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구 모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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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있는 운호재단 설립자 강기용(康基用)[1917~1978]의 공적을 기리는 사적비. 학교법인 운호재단의 설립자인 강기용의 육영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6년 9월 회갑을 맞아 후손들이 세운 사적비이다. 흥덕구 모충동의 서원대학교 내에 있다. 높이 181㎝, 폭 65㎝, 두께 32.5㎝ 의 오석(烏石)의 비신 위에 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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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있는 마을. ‘고당’은 한자어 ‘고당(高堂)’으로 추정된다. ‘고당(高堂)’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높은 곳에 있는 당’으로 풀이된다. 물론 ‘당’은 ‘당집’의 준말로, ‘신을 모셔 놓고 위하는 집’을 말한다. 이 마을이 무심천변 언덕 위, 높은 곳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다. 또한, 전국적으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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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속하는 법정동. 사금을 캐냈다고 하여 쇠내개울, 쇠내 또는 금천이 되었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탑동리(塔洞里), 문외리(門外里), 구하리(九下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천리라 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20년 청주읍에 편입되면서 탑동과 금천동으로 분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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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동남단에서 흥덕구 모충동 북쪽사이에 있는 도로. 남주동(南洲洞)과 사직동을 연결하는 남사교에서 유래되었다. 동쪽은 상당로 남궁병원사거리에서 시작하여 서남쪽은 모충로 충효문 앞에서 끝난다. 폭은 15m로 중로 2류에 해당하며, 길이는 1,404m이다. 동쪽부터 서쪽까지 남북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차례대로 살펴보면 철당간길, 성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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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군 청주 읍내 남쪽에 있었던 면. 청주 읍내의 남쪽에 해당한다고 하여 남주내면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1일 부군면(府郡面) 폐합으로 일부는 청주면에 편입되고, 일부는 사주면(四州面) 관할이 되었다. 당시에 석교리(石橋里)와 동주내면(東州內面) 문외리(門外里) 일부를 병합하여 본정1정목(本町一丁目)이라 하였으며, 옹성리(甕城里)는 동주내면 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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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과 흥덕구 모충동을 연결하는 다리. 1958년 개통된 다리로서 총연장 131m, 폭 8m이며, 상부는 RC중공슬라브방식, 하부는 라멘방식의 공법으로 축조되었다. 모충교(慕忠橋)의 명칭은 모충동(慕忠洞)에서 따온 것인데, 그 동(洞) 이름은 이곳에 있는 모충사(慕忠祠)에 근거하여 1947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모충교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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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들 사이에서 전승되어온 생활과 풍습. 청주 지역에서 전승되어오는 민속놀이로는 농악, 씨름, 줄다리기, 그네뛰기, 윷놀이, 연날리기, 자치기 등이 있다. 농악은 풀매기·벼심기 등 힘든 일을 할 때 수고를 덜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거행되었지만, 정초·단오·백중·추석 등의 명절날에는 온 주민들과 함께 즐기는 오락적 기능도 담당하였다. 특히 정초의 경우에는 오락일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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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위치한, 연최적(延最績)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문. 연최적은 사헌부감찰로 재직 중 사직하였다가 다시 기용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1693년에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과 화를 당한 서인(西人)들의 용서를 구하는 여섯 가지 항목의 상소를 올렸다가 일곱 번의 심한 고문을 받아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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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두 패로 나눠 굵은 줄을 서로 잡아당겨 승패를 가르는 민속놀이. 줄다리기는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등 동아시아 일원에 널리 분포하는 놀이이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물을 관장하던 용신(龍神)이다. 줄다리기는 줄을 용으로 여겨 암용(암줄, 여자를 상징)과 숫용(숫줄, 남자를 상징)의 만남과 결합으로 온 마을과 지역이 하나가 되는 대동(大同)의 계기로 삼아 풍년과 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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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과 흥덕구 모충동을 연결하는 다리. 1969년 10월에 만들어졌던 것을 1997년 5월에 확장한 다리로서, 총연장 123m, 폭 35m이며, 상행 4차선, 하행 3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축조공법은 상부는 RC T-Beam방식, 하부는 라멘방식으로 건설되었다. 이 다리는 청주의 남쪽에 있는 다리라는 뜻으로 1932년에 처음 축조되었을 때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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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 성씨.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라는 것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이는 씨족의 근거지가 되는 지명에서 취하여 진 것으로 그 씨족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