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
충청북도 청주지역에서 발행되는 일간 지방신문. 1946년 3월 1일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대동인쇄소에서 『국민일보』제호로 창간되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김원근(金元根)[1886~1965]을 비롯한 청주지역 경제 인사들이 신문사 설립에 참여했다. 사시는 ‘민족의 발전’, ‘민주언론의 창달’, ‘시시비비’, ‘지방문화의 향상’이었다. 이후 『국민일보』가 『충북신보...
-
후고구려(태봉)의 건국자이자 왕. 신라 47대 헌안왕(憲安王)의 아들이며, 일설에는 경문왕(景文王)의 아들이라고 한다. 5월 5일 외가에서 출생하였는데, 일관이 말하기를 단오날 태어났고, 태어나면서부터 이가 나고 이상한 빛까지 나타나므로 장차 국가에 해로울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믿은 왕이 죽일 것을 명해 사자가 그 집에 가 강보에 싸인 아이를 빼앗아 다락 밑...
-
신라시대 중요한 지역에 두었던 지방 특별 행정구역. 신라의 소경제 채용은 고구려의 3경제(三京制)의 설치와 운용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고, 그 직접적인 설치 계기는 6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일련의 체제정비와 수도의 도시계획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즉 지증왕(智證王, 500~514)대에 지방 행정조직인 주와 군제가 실시되고, 중앙과 변경지역에 이르는 관도와 우역이 정비됨...
-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35세 때에 청주북감리교회에서 미국인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1913년 서울의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로서 공주에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17년 평양남산현교회(平壤南山峴敎會) 목사로 옮겨 재임하던 1919년 2월, 동지의 규합을 위해 평양에 온 이승훈(李昇薰)으로부터 3·1운동...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 부령부사, 종성부사 등 북쪽 변방에서 재직하며 오랑캐를 격파하는데 공이 컸다. 1592년(선조 25) 경상우수사가 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퇴하였다. 흩어진 군사를 모으고 전열을 수습하여 원병인 이순신(李舜臣)의 전라좌수군과 연합하여 옥포(玉浦), 당포(唐浦) 등지에서...
-
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문정공(文定公) 이진(李珍)의 후손인 이재곤(李載坤)의 딸이다.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진혁(趙鎭爀)의 아내로 남편 조진혁이 청원군 강내면에 살았다. 부인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어려서 아버지가 아플 때 아버지 대신 자기가 아프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여 아버지의 병환이 차도가 있었다 한다. 시집 간 다음 해에 잠시 친정에 왔는...
-
고려시대의 지방행정제도. 성종 대의 12목, 현종 대~고려 말까지 8목 중의 하나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였으나 국초에는 지방세력이 강대했던 반면 중앙 행정력이 극도로 미약했기 때문에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였고, 중앙에서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태조(太祖)는 지방세력이 강한 지역에 대한 조치로 주·부·군·현의 칭호를 고치고, 적극적으로...
-
조선시대 청주관아(官衙)와 민거(民居)를 둘러쌓은 성. 읍성은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기능을 담당하던 성이다. 우리나라 역사서로서 가장 오래된『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신라 685년(신문왕 5) 3월에 서원소경을 설치하고, 689년 윤(閏) 9월 26일에 서원경성을 쌓았던 기록이 있어 청주읍성의 전신은 아마도 통일신라가 구주오경제(九州五京制)를 갖추던 신문왕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선사 문화를 조사·연구하는 민간 연구 기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국내 선사 문화를 학제간의 조사·연구·발표를 통하여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하여 설립된 연구 기관으로, 국제 학술 교류 등 국내와 아시아의 선사 문화 연구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선사 유적 중심의 전문화된 발굴 조사와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