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구 신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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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에 위치하고 있는 사립 초등학교. 21세기를 주도하는 창의적이고 국제적인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올바른 판단과 창의적인 생각으로 선진조국을 이끌어 갈 실력 있는 대성인을 육성한다. 21세기를 주도하는 창의적이고 참된 영재 육성을 위하여,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큰 꿈을 간직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라는 교훈을 구현하기 위하여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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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었던 고개. ‘덤박골고개’는 1차적으로 ‘덤박골’과 ‘고개’로 분석된다. ‘덤박골’은 다시 ‘덤박’과 ‘골’로 나뉘며, ‘덤박’은 다시 ‘덤’과 ‘박’으로 나뉜다. ‘덤’은 ‘더미’를 뜻한다. 지명 중에는 ‘덤’·‘덤골’·‘덤동’·‘덤말’ 등이 많이 남아 있다. ‘박’은 ‘바위’의 변화형으로, 지명에서 ‘바우’·‘방우’·‘방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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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산은 아양산이라 불렀으나 몽고의 침입 때 이 지방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하였던 바, 이 산은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산 밑에서 평지를 노략질하던 적군의 눈에 뜨이지 않아 공격을 받지 않았고 그 결과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성안의 물이 떨어져 사람과 말이 목말라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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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마을. ‘소상’은 전국적으로 세 개가 발견된다. 그리고 ‘소상’이 붙은 ‘소상개’·‘소상곡’·‘소상골’·‘소상교’·‘소상굴’·‘소상동’·‘소상리’도 발견된다. 그러나 어느 것도 어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본 마을이 과거 뽕나무밭이었다는 전언을 믿는다면, ‘소상’의 ‘상’은 ‘뽕나무[상(桑)]’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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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골짜기 안(속)에 절이 있어서 ‘속절’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변하여 ‘송절’이 되었다고 한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주내면(西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신정리(新定里), 화계리(花溪里) 및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화계리(花溪里) 일부를 병합하여 송절리(松節里)라 명명하고 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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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흥덕구 신봉동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성당신설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1992년 봉명동성당에서 분가했다. 1994년 봉명동 642-1번지[1순환로 543]로 이사, 첫 미사를 가졌다. 1995년 6월 신봉동 600여평의 땅을 신축부지로 매입키로 계약했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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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마을. ‘어당’은 전국적으로 매우 희귀한 지명이다. 본 예에 더하여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에 ‘어당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어당’에 접미사 ‘-이’가 붙어 만들어진 이름이다. 본 마을이 ‘어당’으로 불리는 이유는 과거 마을에 ‘어당(魚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당’은 ‘물고기가 노는 연못’을 뜻한다. 흥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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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마을. 지역민들은 ‘월구리’를 ‘월굴(月窟)’과 접미사 ‘-이’의 결합형으로 본다. 즉 무심천(無心川)이 맑아 달이 뜨면 물빛이 굴 속까지 비친 데서 붙은 이름으로 본다. 그러나 ‘월구리’는 ‘달구리’에서 왔을 가능성도 있다. ‘달구리’는 ‘달’과 ‘구리’로 분석된다. 고구려의 옛 지명 중에 ‘德(덕)’ 또는 ‘達(달)’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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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과 흥덕동 사이의 무심천(無心川) 위에 있는 다리. 흥덕구 운천동 동쪽의 무심천변에 위치하며, 제1운천교가 가설된 이후에 건설된 작은 교량이라서 붙어진 다리이름이다. 북부지역의 내덕동 일대의 교통편의를 위하여 건설되었다. 청주시에서 발주하고 동원건설㈜에서 시공하여 1989년 12월 31일에 준공하였다. 길이 22m,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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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청주 신봉동 고분군은 옛 백제권역에서 발견된 가장 큰 규모의 유적으로 5세기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조영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당시 백제의 대외관계와 지방통치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어 사적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1982년 처음 고분군이 확인된 직후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의 가치를 주목받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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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 성씨.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라는 것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이는 씨족의 근거지가 되는 지명에서 취하여 진 것으로 그 씨족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성이...