觝), 각력(角力), 각지(角支), 각교(角校), 쟁교(爭交), 각저(殼抵), 상박(相撲) 등으로 불리어져 왔다. 여기에서 각(角)은 ‘서로 겨루다’를 의미하며, 저(抵)는 ‘달려든다’, 저(觝)는 ‘받다’의 뜻으로, 마치 황소들이 맞붙어 힘겨루기를 하듯 ‘서로 달려들어 힘겨루기를 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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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기원전후로부터 기원후 300년까지의 시기를 지칭하는 시대구분의 명칭. 한국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시대구분 명칭으로, 1970년대 초에 생겨났는데 초기철기시대에 뒤이은 시기를 말한다. 원삼국시대는 종래 고고학에서 김해(金海)시대, 웅천기(熊川期), 또는 초기철기시대 등으로 불려왔고, 역사학에서의 삼한시대, 군장국가, 성읍국가 등이 이에 해당되지만, 삼국시대의 원초기(原初期),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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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마을. 지역민들은 ‘월구리’를 ‘월굴(月窟)’과 접미사 ‘-이’의 결합형으로 본다. 즉 무심천(無心川)이 맑아 달이 뜨면 물빛이 굴 속까지 비친 데서 붙은 이름으로 본다. 그러나 ‘월구리’는 ‘달구리’에서 왔을 가능성도 있다. ‘달구리’는 ‘달’과 ‘구리’로 분석된다. 고구려의 옛 지명 중에 ‘德(덕)’ 또는 ‘達(달)’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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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원로(元老), 호는 몽암(蒙菴)이다. 아버지는 예조참의 유인귀(柳仁貴)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현감 이장생(李長生)의 딸이다. 1501년(연산군 7년) 진사(進士)가 되고, 1516년(중종 11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官檢閱)이 되고, 이듬해 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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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 예술. 우리나라 3대 악성 하면 거문고를 창제한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과 가야금을 제작한 신라의 우륵(于勒)[500?~562?], 조선의 박연(朴堧)[1378~1458]을 든다. 그 중 우륵과 박연은 충북 출신 음악가이다. 청주 지역의 음악은 이 위대한 전통음악의 얼을 계승, 보존하는 반석위에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음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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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란 청주와 청원 지역에서 축적되고 존재하는 문화이다. 청주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상대적인 문화 개념이다. 청주문화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화의 독자적인 완결성을 공간적으로 강조할 때 이런 문화단위 개념이 설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지역의 독자적 문화문법(文化文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마모를 견디면서 내재하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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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어릴 때 이름은 준유(俊儒)이다. 그의 아들은 정현(鄭儇)으로 벼슬이 감찰어사에 이르렀으나, 일찍 사망하였다. 고종(高宗) 때 서경 어사대리(御史臺吏), 섭중낭장(攝中郞將), 장군, 시랑(侍郞),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청주사람으로 1217년(고종 4) 어사대(御史臺)의 관리로서 서경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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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 ‘중수름재’는 ‘중(中)’과 ‘수름재’로 분석된다. ‘수름재’는 고개 이름이나, 고개 주변 열두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수름재’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가 ‘높은 재’로 보는 설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중 고구려, 백제 지명에 보이는 ‘述’(술)·‘述尒’(수리)·‘首泥’(수니) 등은 ‘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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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이후 청주목(淸州牧)에 속한 속현(屬縣)의 하나. 진주현(鎭州縣)은 진천(鎭川)의 옛 이름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地理)에 따르면 한주(漢州) 흑양군(黑壤郡)은 달리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하였다. 본래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흑양군으로 고쳤다. 금물노군(今勿奴郡)은 달리 만노군(萬弩郡), 수지(首知), 신지(新知)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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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청주를 순행한 신라의 제24대 왕. 신라의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청주 지역 등 확대된 영토를 순행(巡幸)하였다. 지증왕(智證王)의 손자이며, 법흥왕(法興王)의 동생인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 지소부인김씨(只召夫人金氏)이다. 재위 기간은 540년~576년이다. 부인은 사도부인(思道夫人) 박씨(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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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었던 샘. ‘질구샘’은 ‘질구’와 ‘샘’으로 분석된다. ‘질구’는 ‘질곶’에서, 다시 ‘질곶’은 ‘길곶’에서 변한 어형이다. ‘길곶’에서 ‘길-’은 ‘길다[長]’의 어간이다. ‘곶’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지명에 ‘古次·串’(곶)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입(口)’을 뜻했다. 그러나 현대 지명에서 ‘곶’·‘고지’·‘구지’·‘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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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는 산, 또는 고개. ‘짐재’는 ‘진재’에서, ‘진재’는 다시 ‘긴재’에서 변한 어형이다.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지역에 따라서는 ‘진못’과 ‘짐못’이, ‘김미’와 ‘짐미’나 ‘장산(長山)’이 함께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어형 ‘긴재’에서 ‘긴-’은 ‘길다[長]’의 관형사형이다. ‘재’는 ‘고개’로, 이른 시기부터 지명에 쓰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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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던 시대의 문화. 한국의 철기문화는 중국 전국시대의 철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으며, 철기의 자체적인 생산은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여진다. 철기생산의 본격화 및 현지화, 제조기술의 발전은 다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토기의 출현, 생산력의 증대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이 가속화되어 국가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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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에 있었던 지방자치행정기관. 청원군을 대표하고 지방자치행정을 담당했던 기초자치단체기관으로 군청의 위치는 청주시에 있었다. 청원군청은 기초자치단체로 청원군의회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관리하는 주체기관이었다. 즉, 청원군정을 운영함에 있어서 부자치단체장 등 보조기관과 소속행정기관, 하부행정기관을 두어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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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지방행정제도. 성종 대의 12목, 현종 대~고려 말까지 8목 중의 하나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였으나 국초에는 지방세력이 강대했던 반면 중앙 행정력이 극도로 미약했기 때문에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였고, 중앙에서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태조(太祖)는 지방세력이 강한 지역에 대한 조치로 주·부·군·현의 칭호를 고치고, 적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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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의 경계에 위치한 부모산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부모산성이 위치한 부모산은 청주시의 서쪽에서 가장 높고 크며, 눈에 띄는 산이다. 청주시 비하동과 지동동의 경계를 이루며, 경부고속도로의 청주나들목(I.C.)과 중부고속도로의 서청주 나들목 사이에 있는 231.7m 높이의 산이다. 본래 아양산, 악양산(岳陽山),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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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이 담겨져 있는 명소 기행. 오늘의 충청도를 호서지방이라 한다. 청주는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소백산맥과 차령산맥, 노령산맥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牛岩山)[338m]은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서쪽으로는 부모산이 마주보고 서 있다. 그 두 산자락 가운데 든 시가지를 동·서로 가르는 물줄기가 바로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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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와 충청남도를 합쳐 부르는 지명. 충주와 청주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지명으로, 1106년(고려 예종 1)에 처음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라 불린 이래 1395년(태조 4) 양광주(楊廣州) 소속 군현을 나누어 경기도라 하고 충청도와 분리하면서 몇 차례의 명칭 변동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충청도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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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청주의 사정을 기록한 지리지. 지역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전근대 시기 중앙집권적 수취체제의 기초로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도·시·군지, 마을지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사정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 시기의 향토지는 주로 중앙의 관 주도로 이루어진 수취를 위한 지방의 사정을 기록한 지리지에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기획과 편찬이 이루어져 보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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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屍身)을 묻기 위해 널길을 통해 무덤방[石室]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돌로 쌓아 만든 무덤. 돌방무덤이란 밀폐된 덧널(槨)이 아니라 출입이 가능한 돌로 만든 방(室)을 의미하며, 돌방무덤을 쓴 동기는 일회성 매장(埋葬)이 아닌 추가장(追加葬)을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추가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덤방을 만들고 생전에 실내를 출입하듯 무덤방을 드나들 수 있도록 무덤 한쪽 측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