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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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이나 고을에 과거 부임하였던 전임관, 수령 등 벼슬아치의 명단.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기관과 관아에서 전임 관원의 성명·관직명·생년·본적·취임 및 이임시기(移任時期)·치적(治績) 등을 적어놓은 책으로 일명 『안책(案冊)』이라 하기도 하고 흔히 지방에는 「수령안(守令案)」이라고 하여 명단이 전하고 있다. 작성 시기를 기준해 볼 때 등재 인물이 현임자의 전임자(前任者)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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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산성 내에 있었던 보국사와 관련된 기록. 청주 상당산성에 위치한 보국사의 연원을 적은 기록이다.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에 대대적인 수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고, 1721년(경종 1) 산성의 관리를 위해 구룡사(九龍寺)와 남악사(南岳寺)를 건립하였다. 이 후 구룡사(九龍寺)는 완전히 파괴가 되었고 남악사만 홀로 남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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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상당산성(上黨山城)에 있었던 석축 산성. 고상당성은 조선 후기에 새로이 고쳐 쌓은 현재의 상당산성보다 앞선 시기에 존재했던 석축 산성이다. 상당(上黨)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上黨縣)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청주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고상당성은 조선 후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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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遊覽)하는 일. 관광은 인간이 일시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속으로 이동하는 행위를 통해 심신의 변화를 추구하고 다시 그 일상생활로 복귀할 것을 전제로 다른 지역의 제도, 풍습, 자연 등을 감상하며 배우고 견문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8세기 중국 고대 주나라때 편찬된 『역경(易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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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었던 관청 자리. 산성동은 본래 청주군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며, 상당산성의 안이 되므로 산성이라 한다. 지금의 산성동에 있었던 관터는 창말 북편 옛날 관아(官衙)가 있던 자리이다. 공남문에서 현재의 저수지를 통하여 북쪽 방향의 산 중턱에 남향의 다섯 칸 짜리 동헌(東軒)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헌 앞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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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구룡사가 있었던 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남악사(南岳寺), 청심사(淸心寺)와 함께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744년(영조 20)에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靈休)가 지은 필사본인『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의하면 1720년(숙종 46)에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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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고개. ‘국굴고개’는 1차적으로 ‘국굴’과 ‘고개’로 분석된다. ‘국굴’은 다시 ‘국’과 ‘굴’로 나뉘는데, ‘국’은 지역에 따라서는 ‘국자’·‘국화’·‘누룩’·‘굽다[곡(曲)]’·‘굴(窟)’ 등과 관련하여 해석한다. 그러나 ‘국’은 ‘구석’과 관련시킬 수 있다. ‘구석’의 중세국어 ‘구’에서 ‘’이 탈락하여 ‘구억’이 되고,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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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속하는 법정동. 사금을 캐냈다고 하여 쇠내개울, 쇠내 또는 금천이 되었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탑동리(塔洞里), 문외리(門外里), 구하리(九下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천리라 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20년 청주읍에 편입되면서 탑동과 금천동으로 분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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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성희(聖希)이다. 군수(郡守) 김추(金樞)의 아들이다. 1716년(숙종 42)에 무과에 급제하여 내외 직을 두루 거친 후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726년(영조 2)에 관직을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728년 청주에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이 일어남에 전 주서(注書) 유언협(柳彦協) 및 삼종형(三從兄) 김광노(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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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겸숙(兼叔)이다. 공조참판 김자항(金字恒)의 아들이다. 상신(相臣) 김우항(金宇杭)의 서질(庶姪)이다. 할아버지는 김홍경(金洪慶)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덕승(金德承)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청주 상당산성 아래로 이사하였다.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하였고, 체력이 남달리 뛰어나 남대문루를 뛰어넘었다 한다. 1728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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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과 용암동에 걸쳐 있는 산. 관음보살이 머문 인도 남쪽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 되었다. 이곳은 청주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류가 아니고 변성퇴적암류의 기반암을 갖는 지역으로, 이 지역은 양 암석의 경계지역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상은 고도가 475m이며 남서쪽으로 400m의 봉우리가 이어진다. 상당산성의 상당산(上黨山)[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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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상당산성의 남쪽 문 앞. 상당산성은 청주시와 청원군의 경계에 위치한 상당산(上黨山)[419m]에 있는 산성이며 동문, 남문, 서문의 3개 문이 있다. 남문앞은 상당산성(上黨山城)의 남쪽 문 앞을 가리키는 말로, 남문은 구체적으로 공남문(拱南門)을 가리킨다. 상당산성에 있는 삼대문(三大門) 중 가장 규모가 큰 문이며, 상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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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었던 남악사의 절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구룡사(九龍寺), 청심사(淸心寺)와 함께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744년(영조 20년)에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靈休)가 지은 필사본인『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의하면 1725년에 절도사 이태망(李台望)과 우후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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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붙이와 돌에 새긴 살아있는 역사기록이며 선조들의 삶과 사건의 생생한 증거 금석문은 크게 금문과 석문으로 나누어진다. 금문은 금속류의 용기·악기·무기·화폐·인장·경감·조상·범종·도량형 등에 주출되었거나 새겨진 문자이며, 석문은 석재의 비·묘지·조상 등에 새겨진 문자이다. 금문의 대표적인 경우는 「칠지도명」·「환두대도명」·「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광배문」·「상원사종명」·「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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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약수터. 명암동의 물탕골에 있는 약수로 명암에 있는 약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암약수는 1920년대 초기에 발견되었는데, 탄산천으로 철분 함유량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상당산(上黨山)[419m]의 남쪽 산록에 자리잡고 있으며, 상당산(上黨山)[419m]에서 내려오는 물이 골짜기를 따라 명암지로 흘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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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유원지. 우암산(牛岩山)[338m]의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상당산성에서 내려오는 물이 골짜기를 따라와 명암지로 흘러들고 있다. 청주시내에서 상당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며 명암약수터, 또는 상당산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시내에서 명암로를 거쳐 512번 지방도를 이용하거나 동부우회도로를 이용하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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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예종조에 이조정랑을 지낸 민수(閔粹)의 8세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 일대에서 난(일명 무신란)을 일으키자, 청주목사(淸州牧使)이던 박당(朴鏜)은 도피하고, 우후(虞侯) 박종원(朴宗元)은 성을 내주고 투항해 버렸다. 이 때 민진수는 일문종당(一門宗黨)과 인근 친지 100여 명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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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쇠내’는 외평동에 있던 마을로 ‘상촌(上村)’, ‘중촌(中村)’, ‘평촌(坪村)’ 지역을 아우르는 큰 마을 이었다.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본래 ‘쇠내’는 멀리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발원하여 팔결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쇠내’의 ‘쇠’는 ‘금(金)’, ‘내’는 ‘천(川)’의 뜻이다. 그러니 ‘쇠내’는 ‘금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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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창의 인물.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언백(彦伯)이다.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의 아우이고, 할아버지는 부사(府使) 박원진(朴元震)이다. 임진의병장 박춘번(朴春蕃)의 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여 무예가 뛰어났으나, 무과에 등과하지는 못했다. 1727년(영조 3)에 어사 김시형(金始炯)이 역사(力士)로 천거하였으나 탁용(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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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에 있는 박민준(朴敏俊)[1676~1744]의 묘비.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공적을 세운 박민준의 묘비로 1859년(철종 10)에 세웠다. 청주에서 청원군 부강으로 가는 서부도로의 충북공업고등학교 부근의 오른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186㎝, 폭 63㎝, 두께 37.5㎝이 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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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상당산성에 주재하였던 종3품의 무관. 병마절도사를 보좌하고 상당산성에 주재하면서 산성의 운영을 관리, 책임졌던 무관직이다.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의 제도가 정립되면서 그 막료로서 도진무(都鎭撫)가 임명되었는데, 이것이 1466년(세조 12)에 병마우후(兵馬虞候)로 개칭되었다. 1651년(효종 2)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海美)에 있던 병영(兵營)을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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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산. 봉화산은 것대산(484.0m) 봉수(烽燧)가 있던 산이며 높이는 약 433m이다. 현재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산107-2번지에 해당한다. 봉화를 올리던 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의 진천현 소을산(所乙山) 봉수, 그리고 남쪽의 문의현 소이산(所伊山) 봉수와 연결된다. 봉화산 것대봉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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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내. ‘비끼내’는 ‘비끼’와 ‘내’로 분석된다. ‘비끼-’는 동사 ‘비끼다’의 어간이다. ‘비끼다’는 ‘비스듬히 비치다’를 뜻한다. ‘내’는 신라어 ‘那’(나)·‘川理’(나리ㅎ)에서 기원한 것으로, 일찍부터 지명에 나타난다. 따라서 ‘비끼내’는 ‘비스듬히 흐르는 내’로 해석된다. ‘비끼내’는 지역에 따라서는 ‘빗내’·‘비스내’로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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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마을. ‘뿌르뜸’은 ‘뿌르’와 ‘뜸’으로 분석된다. ‘뿌르뜸’ 대신 ‘뿌리뜸’이나 ‘뿔뜸’으로도 부르는 바, ‘뿌르’는 ‘산부리’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뜸’은 ‘듬’의 변화형으로, ‘冬非’, ‘冬音’, ‘頭無’, ‘渡迷’ 등의 형태로『삼국사기(三國史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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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상당산성(上黨山城) 남문 부근에서 발견된 명문(銘文)이 있는 기와. 이 명문와(銘文瓦)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744(영조 20)년 상당산성(上黨山城) 승장(僧將)이던 영휴(靈休)의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이다. 이 명문에 대한 해석으로 ‘지일(池馹)’을 인명으로 보아 사탁부 소속의 長 즉 우두머리가 되는 인물의 이름이 지일(池馹)이었거나 혹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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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군 청주 읍내의 동쪽에 있었던 면. 청주 읍내에서 보았을 때, 산맥(청원군과 보은군의 경계에 있는 작은 산맥으로 추정) 안쪽에 있는 두 번째 면이므로 산내이면이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산내이상면(동북쪽)과 산내이하면(서남쪽)으로 나누어졌다. 본래 산성(山城), 거죽(巨竹), 양지(陽地), 현암(玄巖), 차남(車南), 화문(華門), 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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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속하는 법정동.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하여 산성이라 하였다. 산성동은 본래 청주군 산내이하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거죽리와 양자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산성리라 명명하고 현성면에 편입하였다. 1946년 청주군이 청주부와 청원군으로 나뉠 때 청원군에 소속하였으며, 198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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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용담·명암·산성동 12통이고, 법정명은 산성동 산성마을이다. 산성동 산성 마을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의 지역으로서 상당산성 안이 되므로 산성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거죽리와 양지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산성리라 해서 낭성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8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산성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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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마을은 산성이 있어 연일 끊이지 않고 등산객과 관광객이 찾아온다. 산성을 한 바퀴 도는 관광을 주로 많이 하고, 청주시내 소재 중·고등학교에서 산성으로 소풍을 온다. 우암산(牛岩山)[338m] 등산로는 여러 곳으로 나 있어 한 두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등산하는 시민들이 많다. 상당산성 방문객 현황은 1월~2월초 평일 300~500여 명이다. 2월~7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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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당산성(上黨山城) 상당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다. 둘레가 4.2㎞, 높이 3~4m, 면적 54,700평의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김유신(金庾信)의 셋째 아들 원정공(元貞公)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김우진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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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맞이 산성 마을은 달맞이를 북장대에서 했다.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보름날 저녁에 달보고 절을 하며 한 해 소원을 빌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달맞이 행사를 했지만 현재는 청주 시민이 상당산성에 와서 달맞이 행사를 벌인다. ◦ 쥐불놀이 산성 마을은 산촌이기 때문에 나무가 많았다. 특히 다른 산에는 나무가 없어 인절미를 굴려도 먼지하나 안 붙는다는 말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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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동은 시의 최북동부에 있으며 동쪽은 청원군 낭성면 삼선리, 서쪽은 명암동, 남쪽은 용정동, 북쪽은 청원군 북일면 국동리에 접해 있다. 산촌마을인 산성마을은 상당산(上黨山)[419m] 정상에 있는 마을로 산정에 상당산성이 있고, 성내에는 산성마을과 일제시대 축성된 마을 앞 성내방죽이 있다. 성내 남쪽 골짜기에는 것대마을이 있다. 마을 중앙에는 청주 미원 간의 도로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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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상당산성 남문 진입로 부근에서 조사된 조선시대의 기와가마. 조사된 유구는 기와가마 1기이다. 가마는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경사진 지형의 화강암 부식토층을 굴착하여 만든 반지하식 등요로서,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에 는 낮은 단벽이 설치된 일반적인 구조이다. 가마의 전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소성실은 너비의 큰 변화없이 직선적으로 연도에 이어진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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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공원.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충청북도 출신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1861~1922], 우당 권동진[1861~1947], 청암 권병덕(權秉悳)[1867~1944], 동오 신홍식(申洪植)[1872~1937], 은재 신석구(申錫九)[1875~1950], 청오 정춘수(鄭春洙) 등 여섯 명의 동상을 세워 선열들의 숭고한 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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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이곳은 ‘쇠내’의 윗쪽에 있던 마을인데, ‘쇠내’를 기준으로 하여 위에 있기에 ‘상촌’(上村)이라 한다. ‘상촌’이라는 지명은 전국에 많이 분포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속지명 ‘윗말’, ‘윗마을’ 등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17번도로의 공항로와 540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의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미호천(美湖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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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년(신문왕 5) 충청북도 청주 지방에 설치된 신라시대 5소경(五小京)의 하나 신라는 삼국통일 후 전국을 9주(州)와 5소경(小京)으로 재조직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밑에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官: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守), 현에는 현령(縣令)을 두었다. 또한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소경을 두었다. 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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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마을. 이 산성 안쪽에 자리한 마을이어서 성내 또는 성안이라 한 것이다. 마을을 뜻하는 말 또는 골을 붙여 성안말, 성안골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성내(城內)는 성안의 안을 한자 내로 바꾼 지명이다. 전국에는 성안 또는 성내라는 지명이 대단히 많다. 대부분 두 지명이 함께 쓰인다. 성안과 같은 뜻으로 자안이라는 지명도 있다. 자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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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방죽. 청주 상당산성(上黨山城) 안쪽에 있는 방죽인데, 성안에 있는 방죽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작은 저수지가 있었으나, 산성의 아래쪽에 있는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현재의 저수지는 본래의 수문이 홍수로 인하여 없어진 후 1943년에 만들어졌다. 이곳의 물은 상당구 낭성면을 통하여 달천(達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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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쇠내’는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로 ‘상촌(上村)’, ‘중촌(中村)’, ‘평촌(坪村)’ 지역을 아우르는 큰 마을 이었다. 일명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본래 ‘쇠내’는 멀리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발원하여 팔결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쇠내’의 ‘쇠’는 ‘金’, ‘내’는 ‘川 ’의 뜻이다. 그러니 ‘쇠내’는 ‘금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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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쇠내개울, 금천(金川), 명암천(明岩川)이라고도 한다. 쇠내개울은 ‘금이 나는 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은 지금도 금과 관련된 지명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쇠내개울의 상류에 금광이 있었으며, 내에서 사금을 채취하였고 한다. 또한, 장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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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었던 들. ‘쇠냇들’은 ‘쇠내’와 ‘들’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쇠내’는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쇠내개울’·‘금천(金川)’·‘명암천(明岩川)’으로도 불린다. ‘쇠내’는 ‘쇠’와 ‘내’로 나뉘는데, 여기서 ‘쇠’는 두 가지로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금(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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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 산출, 식품의 조리, 가공 및 유통, 상차림의 규범, 의례와 음식의 관행, 용구와 식기, 식품의 금기 및 풍습, 기호 등 음식물 섭취 행위와 관련된 생명 유지의 모든 활동. 청주는 우암산(牛岩山)[338m], 상당산, 무심천(無心川) 등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로 과거에는 새뱅이, 올갱이, 미꾸라지, 쏘가리 등 민물 생선과 각종 산채와 버섯 등을 이용하여 올갱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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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언론인·독립운동가·문인.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혹은 단재(丹齋)이다.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산내면(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열혈생(熱血生), 한놈, 검심(劍心), 적심(赤心), 연시몽인(燕市夢人) 등이다. 조선시대 신숙주(申淑舟)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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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마을. 상당산성 안에는 창말과 아랫말이 있다. 아랫말은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문안이라고도 한다. 아랫말은 성안의 아래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문안은 상당산성의 동쪽 문 안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당산(上黨山)[419m]의 정상은 492m이며, 상당산성의 주위는 대체로 400여 m의 높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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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1728년 무신란(戊申亂) 당시 청주읍성의 비장(裨將)이었는데, 3월 15일 반군이 청주성에 침입하자 문을 열어 준 인물이다. 양덕부(梁德傅)는 이보다 앞선 1720년에 상당산성 앞문 축조 책임자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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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의 율량천 일부인 율봉역 앞에 있는 개울. 역내는 ‘역’과 ‘내’가 결합된 어형이다. 여기서 역은 구체적으로 ‘율봉역'을 말한다. 율량동에서 골말, 중말, 상말, 양지말, 셋집매를 포함해서 율봉이라 하였으며, 양짓말과 중리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을 역말이라 하였다. 또한, 율봉은 역말, 율봉역이라고도 하였다. 율봉역 앞을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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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마을. ‘역대’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역대(驛垈)’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보는 것은 ‘역대’라는 지명과 함께 ‘역터’(驛-)라는 지명을 쓰는 지역이 존재하고, 또 이 지역의 남쪽 인접한 곳에 ‘율봉역(栗峰驛)'이라는 역(驛)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라는 지명은 전국에서 그렇게 많이 발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대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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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북도 청주시의 역사. 선사시대의 청주지역이 어떠한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지금까지 학술조사를 거친 곳이나 지표상의 채집된 유물을 통해 알려진 선사유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무심천(無心川)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 주변은 대단히 완만한 구릉성 산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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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와 숙박 및 공물진상 등의 관물 수송을 담당한 곳. 역은 참(站)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다가 1597년(선조 30) 통신만을 위주로 하는 파발을 두어서 변서(邊書)의 급한 전달을 임무로 하였던 곳이다. 신라 487년(소지왕 9) 우역(郵驛)을 설치하였고, 그 뒤 통일신라시대 이후 9주(州) 5소경(小京)이 설치되는 등 지방제도가 확립되고 중앙의 관리의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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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마을. 이정골은 용정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유정골(有亭골), 유정리(有亭里)라고도 한다. 유정골과 유정리의 유정은 유정(有亭)으로 이해된다. 마을에 실제 느티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유정이라는 이름이 근거가 있는 셈이다. 유정골은 마을에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정리(有亭里)는 골을 리로 한자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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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신당 터. 산신제를 올리던 산제당이었다. 상당구 율량동 율상리 상당산성 서쪽 사면 중턱에 있다. 율상리에서 동제를 올리지 않게 된 후 보암사에서 산신제를 올린다. 자연암벽 밑에 3~4평 정도를 평지로 다듬어 앞면에 축대로 단을 쌓았다. 현재는 폐허가 되어 흔적을 찾기 어렵고, 주변에 기와조각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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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 중기 무렵 충청병마절도영의 중영(中營)에 세워졌던 건물로 목사(牧使) 최상정(崔尙鼎)이 개축하였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청렴결백하게 업무를 집행해야한다는 뜻을 담아 건물의 명칭을 읍청당(挹淸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윤동형(尹東衡)[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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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란 청주와 청원 지역에서 축적되고 존재하는 문화이다. 청주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상대적인 문화 개념이다. 청주문화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화의 독자적인 완결성을 공간적으로 강조할 때 이런 문화단위 개념이 설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지역의 독자적 문화문법(文化文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마모를 견디면서 내재하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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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과 흥덕구 남촌동에 있는 골짜기. ‘재경골’은 전국적으로 매우 흔한데, 두 가지 다른 어원과 관련된다. 첫째는 ‘재궁이 있던 골짜기’를 뜻한다. ‘재궁(齋宮)’은 ‘재실(齋室)’과 같은 말로,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을 말한다. 이런 곳은 대개 ‘재궁곡’·‘재궁촌’·‘쟁골’이란 이름도 함께 쓰이며, 실제로 재실이 있다. 둘째는 ‘경치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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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과 용담동 사이에 있는 마을. ‘잿말’은 ‘재’와 ‘말’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잿말’은 네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재’를 ‘고개’로 보아, ‘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푼다. ‘영촌(嶺村)’·‘산치(山峙)’·‘치동(峙洞)’·‘현촌(峴村)’·‘티촌’이란 이름도 함께 쓰인다. 둘째는 ‘재’를 ‘잣’의 변화형으로 보아, ‘성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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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의 서쪽에 있는 군사시설로 지휘관이 올라가서 명령하던 곳. 청주시의 인구증가와 국내외 관광객의 증가로 상당산성을 찾는 관광객이 대폭 증가하여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여 1995년부터 상당산성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발굴조사지역은 산성동 산 28-1[성내로124번길 14] 임야에 속한 지역으로 서장대 터와 산성동 175번지, 산성동 177번지, 산성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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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산과 마을. 중봉은 산 또는 마을을 의미한다. 먼저, 중봉을 명암지 동편에 있는 산으로 보는 경우이다. 중봉은 중봉(中峰)이다. 중봉 위에 상봉(上峰)이 있으니 중봉은 중봉(中峰)임에 틀림이 없다. 중봉(中峰)은 한자 뜻대로라면 가운데 산 또는 중간쯤 되는 높이의 산으로 해석된다. 큰 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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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방의 정치행정을 지방주민 스스로의 참여와 결정에 의해 운영하는 정치행정제도. 지방자치란 중앙집권적 행정체제의 지방분권적 행정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즉, 중앙정부로부터 자치권이 확보된 지방자치단체가 일정한 지역과 주민을 대상으로, 지방적 사무(affaires locales)를 자주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지방자치(Local autonomy, 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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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을 이루고 있는 암성이나 지층의 성질 및 상태. 청주시 일대는 시대미상의 운교리층과 중생대 중기에 이를 관입한 반상화강암 및 섬록암과 중생대 말기에 관입한 산성 및 염기성 암맥들과 신생대 제4기에 이들을 부정합으로 덮는 제4기 충적층으로 이루어진다. 제4기 충적층을 제외하면 주로 반상화강암이 본 청주시 일원에 약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다른 암석들은 소규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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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모양이나 형태를 일컫는 말. 어떤 지형의 용어는 그 용어 자체에 그 지형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적인 분포를 명확히 표시하기도 한다. 지형은 인간생활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많이 준다. 즉, 지형형성은 기후·토양·식생 등과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들을 통하여 인간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어떤 지역에 어떤 지형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지형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는 첫째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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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마을. 창말은 산성동 성내 서편에 있는 마을로 웃말이라고도 한다. 웃말은 성안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같은 성 안에 아랫말도 있다. 아랫말은 성안의 아래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창말의 창은 창(倉)을 의미한다. 창은 곳집(곳간으로 지은 집)을 뜻하고, 말은 마을의 뜻이다. 그러므로 창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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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사찰 터. 조선 후기의 절터로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구룡사(九龍寺), 남악사(南岳寺)와 함께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는 청심암(淸心菴)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작은 암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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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구룡사지의 사적비. 1764년(영조 40) 구룡사(九龍寺) 창건과 중창 내력 및 상당산성의 개축 사실을 기술한 비로, 은재거사(隱齋居士)가 비문을 짓고 글씨를 새겨서 건립했다. 상당구 산성동의 청주 상당산성 남문 옆에 있다. 높이 131㎝, 폭 54㎝, 두께 22㎝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加檐簷)]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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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삼국시대 성지. 청주 정북동 토성은 미호천변 평야의 중심에 자리한 평지형 토성이다. 정확한 축조연대를 알 수 없으나, 다만 1744년(영조 20)에 상당산성의 승장으로 있던 영휴(靈休)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신라 말에 궁예(弓裔)가 양길(梁吉)의 부하로 있다가 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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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동쪽에 있는 우회도로. 1998년에 준공된 도로로 상당구 용암동 청주한씨(淸州韓氏)의 무농정(務農亭)이 있는 방서사거리에서 충청북도 건설본부가 있는 상당구 주성동 주성사거리까지 총연장 12㎞의 도로이다. 이 도로는 노폭이 35m의 왕복 6차선이며, 청주시 남부 지역에서 북부 지역으로 갈 때 복잡한 청주시내를 통과하지 않고 우회할 수 있는 길이다. 도로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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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관아(官衙)와 민거(民居)를 둘러쌓은 성. 읍성은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기능을 담당하던 성이다. 우리나라 역사서로서 가장 오래된『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신라 685년(신문왕 5) 3월에 서원소경을 설치하고, 689년 윤(閏) 9월 26일에 서원경성을 쌓았던 기록이 있어 청주읍성의 전신은 아마도 통일신라가 구주오경제(九州五京制)를 갖추던 신문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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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이 담겨져 있는 명소 기행. 오늘의 충청도를 호서지방이라 한다. 청주는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소백산맥과 차령산맥, 노령산맥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牛岩山)[338m]은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서쪽으로는 부모산이 마주보고 서 있다. 그 두 산자락 가운데 든 시가지를 동·서로 가르는 물줄기가 바로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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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구축된 조선시대의 산성과 조선시대의 봉수. 청주 상당산성과 것대봉수는 속리산 천황봉(天皇峰)[1,057m]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내려 온 한남금북정맥의 산줄기에 속해 있다. 우암산(牛岩山)[338m]의 동편으로 이어져 있는데, 청원군의 북일면·낭성면과 경계를 이루는 삼각지점에 있다. 청주시 동단부의 높은 산록에 위치하고 있어서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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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여덟 군데의 명승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청주의 형승(形勝)은 동남쪽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땅이 넓고, 인구가 조밀하며, 물이 공(功)자처럼 돌고, 현사(懸寺)가 강에 닿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원팔경이라 하여 1경은 상당귀운(上黨歸雲: 상당산성에 둘러싸인 구름), 2경은 금천어화(金川漁火: 무심천(無心川) 고기 잡는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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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출신의 아동문학가·교육자 1897년 11월에 상당구 남문로1가에서 아버지 최순오(崔順五)와 어머니 성주(星州) 이씨(李氏)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청주보통학교(현 주성초등학교)와 청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16년에 청주군 북일면의 면서기로 공직 생활을 시작으로 2년 후에는 청주면사무소로 전근했다가, 1923년에 사립 청남학교 교사가 되어 교육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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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바위. ‘행상바위’는 ‘행상’과 ‘바위’로 분석된다. ‘행상(行喪)’은 ‘상여(喪輿)’·‘영여(靈輿)’·‘온량거’로도 불리는데, ‘주검을 산소로 나르는 기구’이다. 세는 단위는 ‘틀’이다. ‘행상바위’는 위가 펑퍼짐하여 마치 행상의 지붕 휘장처럼 보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행상바위’는 지역에 따라서는 ‘행상바우’·‘행상방구’·‘행상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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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청주의 사정을 기록한 지리지. 지역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전근대 시기 중앙집권적 수취체제의 기초로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도·시·군지, 마을지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사정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 시기의 향토지는 주로 중앙의 관 주도로 이루어진 수취를 위한 지방의 사정을 기록한 지리지에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기획과 편찬이 이루어져 보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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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계곡. 황성골은 광덕사 앞에서 우암산(牛岩山)[338m] 토성 남쪽 문터에 이르는 계곡이다. 황성곡(皇城谷)이라고도 한다. 황성골에는 다음과 같은 지명 전설이 전한다. 통일신라시대 목암산(牧岩山)에 성을 쌓아 올리고 있던 사역두(仕役頭) 한 사람이 남쪽에 문을 내고 나서 경주에서 행차하는 왕의 어가(御駕)를 어느 쪽으로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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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마을. 범바골은 우암어린이회관 위쪽에 있는 마을로 범바위골이라고도 한다. 범바골은 범바위골에서 위가 탈락한 어형이다. 학바위골이 줄어서 학바골(용정동)이 되듯이 범바위골이 줄어들어 범바골이 될 수 있다. 범바위골의 범바위는 범의 모양을 한 바위로 해석된다. 전국에 범바위라는 바위 이름이 상당히 많다. 범의 형상을 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